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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실패,경제의 좌절/박무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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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실패,경제의 좌절/박무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7.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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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경제는 서로 짝이 맞아야 한다. 손뼉은 맞아야 소리가 난다. 고장난명 손이 엇갈리면 소리를 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잘 산다는 선진국치고 정치가 잘못된 나라가 없고 정치가 낙후된 후진국치고 잘 사는 나라가 없다. 수레의 두바퀴처럼 정치 경제는 나란히 발전하는 것이다.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1만달러 소득 수준으로 우리 경제는 선진대열에 진입할 조건을 갖추었다고 한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도 그래서 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쪽은 어떤가. 문민정부가 민주화의 큰 시대적 흐름을 열었다고 하지만 눈 앞에 전개되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한심한 구시대의 낡은 정치다. 수레바퀴의 한 쪽이 찌그러져 선진국 가는 길을 눈 앞에 두고 비틀거리며 주저앉는 모습이다.

우리 정치가 낡았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아직도 통치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진국에서 볼 수 있는 권위적인 제왕정치가 바로 통치다. 통치에는 반드시 해야하는 것이 있고 절대로 안되는 것이 있다. 정치에서는 모든게 상대적이고 절대란것이 있을 수 없다. 통치에는 일방적 지시와 명령만 있고 복종이나 거역만 존재할 수 있다. 정치에는 충돌과 대립과 갈등이 있고 때로는 혼란도 있다. 통치에는 반대수단이 오로지 저항과 투쟁뿐이지만 정치는 대안과 타협, 조정과 양보등 다양한 형태로 반대를 수용할 수 있다. 흑백TV와 컬러TV 같은 차이다.

국가적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는 최근의 사태를 한걸음 물러서서 역사의 긴눈으로 바라보면 이것은 선진화 단계의 중진국들이 유행병처럼 앓는 일종의 열병이다.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픔 같은 것이다. 6·29선언과 87년의 노사 대분규를 시발로 민주화 과정에 들어선 이후 10년여에 걸쳐 앓고 있는 정치적 열병이고 민주화 과정의 시련이다. 남미형 열병인 것이다.

경제가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면 법과 제도와 의식등 사회전반에 걸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역사의 경험법칙이다. 나라의 틀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문민정부가 부르짖었던 변화와 개혁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변화는 성숙기의 경제에 걸맞게 통치를 정치로 발전시키는 민주화 과정에 실패하고 있다. 경제사회의 변화를 정치가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사태를 발전론의 관점에서 보면 그 원인과 해법은 간단하다. 경제의 요구에 부응치 못하는 후진국형 개발 정치, 아직도 통치수준에 머물고 있는 미숙하고 저급한 정치, 그게 바로 원인이다. 야당이 파업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유신같은 통치시대의 저항이고 투쟁이지 정치가 아니다. 여당이 군단을 이루어 새벽의 기습 날치기를 감행한 것 역시 통치에 대한 순종일 뿐 정치라 할 수가 없다. 국회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할 일이 없어 문을 닫고 노는 나라에 정치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정치의 빈곤, 정치의 총체적 실패가 난국의 원인이다. 따라서 시국수습의 실마리는 정치에서 나와야 한다. 책임있는 정치인들이 모두 사퇴하는 것이 순리겠으나 우선 상황을 유발한 신한국당의 지도부, 그 중에서도 정부안을 밀실에서 수정하고 기습처리를 주도한 강경파들이 사퇴하는 것이 국면을 수습하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야당도 국회로 돌아와야 한다.

국법질서가 타협의 대상이 되는 것은 용인할 수 없지만 그러나 사태를 실질적으로 지난 연말 상태로 돌려놓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리더십과 정치력을 시도해 본다면 평화적 사태해결의 길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통치적 수법으로 갈등을 봉합하는 것은 남미국가들이 걸었던 길이다. 정치력으로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지금은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위험한 고비다. 남미의 ABC가 남겨놓은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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