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용지값 미국 10배 넘는 세계 최고수준/기업들 앞다투어 ‘해외로 해외로’ 탈출러시/애써 찾아온 외국기업도 다시 발길돌려환경기기 전문제조업체인 월드링크사(대표 김정원)는 어엿한 공장을 가져보겠다는 꿈을 버린지 오래다. 최근 미국 업체와 합작으로 자동차의 매연발생과 연료소비율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E·K시스템」을 개발, 주목을 받고 있는 이 회사는 경기 용인에 400여평의 땅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생산공장을 세우려던 계획은 지방자치단체와 중앙관청을 오가는 까다로운 허가절차와 각종 규제로 2년여만에 포기해야 했다. 「E·K시스템」의 본격생산을 앞두고 궁여지책으로 경기 부천시 원미동의 한 영세기계가공단지에 세를 든 것이 지난해 7월. 60평짜리 낡고 작은 공장이었다. 교통과 입지여건은 열악해도, 월 임대료에 보증금까지 합치면 매달 400만원 가량이 이 조그만 공장의 부동산비용으로 나간다.
「E·K시스템」의 개발에 투입된 자금이 2억8,000만원인데 이 개발비의 6분의 1에 해당되는 돈이 해마다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셈이다. 김사장(45)은 『60평은 웬만한 생산설비 하나 갖출 수 없을만큼 비좁은 공간이지만 더 큰 곳은 엄두도 못낼 형편』이라며 『내땅은 공장도 짓지 못한채 놀리면서 공연히 임대료지출만 늘어나는 것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올 지경』이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공장을 세울 땅이라도 있고, 비교적 값싼 임대공장을 구할 수 있었던 김사장의 경우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턱없이 높은 땅값에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기계를 뜯어내 이 공장 저 공장을 전전하다 도산해버리거나 무허가공장이라도 세워놓고 작업을 하는 기업인들이 아직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높은 땅값은 이처럼 기업의 생산활동을 위축시키고 나아가 우리경제의 발목을 꽉 붙들어매는 대표적 장애요인이다. 기업들이 생산활동으로 땀흘려 번 돈의 상당부분을 토지구입비와 임대료로 날려버리는 동안 한국경제는 경쟁력을 잃고 휘청대고 있다.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공장부지값 때문에 기업들은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앞다투어 외국으로의 탈출러시를 이루고 있고 투자를 하려고 한국땅을 밟은 외국기업들은 다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기업인들은 좋은 물건을 만들어 아무리 열심히 팔아도 땅값에 임대료를 물다보면 남는게 없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 불만감과 위화감만 커져간다. 선반·프레스·용접업체 등이 밀집해있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공장지구에 입주한 D사의 이모 사장(43)은 『입주업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월세를 내느라 숨이 가쁜데 건물주는 틈만나면 골프채를 메고 해외로 나간다』며 『열심히 일해서 땅주인 배불려주기에 바쁘다』고 짜증부터 냈다.
국가가 수출산업 진흥을 위해 조성한 대규모공단의 사정은 어떠한가. 웬만한 국가공단도 용지값이 평당 50만원을 넘어선다. 이런저런 비용이 추가돼 평당 100만원을 호가하는 지역도 적지 않다. 태국의 레이용공단(평당 12만6,000원) 영국 바글란공단(〃 5만9,000원) 미국의 웨스트포트 무역지대(〃 3만6,000원) 등과는 비교도 안된다. 그렇다고 우리공단이 시설과 여건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이러다 보니 기업들은 공단에 들어갈 엄두도 못내고 공들여 조성한 공단마다 미분양사태가 속출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틈만나면 공단분양가를 인하하고 장기저리 임대아파트공장이나 영세기업인들을 위한 공단을 건립해줄 것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진 것이 없다.
재경원에 따르면 95년 현재 공시지가 기준으로 국내 총토지가격은 1,638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5.4배에 달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총토지가격은 GDP의 0.7배, 프랑스는 0.9배에 불과하고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도 3.9배로 우리나라보다 땅값 부담이 훨씬 낮다. 결국 우리기업들은 고지가로 인해 기술개발비과 재투자를 위해 써야 할 귀중한 자금을 땅에 쏟아붇고 있는 셈이다. 국내업체가 땅에 묻고 있는 돈으로 외국 경쟁업체들은 기술개발에 몰두하고 있다면 승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높은 땅값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고서는 기업의 발전은 물론 우리경제와 국가경쟁력의 회생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변형섭 기자>변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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