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라면/배고픔의 상징서 기호품으로(브랜드 사회학:2)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라면/배고픔의 상징서 기호품으로(브랜드 사회학:2)

입력
1997.01.15 00:00
0 0

배고프고 가난하던 시절, 허기와 정신적 공복감을 채워주던 라면. 63년 첫선을 보인 후 라면은 주식 대용에서 기호품으로 바뀌었다. 라면의 맛도, 종류도, 모양도 시대에 따라 변천을 거듭했다.라면에는 향수가 있다. 특히 중장년층에게 라면은 지난했던 과거를 생각케 한다. 향토장학금이 부모로부터 올라오면 가장 먼저 라면박스를 들여다 놓아야만 비로소 안심이 됐다. 얼큰한 라면국물을 안주삼아 밤새 친구들과 소줏잔을 기울이며 문학과 사회를 논했다. 군대에서 보초를 서다 졸병들이 끓여다 주는 라면은 꿀맛이었다. 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임춘애 선수는 「헝그리정신」의 상징이었다. 라면이라도 배터지게 먹어봤으면 하는 작은 소망들이 있었다.

58년 일본 「닛신식품」에서 처음 개발한 인스턴트 라면은 중국인들이 즐겨먹던 「유면」또는 「라면」에서 유래했다. 이름도 중국의 「라멘」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63년 삼양식품에서 나온 「삼양라면」. 당시만 해도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역이나 극장 앞, 공원 등에서 무료 시식회를 열어야 했다. 이름 때문에 옷감이나 실 이름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인스턴트 밀가루 식품으로 한끼를 해결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 라면은 쉽게 대중화하지 못했다. 65년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혼분식을 장려하면서 라면은 대중적인 식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 라면 시장의 전체 규모는 8,700억원. 한해동안 우리나라 국민이 1인당 소비하는 라면은 80개. 라면 종류만도 100여 가지나 된다.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해외 수출도 크게 신장돼 전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거대한 시장을 두고 업체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오랫동안 선두의 자리를 지켜오던 삼양식품은 농심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현재는 한국야쿠르트, 빙그레, 오뚜기 등이 합세, 5파전의 치열한 양상이다.

라면맛의 차이는 어떤 기름에 면을 튀기느냐로 결정된다. 라면에 사용하는 기름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89년 하반기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공업용 유지 사건」. 국내 유명식품업체들이 라면과 쇼트닝, 마가린에 공업용 유지를 사용하여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라면 신제품 개발의 역사는 「빨리 빨리」 신드롬을 만들어 낸 고도성장의 역사이기도 하다. 「끓는 물에 4분간」으로 시작된 속도 경쟁은 3분에서 2분으로 단축되었고, 끓이지 않고도 뜨거운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용기 라면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라면 소비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전쟁 이후의 가난과 고도성장의 역사를 경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속도 경쟁이 끝나자 라면업계는 라면의 고급화로 눈을 돌렸다. 소득수준의 향상과 식생활 패턴의 변화로 소비자들의 입맛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영양에 도움이 되는 각종 성분을 첨가한 기능성 라면, 천연 양념을 사용한 라면에 이어 기름에 튀기지 않은 생면까지 선을 보였다. 봉지 라면, 용기 라면에 이어 「제 3세대 라면」이라고 불리는 생면은 아직 큰 수요는 없지만 꾸준한 성장세이다.

이제 라면은 기호품으로 자리잡았다. 색다른 맛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별미 라면까지 등장하고 있다. 「라볶기」, 「치즈라면」, 「탕수라면」, 「라면전골」, 「라면잡채」 등은 기발한 요리법을 곁들여 신세대들의 패션화한 입맛을 자극하고 있다. 라면요리 전문 음식점도 등장했다.<김미경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