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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아디다스/스포츠 대결뒤 또 한판의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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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아디다스/스포츠 대결뒤 또 한판의 승부

입력
1997.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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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농구 신발전쟁상대의 영역 넘본다애틀랜타 올림픽 100m 금메달리스트 도노번 베일리와 200m, 400m 우승자 마이클 존슨이 5월 캐나다에서 진정한 승자를 가리기 위한 150m 비공식 대결을 갖는다. 250만 달러라는 상금도 상금이지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는 두 사람의 자존심이 걸린 한 판이다. 캐나다와 미국의 국가적 자존심도 양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경기에는 숨어 있는 라이벌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나이키(NIKE)와 아디다스(ADIDAS).

애틀랜타 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베일리는 아디다스를, 존슨은 나이키를 신는다. 결승선 테이프가 끊기는 순간, 존슨과 나이키, 베일리와 아디다스는 승자의 영예와 패자의 눈물을 함께 할 것이다. 사람들은 금빛 나이키 육상화를 신은 존슨이 손을 흔드는 모습, 아니면 3줄 무늬가 선명한 아디다스를 신은 베일리가 웃음 짓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정상의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와 아디다스. 둘의 숨 막히는 대결은 미국과 유럽의 한판 승부이기도 하다. 본거지를 벗어나 전세계 곳곳에서, 육상 축구 농구 테니스 등 스포츠 전 종목에서 불꽃 튀는 승부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나이키는 미국을 중심으로 농구화에, 아디다스는 유럽을 본거지로 축구화에 주력하는 듯 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의류 등 스포츠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손을 뻗쳤고, 상대의 주력 아이템에도 전력투구하기 시작했다. 시장도 넓혀 말 그대로 글로벌 마케팅 체제를 갖췄다.

아디다스가 1920년에 만들어졌고, 42년 뒤인 62년에 나이키의 전신인 BRS가 세워졌으니 역사는 아디다스가 나이키보다 한참 길다. 그러나 현재의 매출규모는 후발주자 나이키가 아디다스를 앞서있다.

아디다스는 아디 다슬러라는 독일 청년이 만들었다. 아디다스 스포츠화는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였고, 유럽 전지역을 빠르게 휩쓸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육상 4관왕이었던 제시 오웬스가 신은 신발도 3줄 무늬의 아디다스였다. 54년에는 아디다스 축구화를 개발, 현재 세계프로축구 선수의 60%가 신고 있다.

나이키를 만든 필 나이트 역시 육상선수 출신이다. 나이트 또한 아디 다슬러처럼 자신이 신는 신발의 단점을 보완, 64년 육상화를 만들었다. 71년 지금의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축구화가 나왔고, 테니스화 농구화를 잇따라 개발해 톱 브랜드대열에 끼어들었다. 육상화 테니스화 등에서 빠르게 시장을 차지했고, 특히 농구화에 강세를 보이면서 NBA 선수의 60% 이상이 나이키를 신도록 만들었다. 나이키 농구화의 경우 몇몇 제품은 「에어 조던」, 「에어 페니」처럼 NBA 선수 이름이 곧 제품 이름이다.

제품의 공학적 특성은 「베어풋 테크놀로지」(아디다스)와 「에어」(나이키)로 설명할 수 있다. 맨발인 것처럼 편안한 신발(아디다스)과 공기를 집어 넣어 신체를 보호하는 신발(나이키)의 대결이다. 마케팅전략은 큰 차이가 없다. 두 브랜드 모두 남녀노소, 심지어는 피부색에 따른 취향까지 분석해 제품을 생산한다. 스포츠단체와 선수들을 적극 지원, 나이키맨과 아디다스맨으로 만들어 가는 것도 비슷하다.

「Just Do It」(나이키)과 「스포츠는 살아있다」(아디다스). 휘슬은 오래 전에 울렸지만 아직 전반전도 채 끝나지 않았다.<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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