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스키타러 가요” 초등학생 딸애 성화에…큰 애가 5학년이 되어 처음 적어 본 가정환경조사서는 내가 학교 다닐 때와 거의 같았다. 집 소유 여부, 아빠 직업, 피아노와 컴퓨터가 있는지 등. 아빠 직업란에 「강사」라고 썼더니 집안어른들이 수정잉크까지 주어가며 「교수」라고 고치게 했다. 애 기죽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적었다고 해서 강사가 교수가 되는 것이 아니어서 한동안 우리는 미국에서보다 더 궁핍하게 살았다.
어느 날 과학자나 철학자가 되겠다던 큰 아이가 식탁에서 아주 심각하게 말했다. 『저는 아무래도 큰 아빠처럼 사업가가 되어야 하겠어요. 그리고 스키강습을 가야 해요』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인생을 즐기며 살려면 스키도 배우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의 말이 슬펐지만 나는 조용하게 말했다. 『아빠는 선생님이라 스키강습까지는 시켜줄 수 없다. 네가 사업가 되어 배우렴』그랬더니 아들애는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그리고 몇년 조용히 지냈는데 딸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해마다 눈이 오는 이맘때가 되면 단골메뉴처럼 말했다. 『아빠 스키 타러 가요』 스키를 타러 가야 한다는 딸애의 이유는 훨씬 더 상대하기 어려웠다. 큰 아이처럼 개인적 행복추구론을 들춘 것이 아니라 친구들은 모두 가는데 왜 우리는 갈 수 없느냐는 위화감 차원의 문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 자신도 때로 확신할 수 없었던 세상살이를 어린 딸에게 말해야만 했다. 『마리야, 세상에서 명예와 돈을 함께 다 갖기는 힘들다. 그리고 돈은 명예를 따라올 수도 있지만 돈으로 명예를 살 수는 없다. 「선생님」은 아주 명예로운 직업이다』 얄밉게도, 남보다 10년이나 늦은 뒤부터 월급봉투를 받아와 이런 사태를 야기시킨 남편은 여느 때의 당당함에다 그 날은 흐뭇함까지 더하여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다음해에 딸애는 기특하게도 스키 타러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과학철학을 전공하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언제 노벨상 타요?』 얼굴이 벌개진 제 아빠를 대신해, 이유를 묻자 딸애는 말했다. 『노벨 전기 읽었는데, 엄마 말이 맞아요. 명예에는 돈이 따라와요. 상금 타면 스키타러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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