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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문학상 어제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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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문학상 어제 시상식

입력
1997.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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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한국일보 문학상 시상식이 16일 하오 3시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성우 한국일보 논설고문은 「염소를 모는 여자」로 영예를 안은 전경린(35)씨에게 상장과 트로피 및 상금 500만원을 수여하고 격려했다.이자리에는 심사위원인 박완서 김윤식 김우창 남진우씨와 서영채 송우혜 김지수 강태형씨 등 문인·출판인 6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심사경과 보고, 시상, 평론가 황현산씨의 축사, 전경린씨의 소감 발표 등으로 진행됐다. 전경린씨는 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부문에 「사막의 달」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지난해 7월 「염소를 모는 여자」를 제목으로 한 소설집을 문학동네에서 발표했다.<권오현 기자>

◎수상자 전경린씨 소감/“돌연히 눈부신 빛아래 불려나온 심정”

저는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속해서 아래로 걸어 내려갔는데, 돌연히 빛이 저를 덮치고 어떤 힘이 저를 이 자리에 들어올려버린 것입니다. 이곳은 눈부시고 저에게는 아주 힘든 자리입니다. 나무 뿌리처럼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저 역시 문학에 관한 어떤 고정된 견해도 없습니다. 작품마다 그 작품의 운명처럼 제 나름의 문학관을 가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염소를 모는 여자」를 쓸 때 저의 문학관은 상당히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좋은 문학은 우선 철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작품이 아름답고 낯선 방법으로 가장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것을 다루며, 그 속에 현상과 본질과의 거리를 재고, 억압된 것들이 튀어나갈 방향을 예감하는 치열하고 엄격한 힘을 내포하기를 바랐습니다.

저에게 있어 문학은 여전히 외경스러운 영역입니다. 물질이 녹처럼 뒤덮어버린 이 현실은 예리한 단면을 보이며 물 속으로 떨어지는 다리처럼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갑니다. 저는 상당 부분 현실을 부정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딛고 선 현실이라는 실체가 부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허구적이고 편협하며, 가사상태에 놓여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문학의 과제는 새로운 현실과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느낌에 관한 것이 되겠지요. 누군가 저에게 묻더군요. 검은 염소를 몰고 비바람 치는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간 주인공 미소는 어떻게 되었느냐구요. 글쎄요 미소의 행방을 알기 위해 다시 문학적 상상력을 가동시켜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 이후는 이제 우리 생의 문제이니까요. 미소는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그녀는 그곳을 떠난 뒤 염소를 잃어버립니다. 자아는 단지 그곳을 떠날 때 필요한 것이지요. 길 위에서 우리는 또 자아를 내던져버리고 다른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염소는 염소대로, 미소는 미소대로 성장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느 날 우리의 영혼이 끓고 넘쳐 스웨터가 너무 끼인다고 푸념 할 때면, 우리는 다시 거울 속의 자신을 불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스웨터를 좌악 찢어버리고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요.

시간이 흘러 저도 결국, 아주 늙은 여자가 되겠지요. 뻣뻣한 흰 머리카락과 윤곽을 무너뜨리는 주름살과 곰팡이 같은 노인성 반점을 더 이상 가릴 수 없을 때, 제가 무엇을 느끼게 될지 요즘 전 그게 궁금합니다. 제가 30대에 염소를 모는 여자인 주인공 미소를 만들어 냈듯이, 그 때에 가서 한 늙은 여자가 거울 속의 자신을 불러내어 환상과 현실의 틈을 가르며 흘려보내는 관대하고도 싸늘한 미소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쓰겠다는 것. 문학에 있어서 제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써야 한다는 것 뿐입니다. 제 문학적 소망과 목적도 오직 그것 뿐이기를 저는 바랍니다.

저 홀로 걷는 걸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사이 감사를 드리고 싶은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먼저 문단이라는 견고한 벽에 틈을 내시고 처음으로 저를 맞아주신 홍성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염소를 모는 여자」를 실어준 문학과 사회 여러 선생님과 문학동네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런 영광을 주신 한국일보사와 존경하는 박완서 김윤식 김우창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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