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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공포증 신풍속도/고실업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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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공포증 신풍속도/고실업시대

입력
1997.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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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미용학원 30,40대 직장남성 ‘북적’/만약대비 “창업기반 다지자”/관련 강좌·컨설팅회사 상담전화·문의 잇따라/주부들 부업전선 나서기도『OO아빠는 요리학원에 다니고 있대요. 당신도 뭔가 준비를 해야잖아요.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짬을 내서 학원에라도 나가요. 미용학원 어때요? 미용사 자격증만 따 놓으면 나중에 학원강사를 할 수 있대요』

S전자에 근무하는 L(35) 과장은 요즘 말못할 고민에 휩싸여 있다. 『다른 사람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느라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데 당신은 뭐하느냐』는 아내의 성화가 여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내 말에 선뜻 따를 수도 없다. 회사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다른 곳에 신경을 쓰다가 겪게 될 주위의 눈총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실직 공포증이 신풍속을 낳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성 수강생이 대부분이던 요리학원에는 최근 창업 기반을 닦으려는 30, 40대 남성들의 발걸음이 부쩍 잦아졌다. 각종 단체나 대학의 창업강좌에 직장인들이 모여 들고 창업컨설팅 회사에도 상담전화가 잇달아 걸려 온다.

전업 주부들의 부업 및 창업 바람도 거세다. 이에 따라 여성이 어렵지 않게 꾸려나갈 수 있는 제과·커피·아이스크림·액세서리 체인점 본사에는 점포개설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조리직업전문학교 최선희(46·여) 교사는 우리 사회의 감원공포증에 따른 요리학원의 신풍속도를 이렇게 전한다. 『실직 걱정이 심한가 봐요. 남자 수강생이 눈에 띄게 늘고 있어요. 더욱이 예전에는 주로 20대였는데 요즘에는 3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많이 찾아와요. 외모나 학식으로 보아 이런 학원을 찾을 사람이 아닐 것 같은 분들이에요. 개인신상에 대해서는 서로 언급을 하지 않으려 하죠. 물론 직장을 그만두고 음식점을 차리려고 하는데 많이 도와달라고 밝히는 분들도 있지요』

김지연 요리학원의 홍연배(46) 사무장은 음식점을 낼 때도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4개월 과정을 수강하면 한식 양식 일식 중식 복어 등의 분야에서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음식점이 어디 자격증만으로 되는 일인가요. 주방관리 재료구입 손님맞이 등을 제대로 하려면 2, 3년은 경력을 쌓아야 합니다. 개업이 아니라 성공이 문제이니 철저히 사전준비를 해야 합니다』

『직장을 그만두면 대부분 음식장사를 하려고 하죠. 10명중 6, 7명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덤비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체인정보 대표 박원휴씨는 지난해 대기업에서 명예퇴직한 후 횟집을 연 H(48)씨의 경험을 사례로 들었다. H씨는 개업한 뒤 1개월 가량 하루 매출액이 70여만원이나 됐으나 비용이 이를 웃돌아 매일 적자를 냈다. 주방장이 재료구입비를 계속 가로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여성창업대학원 양혜숙(39) 원장은 『남편의 퇴직후를 대비하려는 주부들의 발걸음이 한결 바빠졌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매일 적게는 30통, 많게는 200여통씩 상담전화가 걸려온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부들의 부업상담이 많았으나 올 들어서는 주부가 먼저 개업한 뒤 나중에 남편이 가세할 수 있는 업종을 많이 묻는다고 한다. 양원장은 『연령층은 30, 40대가 주류를 이루지만 고령의 정년퇴직자도 적지않다』며 『상담자의 경력이나 취미, 자금규모 등을 꼼꼼하게 따져본 뒤 먹거리 어린이용품 컴퓨터 정보통신 등 6개분야로 나눠 업종을 추천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직자나 주부를 대상으로 취업을 알선해 주는 구인·구직 알선기관과 인력뱅크에도 상담·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자리잡고 있는 노동부 서울인력은행 김상일(41) 직업지도관은 『상담원 18명이 하루평균 70∼80명의 구직자에게 상담을 해 주고 있다』며 『이상하게도 실직자보다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김성호 기자>

◎“남편 기를 살려줍시다”/주부경영학교장 강경란씨 실직한파속 강연요청 쇄도

지난 14일 상오 대기업 계열사인 H사 회의실에 모인 200여명의 남자직원들이 한 중년여성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때로는 박수가 터져 나오고 때로는 한숨이 새나오기도 했으나 자리를 뜨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강연 주제는 「활기찬 가정을 만드는 남편」. 강사는 주부경영학교장 강경란(45)씨.

강씨의 주된 강연대상은 실은 남자들이 아니다.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중년남성들을 남편으로 둔 부인들을 대상으로 한 「남편 기살리기」강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대량실업 위기로 사회분위기가 가라앉을수록 강씨의 강연은 힘을 발한다. 지난해 전국을 누비며 150여회나 강연을 했고 올 들어서도 이틀에 한번꼴로 강연에 나선다. 강연을 요청하는 곳은 주로 감량경영 바람이 불고 있는 대기업 계열사를 비롯해 문화센터 구청 주부대학 등으로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강연 횟수가 늘어 갈수록 실직 한파로 흔들리는 중년남성들이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세상이 변했으니 내조도 시대에 맞춰야 합니다. 「사랑받는 아내」가 아니라 풀죽은 남편의 기를 살려 주는 「베푸는 아내」가 돼야 해요. 바깥일로 흔들리는 남편을 안에서까지 구박해서는 가족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가정이 깨지는 경우까지 있어요』

강씨는 「남편 기살리기 9계명」을 만들어 강연때마다 강조한다. 강연이 끝나면 참석자들의 질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미혼인 강씨에게 이들의 질문은 곧 다음 강연의 밑천이 된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남편 사랑은 대단합니다. 다만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 뿐이에요. 성적인 문제에서부터 방황하는 남편을 도와 줄 방법까지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털어 놓는 것을 보면 부러울 정도입니다』

강씨는 실직 위기를 맞은 남편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충고했다. 『사표를 내야한다는 남편에게 「언제든지 그만두라」고 말하세요. 그리고 무엇을 도와주면 좋은지를 물어 보세요. 남편이 마음의 문을 열고 모든 일을 상의할 겁니다』<이상연 기자>

◎남편 기살리기 9계명

1.하루 한번 이상 남편을 웃기자

·스트레스 해소에는 웃음이 최고

·재미있는 책이나 영화를 보고 교감을 나눈다

2.매일 한번씩 남편을 칭찬하자

·짧게 간접화법으로, 가슴으로 칭찬한다

·남편의 일 취미 친구 등도 칭찬한다

3.다른 남자와 비교하지 말자

·능력을 함부로 비교하지 않는다.

·남의 불로소득 등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4.남편만의 시간과 공간을 주자

·쉬는 날 남편에게 낮잠 잘 시간을 준다

·남편 혼자 여행갈 기회를 준다

5.씀씀이를 줄이자

·카드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자녀 과외과목을 줄인다

6.남편의 용돈은 많이 주자

·지갑의 부피와 자신감은 비례한다

·어려울수록 용돈을 많이 준다

7.남편의 미래를 준비하자

·필수과목(운전 컴퓨터 회계) 학원에 등록시킨다

·사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게 한다

8.남편의 인맥을 소중히 하자

·남편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술자리를 갖게 한다

·부부동반 모임을 기획한다

9.부부만의 시간을 자주 갖자

·남편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남편의 의견·결심은 최대한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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