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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철저히 만들어진 ‘꿈의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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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철저히 만들어진 ‘꿈의 빵’

입력
1997.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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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적 재능의 소유자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는게 아니다/스타제조 시스템에 의해 ‘팔리기위해’ 조립되고 가공된다/청소년들의 우상 H.O.T는 10대라는 기본 컨셉에 맞춰 6개월간 공들인 대표적 상품/그러나 ‘환상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하지 않는다「스타는 완전한 상품이다. 1㎝의 신체도, 혼의 한가닥 섬유도, 한 조각의 추억도 모두 시장에 내놓아지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책 「스타」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타탄생은 천부적 재능의 소유자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스타는 철저히 시스템에 의해, 「팔리기 위해」 만들어진다. 시장경제 하의 상품들처럼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중의 취향을 좇아 철저히 표준화되고 조립되고 가공된다. 「어느날 아침 일어나 보니 유명해졌더라」는 말은 낭만주의 시대 영국시인 바이런에게나 통하는 얘기다. 자본주의 시대 스타탄생에는 낭만도 감동도 없다. 스타 의존도가 유난한 우리 대중문화계의 가요 영화 방송 광고 패션 등 모든 영역에서 스타만들기는 끊임없이 펼쳐진다. 때로는 대기업의 프로젝트를 방불케 한다. 프로젝트가 치밀하면 할수록 「제품의 순도」는 보장된다.

「서태지와 아이들」이래 청소년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H.O.T. 틴에이저 5명으로 구성된 이 댄스그룹은 데뷔 100여 일만에 80만 장의 앨범을 팔면서 말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신드롬에 가까운 청소년의 우상이 됐다. 이들의 야외공연은 안전문제 때문에 번번히 취소돼야 했다.

95년 가을. 가수겸 MC출신 이수만이 설립한 SM 기획은 새로운 그룹을 기획 중이었다. 그들이 잡은 컨셉은 「10대」. 10대 그룹인 「아이돌」의 성공과 지난 몇년간 10대들이 보여준 음반시장 소비세력으로서의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한 결과였다.

1단계는 컨셉에 맞는 인물 찾기. SM측은 공개 오디션과 인맥, 거리헌팅을 통해 멤버를 모집했다. 선발 기준은 춤, 노래, 외모 3가지. 수백명의 지원자 중 1차로 문희준과 강타, 이재원이라는 세 명의 고등학생이 뽑혔고 보다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얼마 뒤 장우혁과 재미교포 토니 안을 추가해 5명을 채웠다.

2단계는 스타 조련. 역시 춤, 노래, 외모의 세가지 부문에 걸쳐 전문가들이 달라 붙었다. 춤은 호텔 무용수 출신의 박재준, 노래는 작곡가 유영진, 의상은 서태지와 아이들, R.ef의 코디네이터였던 고경민이 맡았다. 춤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노래는 10대들이 피부로 느끼는 정서, 외모는 헐렁한 의상과 단순한 액세서리, 그리고 각자의 고유캐릭터 창출. 5명은 각각 풍기는 분위기에 따라 이미지가 씌워졌다. 남성(강타), 미소년(이재원), 반항(장우혁), 지성(토니 안), 유머(문희준)라는 캐릭터로 서로를 보완했다. 초록 파랑 주황 노랑 빨강 등 고유의 색깔이 이미지에 따라 주어졌다. 그룹 이름은 H.O.T(High-Five Of Teenager)로 정해졌다. SM측은 「10대들의 승리, 10대들의 외침」이라고 뜻을 설명했다.

「10대」라는 기본 컨셉에 철저하게 맞춘 것이다. 엉덩이로 마룻바닥을 튕기며 나가는 「파워 레이서 춤」, 팔과 다리로 동작을 이어가는 「망치춤」, 엉덩이를 탁 치며 아픈 표정을 짓는 「주사춤」 등 간편한 율동. 각자의 이름과 학급 번호를 새겨 넣어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들을 연상시키는 운동복과 긴 파카, 털모자, 큰 벙어리 장갑, 선 캡, 은귀고리 등 편한 의상과 귀여운 소품.

노래는 10대들의 관심거리인 학교 폭력을 고발하는 갱스터 랩 「전사의 후예」와 풋내나는 사랑 노래 「캔디」를 내세웠다. 6개월이 넘는 반합숙과정 끝에 「끼」만 있는 평범한 학생들이었던 멤버들은 춤, 노래, 외모 3박자를 고루 갖춘 예비스타로 탈바꿈했다. 이 과정이 스타제조의 핵심공정.

3단계는 홍보. 공들여 만든 「상품」을 알리는 과정이다. 스타가 될 수 있느냐의 성패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SM측은 대형 콘서트로 대중을 만나게 하는 동시에 방송사 PD들에게 춤과 노래를 직접 보여 주었다. 라디오 PD들에게는 「전사의 후예」가 갖는 문제의식 위주로 음반 홍보에 주력했다. 짬짬이 인터뷰를 하고 각종 쇼 프로그램에도 출연시켰다. 치밀한 기획 덕에 스타를 기다리던 방송국은 호의적이었고 10대들로부터도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곧 여기저기서 출연 요청이 쏟아졌다. 데뷔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H.O.T는 현실의 「드림팀」으로 탄생했고 「H.O.T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스타제조 경비는 얼마나 들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작사, 작곡, 연주를 포함한 음반제작비가 4,000만∼1억원 가까이 든다. 코디는 최하 월 100만원, 안무와 백댄싱은 최하 월 500만원 선. 음반만큼 중요한 뮤직 비디오 제작에도 500만∼2,000만원이 든다. H.O.T의 스태프는 매니저와 코디 4명, 로드 매니저 등을 합해 9명. 홍보비는 제작사마다 밝히기를 꺼리나 대개 제작비만큼 든다. 들인만큼 나온다는 것이 가요계의 통설이다. 손익분기점은 음반 10만장. 1년에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가수는 20여명 정도다.

H.O.T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렇게 탄생한 스타를 소비하는 건 물론 대중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타는 만들어진다」는 엄연한 사실을 그다지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한다. 스타는 옷이나 자동차 같은 보통의 상품과 다르기 때문이다. 에드가 모랭의 말대로 스타는 「꿈의 빵」이다.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을 꾸기 위해 먹는 빵과 같다. 또 소비하면 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유일한 상품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스타는 명백한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생성의 비밀과 제조공정까지도 아름답게 포장되어야 한다. 마치 상품이 아닌 것처럼. 상품을 만드는 사람들도 웬만해서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어느날 갑자기 신으로부터 선사받은 뛰어난 재능을 우연히 선보이게 되는 것처럼.

환상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알고도 속아가며 그 환상을 산다. 즉 스타를 소비하는 것이다. 그 밑바닥에는 혹시 자신도 자고 일어나 보면 스타가 되어있지나 않을까 하는 내밀한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스타는 그것을 대리만족시켜준다.<김지영 기자>

◎‘만들어진’ 가수가 늘면 늘수록 ‘만든’ 제작자와 분쟁도 는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자기 수단(?)을 발휘하여 화려한 데뷔를 하면 「매니저」란 명색의 인물들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71년 12월1일자 모신문에 실린 「연예계의 돌팔이… 김추자 사건으로 본 매니저 생태」라는 제하의 기사중 일부. 이렇듯 당시만 해도 매니저란 연예인에게 기생, 혹은 공생하는 인물들을 통칭하는 말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매니저·제작자들은 대중 스타의 이미지를 창출하고 판매하는 쇼비즈니스계의 전사가 됐다. 그러나 그들의 높아진 위상만큼이나 연예인과 매니저, 연예인과 제작자간의 분쟁도 불거지고 있다.

인기그룹 터보(김종국, 김정남), R.ef(박철우, 이성욱, 성대현)는 기획사와의 불화로 전속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계약종료를 선언, 분쟁이 붙은 상태. 『계약서대로 해주었다』는 스타뮤직 측과 『기획사 측이 돈을 제대로 주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는 터보의 주장은 평행선이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기획사, 매니저와 연예인 특히 가수들 간의 분쟁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가수들의 경우 방송출연과 광고출연 외에 업소출연과 음반판매 등 수익원이 다양해 분쟁이 커질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갈등의 주요인은 「만들어지는 가수」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터보나 R.ef, H.O.T 같은 댄스그룹은 철저히 만들어진다. 가능성 있는 예비스타들에게 기획사는 투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룹 단위의 활동이 늘면서 비용도 3배가량 늘어났다. 6개월 춤연습, 2개월 노래연습은 물론 백 댄서, 코디네이터 등 많은 스태프, 연습실, 숙식, 밴차량까지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한 제작자의 말.

노래 실력 하나로 가수가 되는 시대가 지나고 연예인이 「엔터테인먼트 상품」이 되면서 제작자의 비중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비용이 많이 드는 대신 단기간내 이익회수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제작자들은 댄스그룹을 키우는 데 경쟁적으로 뛰어 들고 있다.

제작자들은 댄스그룹과의 5대 5 비율의 이익금 배분에 대해선 이렇게 말한다. 『10명 키워봐야 스타 1명 건지기 힘들다. 연예 사업의 생리상 1억원을 투자했다가 전혀 회수를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가수들이 손해를 배상해주느냐?』

분쟁이 늘면서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에서는 관인표준계약서를 작성 중에 있다. 제작자와 가수 간의 계약기간, 로열티 지급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명기하겠다는 방침이다. 계약기간도 2년으로 고집할 것이 아니라 탄력적으로 운용할 것을 권고할 예정. 어쨌든 「무형의 노하우」를 제공하는 제작자들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관철시키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처럼 일정기간 가수 월급제 같은 방식을 도입하거나 미국처럼 변호사가 개입한 철저한 계약제가 이행되지 않는다면 「만들어진 가수들」과 「만든 제작자」사이의 갈등의 불씨는 사그러지지 않을 것이다.<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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