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직·불황바람 타고 불티나게 팔리는 재테크·창업·성공학 서적들/‘예수의 리더십’ 배우기에서 ‘돈 100배로 불리기’까지/성공과 이재를 보장하는 수백권의 책들 수천가지 조언들/그러나 그중엔 분석은 없고 감만 앞세운 ‘속빈강정’도 많은 모양인데…서울 교보문고 「1997년 예측과 전망」 코너.
「돈 버는 데는 장사가 최고다」 「경제기사는 돈이다」 「일본을 읽으면 돈이 보인다」-….
온통 돈이야기 책이다. 97년에는 예측하고 전망해봐야 할 것이 오직 「돈」문제뿐이라는 것일까?
아닌 게 아니라 최근 출판계에서는 「돈」과 「성공」이 최대 화두다. 「돈 책」으로 돈 좀 벌어보자는 출판사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출판계 전체가 만성 불황 때문에 몸살을 앓는 상황에서도 재테크·창업·처세·성공학 관련 서적들은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가고 있다. 서점에 깔린 관련 단행본만도 450∼500종에 이른다. 이들 책이 베스트셀러 웃자리를 대거 점유하면서 대형 서점들이 따로 독립 코너를 설치할 정도다.
이 떠들썩한 「돈잔치」에 초대받은 「손님」들의 표정은 그러나 썩 밝지가 못하다. 이들은 잠시의 여유를 책을 읽으며 보내거나 모자란 지식을 보충하기 위해 서점 나들이를 온 사람들이 아니다. 명예퇴직·조기퇴직한 사람들, 「언제 내 차례」라는 불안감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30, 40대 중·장년층이 재테크 서적 시장의 호황을 만든 사람들이다. 「돈 벌고 성공도 하는」 그 날에 대한 간절한 꿈꾸기로 팍팍한 일상을 견디는 소시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두 달 전 22년 동안 봉직했던 무역회사의 영업부장 직에서 명예퇴직한 김남수(44·서울 송파구 잠실동)씨.
『재취업하기에는 너무 늙은 나이고, 그렇다고 그냥 푹 쉬기에는 젊은 나이라 조그만 점포라도 내볼까 싶어』 정보수집 삼아 서점에 들렀다. 퇴직금으로 받은 1억 3,000만원에 가족의 생계가 몽땅 걸려 있는 그에게 「1,800만원으로 18억원 만들기」라는 부제가 붙은 어느 창업전문가의 성공담은 믿기지 않으면서도 귀가 솔깃할 수 밖에 없다.
『책 한 권 읽어서 수십 배씩 돈을 불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혹시 단서가 될 만한 게 있나 싶어서 한 번 훑어나 보려는 거지요. 큰 욕심도 없어요. 그저 본전 안 까먹고 생활비 정도만 벌 수 있으면 만족합니다』 한참을 이 책 저 책 살펴보던 그는 30여 분 만에 최근 가장 잘 나가는 재테크 서적과 창업지침서 한 권씩을 사서는 서점을 나섰다.
종수가 많은 만큼 성격이나 색깔도 다양하다. 그러나 그 안에도 일정한 흐름이 있고, 트렌드가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제목이나 내용에 실제 인물이나 역사, 고전 등을 앞세운 것이 많다는 것. 철강왕 데일 카네기의 성공담 시리즈들(고려원, 성공전략연구소 등 간), 「손정의 경영스토리」(평범사 간), 「잭 웰치의 31가지 리더십 비밀」(명진 간), 「나폴레온 힐 인생지침서」 시리즈(고려원 간), 「삼국지에서 성공을 읽는다」(서지원 간), 「손자병법으로 배우는 현대인의 지혜」(가원 간) 등 수십 종이 있다. 심지어는 성경을 소재로 삼은 「예수의 오메가 리더십」(한·언간)이라는 책도 나와 있다. 성공한 인물이나 고전의 권위를 빌어 책의 신빙성과 설득력을 더하려는 출판사 측의 마케팅 전략이다.
내용을 정확히 담아낸 것보다 간단명료하고 직설적인 제목의 책이 잘 팔린다는 것도 한 특징. 「…하자」식의 청유형 아니면 「…다」류의 명제형 제목이 주종을 이룬다. 최근 경제·경영부문 베스트셀러 순위를 다투는 「돈 좀 벌어봅시다」와 「돈 버는 데는 장사가 최고다」(현대미디어 간), 「일본을 읽으면 돈이 보인다」(가서원 간) 등이 모두 이 경우에 속하는 것만 봐도,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중 「돈 좀 벌어봅시다」는 「100배 재산불리기」, 「제가 돈 좀 벌게 해드릴까요」 등의 가제들과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최종적으로 선택된 제목. 작명을 잘한 덕분인지 2만∼3만부 정도면 괜찮게 팔린 것으로 치는 경제·경영서적 시장에서 10만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책 제목과 형식이 수치화, 차트화한 점도 눈에 띈다. 「입사 3년 만에 승부하는 77가지 법칙」(새로운사람들 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김영사 간), 「머피의 성공방법 100가지」(청림출판 간) 등. 대개는 항목별로 독립 편집돼 있고 항목당 길이도 2∼3페이지 정도라 쉽게, 아무 데에서나 펼쳐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을 시간을 따로 내기 힘들 뿐더러, 버스, 지하철 등에서 읽는 직장인들의 독서관행을 고려한 것이다. 숫자나 통계가 가지는 신뢰성의 효과를 노린 것이기도 하다.
이들 책의 유행은 90년대 초반 「신경영」, 「세계화」신드롬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게 출판관계자들의 말. 처음에는 경영혁신, 시테크 관련 서적이 주종을 이루다가 최근 명예퇴직, 조기퇴직 시류 탓으로 창업, 재테크, 성공학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본격적으로 붐이 일었다. 교보문고 경제경영매장 직원 최순애씨는 『작년 중후반쯤부터 갑작스레 두 배 이상 매출이 늘었다. 퇴직과 감원 등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주부 독자들도 적지 않다. 주부들은 주로 금융재테크나 소규모 점포 창업 관련 서적을 많이 찾는다. 대학생 독자들은 대개 취업 준비생들이지만 처음부터 자기 사업을 해보려는 축도 꽤 된다. 최근 한 경제지에서 이들을 상대로 「대학생 창업 스쿨」을 개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 과연 돈이 보이는 것일까? 책 속에 돈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 책들의 내용 충실도나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최근 잘 나가는 책들을 보면 실물경제에 대한 객관적 분석 없이 개인적 경험이나 주관적인 감만 앞세운 경우도 많다. 과대포장, 아전인수식 해석의 폐해도 심하다. 독자들도 좀더 꼼꼼히, 비판적으로 읽는 태도가 필요하다. 소설은 오독해도 그만이지만, 이 책들은 잘못 읽으면 당장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재테크 전문 컨설턴트이자 그 자신 재테크 관련 서적을 낼 예정인 박연수(34·신영 재무컨설팅 대표)씨의 말이다.
불황의 여파와 노동법 개정에 따른 정리해고, 대량실직에 대한 불안과 초조가 증폭되면서 돈과 성공을 내세우는 책들은 계속 호황을 탈 전망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돈 벌고 성공하는 법」을 가르칠 것이다.<황동일 기자>황동일>
◎재테크 잡지보면 돈이 보인다?/‘ROI’‘머니박스’ 등 잇단 창간/주부 등 고정독자층 확산
돈 이야기는 책 뿐이 아니다. 잡지와 소설 방송에도 돈이야기와 돈 버는 이야기가 있다. 인쇄매체는 인쇄매체대로, 전파매체는 전파매체대로 돈버는 비법을 가르쳐주겠노라고 난리다. 여기저기서 쉴 새없이 열리는 창업강좌에는 빈 자리가 없고 창업 컨설턴트라는 신직업이 어느새 인기 직업군이 되었다.
90년대 초중반부터 하나 둘 선 보이기 시작해 봇물을 이룬 재테크 관련 단행본들에 이어 주간·월간지에도 「돈바람」이 불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부동산 뱅크」 「부동산 정보」 등 고전적인(?) 재테크 잡지가 고작이었던 잡지 시장에 「중산층을 위한 재테크정보지」를 표방한 주간지 「ROI」, 월간지 「머니박스」 등이 지난해 하반기 잇따라 창간됐다. 이들 잡지의 경우 뜻밖에도 여성독자층이 많고, 고정독자도 빠르게 늘어나는 등 반응도 괜찮다는 것이 서점관계자들의 설명.
부자와 부자가 되려는 가난뱅이가 엮어내는 이야기인 「갑부」(이재운 지음)라는 소설은 재테크 붐을 탄 때문인지 지난해 쉽게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 소설 「갑부」는 올 초에 케이블TV에서 드라마로까지 만들어 방영했다. 컴퓨터 통신망에 들어가도 창업아이디어나 재테크정보가 가득하다.
패션 육아 미용 인테리어로 지면을 채웠던 여성잡지에도 「돈 버는 비결」은 이제 빠져서는 안되는 주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쌈짓돈을 큰 돈으로 불리려는 주부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여성지가 주부 부업정보를 알려주고, 갖가지 금융상품을 상세히 풀어주는 고정물을 다루고 있다.
TV나 라디오도 재테크 교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아침 출근길 라디오에서는 「이렇게 하면 돈 벌 수 있다」는 경제전문가의 목소리가 매일 흘러 나온다. 경제 전문 케이블TV에서는 부동산, 신사업, 주식, 채권, 금융상품 등 온갖 재테크 방법을 알려준다.
불황의 회오리 속에서도 창업 컨설팅회사는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체인·프랜차이즈, 소점포컨설팅, 외식업전문컨설팅 등 영역도 세분화·전문화했다.
한국생산성본부, 중소기업진흥공단을 비롯해 은행과 대학까지 앞다투어 창업강좌를 열고 있다. 부자가 되는 길을 찾아나선 사람들로 창업강좌는 문전성시다.<최성욱 기자>최성욱>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