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의 해를 맞아 올 한해는 내내 선거바람으로 지새게 되었다. 그렇잖아도 우리나라는 한 대통령의 임기동안이 줄곧 대통령선거 기간이나 다름없다. 모든 정치가 이른바 대권을 향한 경주로 시종된다. 정치는 오로지 대통령 자리를 쟁취하기 위한 동작일 뿐이다. 무작정 집권만을 위한 투쟁, 대통령이 되기 위한 정략만이 정치의 모두가 되다시피 해 왔다. 이 대통령병에 나라가 멍들어 있다.올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예비후보들은 왜 자기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꼭 딴 사람 아닌 자기라야 하는지를 먼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자신에게 납득시키지 못하는 것을 국민에게 납득시킬 수 없다. 무조건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그것으로 목적은 달성된다는 망령된 인식은 아닌지 의문이 생긴다. 국민들은 그 진의를 분명히 알고 싶다. 국민적 여망이 없는 야망은 무망이다.
대통령은, 특히 우리나라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은 나라의 명운을 좌우한다. 그 절대적인 권력의 유혹에만 눈이 멀어 수천년 전통의 나라와 수천만 목숨의 국민을 담보로 일신의 영광을 위해 허욕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말 사심없이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을 아끼는 애국과 애민정신의 순수한 발로인가. 한 기업의 경영은 망해도 자기 책임이지만 국가 경영은 실패했을 때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무한책임이 있는데 그 아찔함에 현기증이 느껴지지는 않는가.
한 나라의 지도자에게는 여러가지 자질이 요구된다. 판단력과 결단력과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 상황을 장악할 능력이 필요하다. 신념, 용기, 끈기, 정직, 도덕성, 이런 것들이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국민을 공통의 목적을 위해 단결시키는 능력과 의지, 국민에게 신뢰감을 주는 인격의 힘이 리더십이다. 한 사람이 이 많은 미덕과 능력을 동시에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예비 후보 여러분은 이런 자질을 다 구비했다고 양심적으로 자신하는가. 양심이야말로 지도자를 가리는 첫째 잣대다.
대통령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투쟁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손을 들어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요행이나 음모로 성취할 수 있는 자리는 더더욱 아니다. 단순한 포부는 야심에 불과하다. 지식과 경륜의 온축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학의 수련이 불가결하다. 옛날의 왕들은 어릴 때부터 제왕학으로 교육되어 왕위에 올랐다. 우리의 대통령 지망자들은 지금까지 권력욕만 달구어 왔지 대통령학을 연마한 적이 있는가.
새로운 21세기의 한국을 만들어 갈 새 대통령은 어느 때보다도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야 한다. 시대를 멀리 꿰뚫어 보는 형안에 대한국 건설의 웅지가 번뜩이는 인물이라야 한다. 그 통치이념은 무장되어 있는가.
구약성서의 사사기에는 나무들이 서로 왕이 되기를 사양하는 우화가 나온다.
하루는 나무들이 감람나무에 가서 자기네 왕이 되어달라고 하자 감람나무는 『내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데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나무들을 지배하겠느냐』고 대답했다. 무화과나무에 청하니 『나의 달고 아름다운 과실을 내가 어찌 버리고 나무들을 지배하겠느냐』고 대답했다. 포도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나무들을 지배하겠느냐』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가시나무에 갔더니 『너희가 참으로 나를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렇지 않으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 온 나무들을 태울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민주주의 시대에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 하여 아무나 대통령이 되어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나라는 불행하다. 굳이 대통령이 아니라도 각자 자기 역량에 맞는 본분이 있다. 지금이라도 나무들의 왕이 될 생각만 말고 감람나무는 기름을 짤 열매를 만들고 무화과나무는 맛있는 과실을 맺고 포도나무는 술을 빚을 즙을 익혀라. 그렇잖으면 왕이 되더라도 가시나무같은 폭군밖에 안된다.
대통령직은 honos(명예)가 아니라 onus(짐)이다. 지도자의 길은 고뇌의 길이요 중하의 길이다. 대국으로 넘어가는 세기의 가풀막에서 이 막중한 책임을 질 든든한 어깨 가진 사람을 국민들은 찾고 있다. 그런 사람이 못된다면 당신은 무엇 때문에 대통령이 되려는가.<본사 논설고문>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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