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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여론조사/무응답·거짓응답 벽을 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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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여론조사/무응답·거짓응답 벽을 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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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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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앞두고 늘 등장하는 단골메뉴/그러나 과연 믿을 수 있을지/다른 결과 나온게 한두번이 아니고…/속마음 노출기피·피해의식따라 무응답이 때론 30% 넘고 엉뚱한 응답을 하기도 하는데/게다가 선호도변화·돌발상황 등을 제대로 반영하는지…「무응답과 거짓 응답의 벽을 넘어라」

연말의 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업계가 마주한 「지상명령」이다. 올해는 유권자 동향을 감지하기 위한 각 정파와 언론기관의 여론조사 의뢰와 보도가 홍수를 이룰 것이다. 이를 예고라도 하듯 주요 신문들은 여당 대선후보 경합자들의 지지도와 여야간 가상대결 여론조사 결과를 신년호 머릿기사로 보도하는 것으로 새해를 열었다. 이같은 여론조사는 여야의 후보선출 및 선거전략에는 물론 일반 국민들의 투표행태에도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 여론조사는 과연 얼마나 객관적이고 정확한가. 한국통계학회장인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박성현 교수는 『객관성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본다』고 말했다. 표본집단의 불균형, 수준 이하의 설문, 조사원의 미숙, 유도성 질문 등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언론자유의 확대와 노하우의 축적, 조사기관의 질 경쟁으로 날이 다르게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성, 즉 조사결과와 투표결과의 근접도는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대선이나 광역단체장선거보다는 선거구수가 많은 총선이 특히 그렇다는 설명이다. 4개 방송사와 5대 여론조사기관이 공동조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253개 선거구 가운데 39개구의 당선자 예측이 빗나간 지난해 4월11일 15대 총선이 가장 최근의 사례이다.

이런 오류의 가장 큰 원인은 지지후보를 밝히기를 거부한 무응답자들의 태도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나라의 정치여론조사에는 유난히 무응답자가 많다. 총선이든 대선이든 투표일이 임박해도 무응답자 비율이 30%를 넘은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는 속마음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문화와 오랜 군사정권을 거치며 형성된 유권자들의 「피해의식」, 정치불신 등에서 비롯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94년 경주시 보궐선거 투표일을 이틀 앞둔 7월31일 한 언론사가 조사한 후보별 지지율은 민자당 임진출후보 30.5%, 민주당 이상두후보 14.9%, 기타후보 23.7%, 무응답 30.9%였다. 당연히 임후보의 승리가 예상됐다. 그러나 무응답층의 「반란」으로 투표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무응답자의 3분의 2가 이후보에게 몰려 이후보가 33.7%를 득표, 32.6%를 얻은 임후보를 따돌린 것이다. 15대 총선에서도 서울의 경우 무응답자에 의해 판세가 뒤집힌 선거구가 47개중 12개에 달한 것으로 한국갤럽 조사결과 밝혀졌다. 그렇다고 무응답자들의 투표행태를 일정한 도식으로 정형화하기도 어렵다. 15대 총선후 서울에서 무응답자의 지지를 가장 많이 얻은 선거구수를 정당별로 산출한 갤럽조사에 따르면 신한국당 23개, 국민회의 21개, 민주당 2개, 자민련 1개로 여야비율이 엇비슷했다. 경주시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한마디로 무응답층의 선택은 당시 정국상황과 지역사정 등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미디어 리서치의 안부근 전무는 『무응답층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높이는 최대 관건』이라며 『그러나 지역색이 뚜렷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돈과 시간, 자료부족 때문에 아직은 정확한 예측에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거짓 응답을 가려내기도 어렵다. 전문가들은 적잖은 유권자들이 무응답자와 비슷한 이유로 지지후보가 아닌 엉뚱한 후보를 거명해 조사의 정확도를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이 경우 야당을 지지하면서 여당후보를 선호한다고 거짓말을 하는 사례가 역의 경우보다 많다는 분석이 나와 있다.

95년 지방선거 투표일 전날인 6월26일 미디어 리서치가 조사한 대전시장 후보별 지지율은 민자당 염홍철 후보 23.6%, 자민련 홍선기 후보 39.4%로 두 후보간 격차는 15.8%포인트였고 무응답은 24.2%였다. 그러나 개표결과 홍후보가 63.8%를 얻어 20.9%를 얻은 염후보를 압도적으로 눌렀다. 산술적으로는 24.2%의 무응답자가 몽땅 홍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는 계산이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권한 사람과 여당후보에 표를 던진 사람도 무응답자중에는 포함돼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염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던 응답자 가운데 일부는 거짓으로 응답해 놓고 실제 투표에서는 홍후보를 찍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밖에 특정후보 지지층의 투표참여율과 인구특성, 선호도의 변화 가능성, 돌발적 상황의 파급효과까지 반영한 지지도 판별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정치여론조사의 허점으로 지적된다.

95년 지방선거에서 투표전 여론조사를 통해 무응답 비율을 한자리수로 낮추면서 개표결과에 근접한 수치를 도출했던 미디어 리서치의 조사방법은 무응답과 거짓 응답에 따른 오류의 해소책으로 유의해 볼 만하다. 미디어 리서치는 투표 나흘전인 6월23일 조사원이 설문지를 500명의 응답자에게 주고 직접 작성토록 한 다음 이를 봉투에 밀봉해 돌려 받는 방식으로 경기지사 후보의 지지도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원이 응답내용을 알 수 없으므로 응답자의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된 것이다.

그 결과 무응답층은 불과 이틀전인 21일 전화조사 당시 36%의 6분의 1수준인 6.4%로 줄어 들었다. 후보별 지지도는 민자당의 이인제 후보 39.3%, 민주당 장경우 후보 25%, 무소속 임사빈 후보 23.5%로 집계됐다. 실제 득표율은 당시 여론조사의 허용오차(±4.4%)를 거의 벗어나지 않은 이후보 40.6%, 장후보 29.6%, 임후보 19.7%였다.

◎쏟아지는 대선조사 의미있나/인지도·이미지 조사 그쳐/경쟁 본격화하면 달라질 가능성도

주요 신문이 올해 신년호 특집으로 내 보낸 15대 대선관련 여론조사 결과는 과연 정확한가.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공통분모를 추출할 수 있다.

「신한국당의 대선후보 가운데 박찬종 고문이 선호도 1위로 약진, 2위인 이회창 고문과 함께 확실한 선두그룹 형성. 야권의 김대중·김종필 총재의 대선후보단일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회의적. 설사 김대중 총재로 후보단일화를 이뤄도 박고문과 이고문에는 역부족」

여론조사기관 관계자와 교수 등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여론의 한 단면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우리나라 정치의 역동성과 다양한 변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현실성은 다소 떨어진다』고 평가하고 있다.

고려대 통계학과 허명회 교수는 『최근의 여론조사는 누가 더 대중에게 알려져 있는지를 조사한 데 지나지 않는다』면서 『실제 선거가 다가오면 이미지나 인지도의 영향은 줄어 든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결과 화제가 된 박고문의 상승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지에 특별한 관심을 표했는데 그의 인기는 「가변성」이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여론조사기관의 한 간부는 박고문이 주부와 여성, 20대와 대학생, 고졸출신 응답자 등에서 강세를 보인데 대해 『그동안의 조사 경험상 주부와 여성은 태도변화의 개연성이 있고, 20대와 대학생은 투표 참여율이 낮으며, 고졸출신은 고학력자에 비해 여론형성 능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요인을 감안해 판별 분석을 시도할 경우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한 교수도 『박고문의 인기는 14대 대선과 서울시장선거에 출마하면서 쌓은 지명도에 크게 힘입은 것』이라며 『여당의 대선후보 경쟁이 본격화하면 다른 후보도 언론의 조명을 받게 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또 야권 단일후보, 특히 김대중 총재와 박고문 또는 이고문의 가상대결 결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나타냈다. 김총재의 필패로 나타난 조사결과는 후보단일화가 이뤄졌을 경우의 「파급 효과」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과반수의 응답자가 후보단일화 자체에 회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김총재가 박고문 또는 이고문과의 가상대결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막상 후보단일화가 이뤄지고 여야 맞대결 구도가 되면 이번 조사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면서 『응답자의 심리와 선거 양상까지 고려한 분석, 보도가 요구된다』고 말했다.<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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