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살았던 시대 남아선호의 희생/“딸이기에 버린 부모는 싫지만 형제자매는 꼭 만나고 싶다”/상봉주선 TV프로 신청 봇물박춘자씨(46·주부)는 66년 서울에서 살던 가족과 헤어졌다. 1남3녀 중 가운데 딸이었던 박씨는 「가난한 살림에 입 하나라도 덜어보자」는 부모의 생각에 따라 부산의 어느 집에 식모로 보내졌다. 그후 2년 정도는 엄마와 언니가 가끔 찾아왔지만 68년 이후로는 그마저 끊어졌다. 결혼과 동시에 식모살이는 벗어났지만 같은 또래들이 교복입고 학교가는 걸 보던 때의 마음고생은 잊혀지지 않았다. 가족도 원망스러웠다. 가끔 언니와 여동생이 보고 싶었지만 부모에 대한 미움이 더 깊었다.
그가 가족을 찾아나선 것은 지난해 5월.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KBS1 「아침마당」에서 「그 사람이 보고 싶다」는 코너를 대하고서였다. 신청한 지 3개월만인 8월 박씨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언니와 여동생을 만났다. 그토록 원망했던 부모와 오빠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애들을 키워놓고 나니까 가족이 그리웠다. 진작에 찾아볼 걸 하는 생각도 든다』고 박씨는 말한다.
60∼70년대 가난 때문에,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버려졌던 「딸」들이 가족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아침마당」에서 시작된 중년주부들의 뒤늦은 가족찾기는 최근 SBS 「출발, 모닝와이드」와 MBC 「두 여자」가 가세하면서 90년대 후반의 새로운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 「아침마당」의 경우 이같은 여성들의 출연신청이 이미 3,000건을 넘어섰고 「출발, 모닝와이드」와 「두여자」도 출연 신청자중 30%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중년여성들이다.
이들은 어릴때 남의 집에 식모나 양녀로 보내졌던 40대 여성들. 대부분 남의 집살이를 하다가 여공이나 버스안내원을 전전하는 등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한결같이 『나를 버린 부모는 보고 싶지 않지만 형제자매는 꼭 만나고 싶다』고 호소한다. 부모가 보고 싶지 않은 이유는 아들은 두고 딸인 자신만을 버린 데 대한 원망 때문이다.
쌍둥이로 태어나 돌이 되기도 전에 남의 집에 수양딸로 보내졌던 이민숙씨(41). 이것이 평생 한이었던 어머니와 쌍둥이언니가 「아침마당」에 편지를 보내서 지난해 10월 40년만에 가족과 상봉했다. 그는 『죽을 먹더라도 같이 살았어야지 왜 나만 버렸냐』고 울먹였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 너무 고생스러워 너라도 제대로 먹고 살라고 보냈다』고 변명했다. 이씨는 『위로 오빠 두 명을 두고 자신을 남의 집에 보냈다는 것도 가슴 아팠는데 나를 보낸 뒤 어머니가 다시 남동생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남아선호에 따른 「딸 버리기」는 「보건사회통계연감」 75년판에서도 엿볼수 있다. 66∼75년 전국의 아동복지시설에 수용된 인원은 여아가 남아의 2배 이상이다. 66년 수용된 남아의 수는 3,234명인 반면 여아는 7,369명이었고 75년에도 남아가 1,391명인데 여아는 2,282명이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이상헌 연구원은 『기아만 따로 분류하면 이같은 차이는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침마당」의 연출자인 오수성씨는 『이런 사연으로 가족을 찾는 남자는 없다. 이는 분명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사회학자 이효재씨는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중반까지는 우리사회가 빈곤에서 고속성장으로 가는 시기로 여성의 희생과 고통이 엄청났다. 이 시기에 버려진 여성들은 「남동생의 학비를 대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는 누나」의 상으로 미화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김동선 기자>김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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