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면담·파업진정국면 영향/연두회견 13일만에 급반전 “물살”김영삼 대통령이 21일 여야영수회담을 갖기로 전격 결정한 것은 파업정국을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지난 7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영수회담을 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으나 13일 만에 입장을 바꿈으로서 노동계 파업사태 수습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김대통령은 지난 17일 이수성 총리와 이홍구 신한국당대표와의 연쇄 회동에 이어 김수환 추기경과 긴급 요담을 가지면서 대화를 통한 수습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노동계 파업과 야권의 강경대응을 국가 경제현실을 외면한 정치투쟁으로 규정, 강경기조를 유지했던 김대통령은 여권의 건의와 김추기경 등 종교계 지도자들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탄력적 자세로 전환하게 됐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특히 김대통령은 25일 일본벳푸(별부)에서의 한일회담정상회담을 앞두고 국가적 위기상황을 정리할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봄철의 대학가 개강과 노동계 임금협상 시점에 대비하는 장기적 포석을 위해서는 대화정치를 통한 사태수습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이른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에 지난 16일을 고비로 파업이 진정국면에 접어든 점도 김대통령의 결심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파업정국은 여야영수회담을 계기로 급반전의 물살을 타게됐다. 첨예하게 맞서던 여야간에 대화의 물꼬가 트이게 되고, 이에따라 심각한 대결의 양상을 보이던 노정관계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한편 김대통령이 정치적 굴복으로 비쳐지는 위험을 감수하고 영수회담을 가지는 만큼 대화국면을 이끌어가야하는 정치권도 상당한 부담을 안게됐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가 『영수회담은 대화의 문을 여는 것이며 모든 논의는 국회에서 해야한다』고 언급한 것도 영수회담이 정국해결의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봐야한다.<손태규 기자>손태규>
◎뒷얘기/거듭된 반전·철벽보안 “아무도 몰랐다”/당에도 귀띔안해… 이 대표에만 직전통보
김영삼 대통령의 여야 영수회담 수용은 그 전격성만큼이나 많은 뒷얘기를 남겼다. 청와대 관계자들조차 놀란 회담수용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결정과정이 있었다. 청와대는 김수환 추기경 면담직후만 해도 영수회담을 수락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김추기경을 만난 것 자체가 이해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지, 건의를 받아들이기 위한 게 아니었던데다 면담결과도 흡족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추기경 면담과 관련한 언론보도가 대화일색으로 흐르자 흐름이 급반전됐다는 후문이다. 당초 김추기경 이외에는 종교계 인사와의 연쇄면담계획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가 부랴부랴 추가면담일정을 잡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 였다.
영수회담 수용은 신한국당 입장에선 철저한 소외감을 느꼈을 정도로 완벽한 보안속에 이뤄졌다. 신한국당 고위당직자중 이홍구 대표만 20일 아침 고위당직자회의 직전에 내용을 통보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강삼재 사무총장을 제외한 나머지 당직자들은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이대표로부터 「감」만 전달 받았다.
여야대화의 사령탑인 서청원 원내총무와 정―당간의 대화통로인 신경식 정무1장관조차도 까맣게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공식발표가 있기전까진 일체 발설하지 말라는 함구령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서총무가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서총무는 회담수용결정과 통보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된데 대해 언짢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대표는 고위당직자회의후 서총무와 별도로 만나 귀엣말을 나누며 화를 누그러뜨리려했으나 서총무는 여전히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김철 대변인이 19일 발표한 성명에 관해서도 당내에서 설왕설래가 있었다.
성명은 5가지의 이유를 들어 영수회담불가 입장을 거듭 천명했는데, 이에 대해선 상반된 견해가 제기됐다. 하나는 김대변인이 전혀 감을 잡지못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청와대의 흐름을 누구못지않게 잘 알고있는 김대변인이 김대통령의 용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반대방향으로 설명했다는 설이다.<홍희곤 기자>홍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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