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와 근대 초 흑사병을 하느님이 사악한 인간을 벌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 중에는 스스로의 몸에 채찍질을 가하면서 고행의 길을 택한 경우도 있었다. 또 변기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거나 가능한한 빨리 먼 지역으로 달아났다가 천천히 돌아오는 「빨리 멀리 천천히」요법 등 미신적인 치료법도 사용됐다.이밖에 오늘날의 관점에서 타당한 방법도 있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처음 시행된 행정적 조치는 검역정선 또는 검역격리(quarantine)로서 이는 숫자 40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quaranta」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배가 항구에 머무는 첫 40일동안 육지와의 접촉을 금지한 것이다.
베네치아를 뒤따라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도시에는 검역소나 격리병원이 세워졌다. 당시 페스트균은 물론 세균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고 그런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더욱 몰랐지만 면밀한 관찰을 통해 그같은 근대적 예방법을 시행했던 것이다. 흑사병은 결과적으로 유럽사회가 근대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는 데 일조했으며 의학의 영역에서도 그런 역할을 수행했다.<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의사학>황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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