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와 그 지난 해 두 차례 나는 이른바 실크로드라는 낭만적인 이름이 붙은 지역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오랜 세월 반도적 삶에 갇혀 살아온 내게 그 여행은 무척 매력적이고 또 모험적이기도 했다. 시안(서안)에서 하서회랑을 지나 몇날 며칠 기차를 타고, 혹은 털털거리는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을 달려가는 동안 나는 그 옛날 기차도 버스도 없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누가, 어떻게, 또 무엇을 위해 이 펄펄 끓어대는 사막을 건넜을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동진시대의 고승 법현은 『…사하에는 원귀와 열풍이 심하여 이를 만나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다. 위로는 나는 새 한 마리 없고, 아래로는 기어다니는 짐승 한 마리 없다. 다만 언제 이 길을 가다 죽었는지 모르지만 죽은 이의 해골만이 길을 가르쳐 주는 지표가 되어 준다…』고 기록하였다.그러나 이 사막길을 때로는 낙타나 말에 의지하여, 때로는 두 발만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있었다. 그 한 무리는 삼장과 법현 같은 구도승이요, 다른 한 무리는 정복을 꿈꾸는 병사들이었고, 나머지 한 무리는 비단이나 다른 물건들을 사고 파는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그 목적이 이 불타는 사막길을, 죽음의 길을 건너게 했던 것이다.
비유컨대 우리는 지금 20세기의 마지막, 격변하는 시대의 사막을 건너가고 있는 중이다. 산업혁명과 사회주의 혁명, 그리고 양대 전쟁으로 시작된 20세기는 사회주의의 몰락과 보수주의적 신질서로 그 막이 내리고 있는 중이다. 그와 함께 한 세기를 움직이던 도덕적 중심은 허물어지고, 불확실성만이 미래의 유일한 법칙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런 세계사적 변화 한가운데서 냉전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한반도는 더욱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며 이중삼중의 고통을 앓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막을 건너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럴 뿐만 아니라 우리식대로 사막을 건너가는 지혜를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낡은 체제, 낡은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이 사막을 건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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