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들이 소비재 수입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은 재정경제원이나 관세청의 통계자료 발표가 없더라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30대 그룹이 수입한 소비재가 전체 소비재 수입의 15%에 달한다는 관세청의 발표는 오히려 생각했던 것보다는 작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재벌 계열의 이름있는 백화점에 가보면 국산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당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백화점 두 군데를 조사해 보니까 두 군데 다 1층 매장에서 단 한 점의 국산품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고추장·된장·김치에서부터 개가 쓰는 선글라스 미국산 배추 중국산 지렁이 등등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을 다 살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은 수입품 천국이 돼 버렸다.
이 모두가 종합상사를 통해 세계적인 정보 유통망을 갖고 있는 재벌들이 수입을 위해 애를 쓴 덕분이다. 내수시장 잠식률이 90%를 넘어선 제품이 수두룩하고 전통적인 우리의 수출 주력상품이었던 의류조차 외국산 점유율이 19%, 한국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 다섯 벌중 한 벌은 외제인 형편이 됐다.
수입으로 혜택을 입는 소비자들이 오히려 지나치다 할 정도니까 정부가 30대 그룹에 소비재 수입을 자제해 주도록 강력히 요청했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상인들에게는 조국이 없다고 한다. 기업에 도덕성을 요구할 수도 없다. 기업이 돈버는 일에 몰두한다고 해서 그것을 나무랄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고비용 구조 때문에 사업을 할 수 없으니까 제조업 시설은 해외로 이전시키고 국내시장에는 소비재나 수입해 들여서 마진을 챙긴다는 것이 도덕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경제 논리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만든 풍토가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대우그룹이 소비재를 수입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같은 환경에서 같은 돈을 벌어도 얼마든지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1,000억달러를 넘은 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한 해에 230억달러나 되는 경상적자를 내고 있는 현실을 같이 걱정하면서, 경제위기와 실업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덜어 주고 경제회생에 동참을 하면서도 이윤추구라는 기업 본래의 사명이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우의 선언이 실천으로 옮겨지고, 대우의 솔선수범을 따르는 재벌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대다수 재벌그룹들이 나라 경제와 국민도 생각을 해가면서 기업활동을 해나가는 새로운 풍토가 생겨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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