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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백송/육백살 신선의 풍모(사라진 천연기념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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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백송/육백살 신선의 풍모(사라진 천연기념물:1)

입력
1997.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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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폭우로 쓰러져 끝내 93년 수명 마감천연기념물은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우리나라는 1934년 경북 달성의 측백수림(제1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84건을 천연기념물로 지정, 97년 1월 현재 286건을 보호하고 있다. 해제된 98건 중 62건은 대부분 환경악화로 멸실 또는 절종됐고 나머지 36건은 북한지역에 있다. 자연을 탐욕과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사라진 천연기념물을 시리즈로 게재, 자연의 소중함을 되새겨본다.<편집자 주>

서울 「통의동의 백송」. 천연기념물 제4호, 수령 600년의 이 백송이 온갖 회생 노력에도 불구하고 93년 5월14일 끝내 절단, 해체됨으로써 수명을 마감했다.

종로구 통의동 주택가에 있던 이 신목은 국내의 백송 중에서 가장 크고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로 꼽혔다. 지면에서 남북의 두 방향으로 뻗었던 백송은 높이 16m, 양쪽 줄기의 둘레가 각각 3.6m, 3m에 달했다.

줄기에서 가지가 나고 또 거기서 줄기가 뻗어 땅에 스칠듯 굽어졌다가 다시 하늘을 향해 오르다 아래로 처진 굴곡, 그러다 다시 내쳐뻗은 수직의 절묘한 조화는 「통의동의 백송」에서만 볼 수 있던 미의 극치였다. 늙었으되 추하거나 천하지 않았고 굽음으로 인해 오히려 의연한 기개가 더욱 감돌았다. 마치 백발이 성성한 신선의 풍모를 자아냈고 그 유현한 정기는 감히 필적할 만한 수목이 없었다.

서울과 더불어 600년을 살아온 백송의 운명을 전해들은 많은 사람들은 안타까워 했다. 비록 90년 7월17일 집중폭우라는 천재지변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제명을 다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백송의 역사적 상징성과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마음과 정성이 모자라지 않았나 반성해야 한다.

조선초 중국에 갔다 온 사신이 옮겨 심은 것으로 전해지던 백송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5월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됐고 62년 12월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다시 문화재관리국의 보호를 받아왔다. 백송은 원래 후베이(호북)성을 비롯한 중국 북부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서는 번식력이 아주 낮다.

백송이 쓰러진 뒤 백송회생위원회를 중심으로 받침목설치, 토양교환, 영양제 및 살균살충제처리, 차양목설치 등 3년 가까이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살려내지 못했다.

문화재관리국은 천연기념물지정에서 해제된 백송을 절단, 경기 포천군 광릉수목원으로 옮겨 산림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이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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