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내내 ‘육성책’ 쏟아냈어도 제조업종 부도 오히려 2배 급증/더이상 제도탓할 시간 없어/구체적 ‘보호 울타리’ 만들어줘야시장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한국의 중소업계다. 정부의 개입을 최대한 줄이고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요즘 한국경제 회생을 위한 지상과제라지만 그것은 대기업에 한해서만 설득력을 가질뿐이다. 모든 것이 대기업위주로 이뤄진 한국경제에서는 중소기업만의 「닫힌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실질적인 중소기업 육성책이다. 그러나 자유롭게 풀어줘야 할 대기업은 온갖 규제로 발목을 잡고, 보호해야할 중소기업은 「방치」해 놓는게 우리의 정책이다.
강원 원주시 태장농공단지에 입주해있는 Y산업은 5년전 이곳 농공단지에 입주하면서 건물신축공사비에 따른 어음 2억원을 막지 못해 부도를 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내주는 정책자금이 있었지만 이를 쓰지 않고 자체자금으로 충당하려다 「동맥경화」에 걸린 것이다. 그러나 이 업체 사장(40)은 『돈을 빌려준다는데 안쓸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안줄 줄 뻔히 알면서 면박당한 적이 어디 한두번이었습니까』라고 항변했다.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중소기업에 대출해준다고 하지만 그쪽에서 요구하는 신용조사 요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중소기업이 얼마나 됩니까. 그렇다면 그건 중소기업이 아닙니다』
몇년전까지만해도 국내의 내로라하는 전기밭솥업체였던 M사는 지난해 난데없이 세무서로부터 50억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당했다. 이 과정에서 주력공장인 군포공장을 뺏기고 설상가상으로 부도를 연거푸 2번이나 맞았다. 채권단의 감독하에 전 사장이 관리인으로 근근이 문래동 공장을 돌리고 있지만 회생가능성은 미지수다. 한때 유망중소기업이었던 이 회사가 졸지에 부도를 맞게 된 것은 『정책당국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라는게 정설이다. 대기업도 휘청거릴 세무조사에 안넘어갈 중소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지난 한해 봇물처럼 터져나온 장미빛 중소기업 청사진이 모두 「없던 일」로 돼버린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중소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쥔 대기업과 정책당국이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장가능성이 있는 기업이라도 「보신주의」 「책임회피」에 급급한 정책기조하에서는 절대로 돈을 빌릴 수가 없다. 신용대출이니 기술담보니 그럴듯 하지만 책임지기 싫다는데는 도리가 없다.
지난해 중소업계는 오랜만에 좋은 분위기에서 한해를 맞았다. 유례없는 부도사태의 여파로 정부와 대기업 등에서 앞다퉈 중소기업 육성책을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정당에서는 중소기업대책반까지 만들어 국회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한해가 지난 지금 중소업계의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대기업이 약속한 하도급 현금결제는 하반기들어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고 장기어음의 급증 등 하도급간 불공정거래는 더욱 심화했다. 산업기반이랄 수 있는 주력제조업종의 부도업체수도 2배가까이 늘어났다.
『더이상 제도를 탓할 수 없습니다. 중소기업에 대한 의식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땅의 중소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부도난 중소기업인의 재기의 모임인 팔기회 사무실을 찾은 한 중소기업인의 고백이다.<황유석 기자>황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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