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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똥으로 빚은 ‘태초의 원형’/조각가 최옥영 ‘쇠똥 조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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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똥으로 빚은 ‘태초의 원형’/조각가 최옥영 ‘쇠똥 조각전’

입력
1997.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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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냄새 싱그러운 토속소재 사용/미니멀기법으로 24절기 구현/보험까지 든 ‘귀하신 몸’ 변신『그거 냄새나서 어떻게…』 첫 반응은 한결 같다. 냄새나는 쇠똥, 그 쇠똥으로 조각을 했다니.

그러나 잘 마른 쇠똥 조각에선 흙냄새가 난다. 긴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면 비로소 촉촉해진 땅에서 더위와 함께 훅 하고 올라오는 그런 살아있는 흙의 냄새가.

강릉서 태어나 강릉대 미대를 졸업하고, 대관령 산자락 아래 폐교된 초등학교 교실을 아틀리에 삼아 작업하고 있는 조각가 최옥영(38)씨가 지난 6월부터 작업을 해온 쇠똥 조각 24점을 16일부터 전시하고 있다. 쇠똥조각전의 제목은 「요동과우연」. 공중에 매달려 있는 24점의 작품은 「하지」 「입추」 등 24절기의 제목을 달고 있다.

『태초의 원형을 탐구하고 싶었다』는 그의 생각은 매우 현대적이고 미니멀(최소한의 조형수단을 사용하는 예술의 한 경향)적인 조각으로 구현되고 있다.

『그런데 왜 쇠똥으로?』

브론즈나 대리석으로 우리 미를 찾는 데 주력해온 최씨가 쇠똥 조각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람보다 소가 더 많은 동네에 살다보니 발길에 채이는 게 쇠똥이었다. 게다가 『벌꿀 통의 뚜껑은 물론 예전에는 고급 절간의 벽을 쇠똥으로 발라 벌레를 막았다, 짚을 섞어 항아리로 만들어 쓰면 딱 좋았다』는 등 동네 노인들 얘기는 그냥 흘릴 수가 없었다.

지난 여름부터 그는 동네 노인장에게 해발 900m에 위치한 맹덕목장에서 나는 쇠똥을 수집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 도록 끝 장엔 「쇠똥수집:김운식 옹」이라는 재미있는 구절이 들어있다.

58마리의 소가 만들어내는 배설물은 양도 엄청날 뿐 아니라 처음엔 냄새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볕에 잘 말리면서 발효를 시키면 어느새 쇠똥에선 향긋하기까지한 흙냄새가 난다.

『사료먹은 소의 똥은 본드를 섞어도 인장력이 생기지 않아요. 툭툭 부스러지기 일쑤죠. 반면 제철 풀을 먹고 자라난 소들의 것은 섬유질이 많아 질기지요. 역시 자연에서 나는 먹이가 좋은가 봅니다. 여기에 짚이라도 적당히 섞어놓으면 벽에 던져도 잘 깨지지 않아요』

쇠똥 한가지 재료로 만든 작품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색이 조금씩 다르다. 소들이 언제 어떤 풀을 먹었느냐에 따라 누런 빛이 많이 나기도 하고, 검은 빛이 강해지기도 한다.

싸리나무로 프레임을 잘 엮은 후 여기에 쇠똥을 여러 차례 붙이는 것이 그의 작업 공정. 표면에 반질반질한 윤기를 내고 싶으면 느릅나무 진을 바른다.

『작품을 완성하는 데 동네 노인들 생각이 80%이상 도움을 줬다』고 말하는 그는 동네 노인들의 훈수가 고맙기 그지 없다. 그러나 노인들은 『멀쩡한 데 쇠똥 발라 망치지 말고 병아리 키우게 하나 달라』며 프레임에 눈독을 들인다.

『쇠똥은 땅에 두거나 습기만 멀리 하면 평생 간다』고 노인들은 말하지만 워낙 「자연스러운」 소재이다 보니 작품이 앞으로 어떻게 변형될 지는 그도 모르겠다고 걱정이다. 화랑에선 그의 작품을 서울로 옮겨오기 위해 보험까지 가입했는데 보험사에선 『쇠똥 보험은 처음』이라며 어리둥절해 했다는 후문이다.

전시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갤러리에서 2월20일까지.

(02)3457―1665.<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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