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는 끝났다」. 연말 휴가기간에 주저없이 지출을 한 대부분의 미국 「보통가정」들은 새해에 빚문제로 골치를 앓는다.돈을 안쓰고는 못배길 것 같은 풍요로운 시장, 1센트 단위를 놓고 경쟁하는 업체들의 판매전략, 현금 없이도 물건을 가질 수 있는 신용거래 체제 등의 미국적 소비구조는 언제나 연말특수때 절정에 달한다. 소비자들은 힘에 부치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쓰지만 새해부터는 가계수지를 맞추느라 안간힘을 써야 한다. 얼마전 미국인들의 이런 소비행태를 다룬 TV토크쇼에서 한 출연자는 연말에 구입한 유명디자이너의 고급 털코트 값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좋은 메이커는 반품도 잘 받아줘 걱정하지 않는다』고 답해 폭소를 자아냈다.
비단 연초가 아니더라도 소비자들의 부채 문제는 미국경제의 음영으로 꼽히는 고질중 하나이다. 지난해 미국민들의 개인부채 총액은 1조 2,000억달러(약 1,020조원)로 이중 빚에 몰린 개인의 파산신청은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속을 들여다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미국 정부의 잠정통계에 따르면 미국민들의 빚고민은 연간 소득 5만달러 이하 계층에서 더 심하며, 특히 중산층으로 간주될 3만∼5만달러 사이 소득계층에 가장 크게 가중되고 있다. 90년대 들어 미국민 전체의 소득대비 개인부채는 80년대의 16.5%에서 15.7%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는 연간소득 10만달러 이상의 고소득 계층의 부채부담이 개선된 결과일 뿐이다. 여러차례의 금리인하 덕에 저금리의 혜택을 누리게 됐지만 5만∼10만달러 사이 소득계층의 부채비율은 17.5%로 거의 불변상태로 집계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성 부채는 단연 신용카드 대금이다. 신용카드 빚은 90년이후 무려 130%가 늘어났다. 그리고 카드대금 미불이 가장 많은 계층이 바로 3만∼5만달러 소득의 중산층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카드대금에 압박을 받다 연체 이자율을 보다 낮게 제시하는 다른 카드회사를 기웃거리지만 그래봐야 빚은 불어나기만 한다.
저물가 저실업, 그리고 지속성장은 미국경제를 탄탄하게 받쳐주는 요소들로 꼽힌다. 거시적 경제지표들로 보면 미국경제가 강하다는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중산층이하의 가계구조를 분석한 시각에서 장기적으로 경제의 내성을 걱정하는 견해는 새로운 앵글이라고 할만하다. 이 견해들은 미국의 GNP중 소비부문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미국내 전체소비중 5만달러이하 소득계층이 55%를 기여한다는 점을 중시한다. 바로 중요한 소비계층의 「소비능력」이 병을 앓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산층의 정치 경제적 의미가 크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지만 위기나 난국에서는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우리의 중산층, 특히 「넥타이」계층은 노정대결, 여야대립에 빠져있는 작금의 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지만 매우 궁금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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