◎새것만 빼곤 없는 게 없는 ‘추억의 보물창고’/별표전축·흑백 텔레비전·남포등·US ARMY 배식기…/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고 새 생명 부여받은 낡고 버림받은 물건의 천국/발빠른 유행에 염증이 나면 사람들은 ‘향수’를 사러 그곳에 간다주말 오후, 서울 중구 흥인동 165번지에서 황학동 2300번지까지, 청계고가도로 밑 삼일아파트 일대는 어디선가 몰려든 노점상들과 구경꾼들로 난전을 방불케 한다. 인도는 물론 도로 일부까지 점령한 인파, 귀를 찢는 경적음, 철지난 유행가의 흥겹고 구슬픈 가락이 한바탕 카니발을 연출하는 곳, 바로 황학동 「도깨비시장」이다.
도깨비시장이라는 이름은 『황학동 일대가 골동품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워낙 「도깨비 같은」 낡고 을씨년스러운 물건들이 매매된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게 이곳에서 25년째 골동품가게를 열고 있는 김정남(55·민속골동가게 주인)씨의 증언. 일설에는 낮에 바글바글했던 온갖 노점들이 해질녘이면 도깨비처럼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한다. 최근에는 벼룩시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는 골동시장에서 고물시장으로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도깨비시장에는 「새 것」만 빼고 없는 것 없이 뭐든지 다 있다. 도깨비시장은 오래된 것들, 낡은 것들, 버림받은 것들의 천국이다. 이곳이 아니라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을 온갖 것들이 도깨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직도 뛰어난 음질을 자랑하는 「별표 전축」, 81학년도 중학교 3학년용 검인정 생물교과서, 한 짝밖에 남지 않은 골프화, 「세상이 너를 속일지라도…」로 시작되는 옛 「이발소 그림」, U.S.ARMY 배식기, 대한전선 흑백 텔레비전, 불법 복제 포르노 비디오물, 정체 불명의 정력제, 심지어는 「사랑하는 경숙이에게 생일을 축하하며, 1983년 7월9일」이라고 공들여 쓴 펜글씨가 아직도 선명한 LP까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내버려져 쓰레기로 전락해버릴 운명에 처했던 이 모든 것들은, 그러나 이곳에서는 켜켜이 쌓인 먼지를 쓰윽 한번 닦아주는 것만으로도 새 생명을 부여받는다. 간단한 수리만으로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여전히 요긴한 물건으로 거듭 태어난다.
발빠른 유행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겐 훌륭한 향수의 오브제가 되어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황학동 도깨비시장을 「문명의 재생공장」, 「추억의 보물창고」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값도 턱없이 싸다. 이곳에서 제일 비싼 축에 속하는 구식 카메라가 15만∼20만원, 중고세탁기 8만원, 유행 지난 구식 양복 한 벌에 1만원, 미제 토스터가 7,000원, 최신 인기곡의 무단복제 CD가 한 장에 3,000원…. 『잘만 고르면 횡재하는 거다. 흠이라면 품질보증 없고, 교환불가에 애프터서비스가 안된다는 것 뿐』이라고 김재형(42·전자제품 판매상)씨는 말한다.
물건의 출처는 주로 고물상들과 아파트 쓰레기장. 가전제품의 경우에는 고물만 모으는 전문 수집상도 있다. 막노동을 하다 「벌이가 쏠쏠하다」는 소문을 듣고 노점상으로 나선 지 3년째인 김상문(34)씨는 일주일에 세번 정도 아파트 쓰레기장에 들러 쓸 만한 물건을 싣고 온다. 그 중 값이 좀 나가는 가전제품 따위를 전문 수리상에게 넘겨주고 나면 「제일 비싼 게 2만원짜리 다리 부러진 안락의자」 정도인 허드렛 물건만 남는다. 군용품은 동대문에서 떼오거나 대규모 군사훈련이 주요 공급원이었으나, 팀스피리트 훈련이 중단되고부터는 그나마 물건이 귀하다.
물건 귀하기로는 황학동의 대표 품목이었던 골동류도 마찬가지다. 지방을 돌며 트럭으로 물건을 실어날랐다는 시절도 있지만, 거의 동이 나 버렸다. 양은 냄비 하나에 옛날 질그릇 하나 하는 식으로 물물교환을 해주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때처럼 호락 호락하지 않다. 간혹 진품 도자기나 서화가 걸려들어 횡재한 사람도 있었다지만 다 옛날 이야기다. 골동상가는 이제 경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도깨비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값싼 물건을 찾아나선 서민들, 인테리어 업자, 수집가, 학자 등 다양하다. 요사이는 그저 구경삼아 나온 산보객·젊은 데이트족들도 많이들 찾는다. 구제품 의류나 액세서리를 구하려는 「튀는」 10대들이나 군용품 마니아들은 새로 생긴 고객들이다.
그러나 황학동 도깨비시장은 어쩌면 제가 거느린 고물들보다 먼저 폐기돼버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삼일아파트 일대가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는 것이다. 내년쯤 삼일아파트 철거를 예정하고 있는데, 그때 노점이나 좌판들도 함께 철거되리라는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유적이 아니어선지 관할 구청이나 주택조합측에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대책 없는 답변만을 내놓을 뿐이다. 생계가 걸려 있는 노점상들 조차 아직까지는 문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황학동 도깨비시장은 단지 무질서하고 더러울 뿐인 「슬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지난 생활사를 살필 수 있는 살아 있는 「문화 박물관」으로, 늘 새로움만을 좇는 동시대 소비문화를 한번쯤 비판적으로 되짚어보게 하는 「반성의 거리」로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아파트의 경제적 가치를 따지기에 앞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황학동 도깨비시장의 문화적 부가가치를 한번쯤 셈해봐야 할 때인 것이다.
◎황학동시장의 어제와 내일/아련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운명/80년대 골동품 붐타고 한때 130여곳 성업/내년 삼일아파트 재개발과 함께 철거위기
서울 중구 황학동 도깨비시장의 역사는 멀리 8·15해방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동대문밖 청계천 변에 몰려 있던 고물상들이 시초. 그러나 요즘처럼 생활물품이 중심이 아니었고, 각 가정의 벽장이나 광 등에서 쏟아져 나온 옛날 도자기, 민화, 서책 등 골동류가 주를 이루었다. 골동품 중에서도 값비싼 문화재급 물건들은 대개 인사동에 몰렸고, 이곳 황학동에서는 말 그대로 고물에 가까운 옛 물건들이 매매되었다.
골동시장으로서 황학동의 명성은 73년 청계천 복개공사가 완료되면서 한 고비를 맞게 된다. 복개공사와 함께 들어선 삼일아파트를 중심으로 독립상권이 형성되었던 것. 아파트 뒷편에는 전자골목, 가구골목, 자동차 부속품골목, 의류골목 등이 대거 들어섰고, 아파트 앞편의 청계고가도로 밑 차도 부근에는 노점상들이 길게 포진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황학동 골동시장의 전성시대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특히 성가를 드높였던 것은 80년대 초중반. 당시 아파트 건설 붐과 함께 나타난 「아파트족」으로 상징되는 신흥 중산층의 실내장식 취미, 복고적 향수 취미는 황학동 골동시장의 중저가 골동품을 거의 동나게 할 정도였다. 당시 유행했던 민속주점이나 레스토랑의 우마차 바퀴 장식, 여물통에 유리를 얹은 탁자 등은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 것이었다.
황학동 골동시장의 침체, 위기를 몰고온 주범은 엉뚱하게도 86 아시안 게임이었다. 정부에서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장안평에 골동상가를 설치하면서 황학동 골동가게들을 대거 이주시켰던 것이다. 이때 최고 130여 곳에 달하던 골동가게들의 수가 20여 군데 안팎으로 대폭 줄어들면서 골동상권도 소실되어버렸다.
이 때를 계기로 황학동은 골동시장에서 본격적인 고물시장으로 성격을 탈바꿈했다. 아파트 등지에서 쓰레기로 내버려진 갖가지 고물들, 구제품 의류, 자잘한 인테리어 소품들, 무단 복제 테이프와 비디오물들이 주로 서민층의 발길을 붙잡았다. 최근에는 군용품, 이국 물건들을 취급 품목에 더하면서 마니아들과 인테리어 업자들, 젊은 층의 발길을 끌고 있다.
그러나 황학동 도깨비시장의 미래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파리 벼룩시장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지난해 12월13일 삼일아파트 일대 주택재개발 및 공공용지 편입에 관한 최종 인가가 난 것. 2002년쯤에는 아파트 입주가 예정되어 있다. 별다른 대책이 수립되지 않는 한, 돌아오는 21세기에는 황학동 도깨비시장을 한낱 「추억의 공간」으로만 희미하게 반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황동일 기자>황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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