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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에 평교수 복귀/박홍 전 서강대 총장(한국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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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에 평교수 복귀/박홍 전 서강대 총장(한국인터뷰)

입력
1997.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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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놓은 주판 털고 새로 놔야”/노·사·정 처음부터 다시 대화를/요즘 학생운동 우려와 희망 교차/우리사회 ‘생명존중’ 질적 리더 필요/앞으로 인성교육·통일문제 연구 계획노동계 총파업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각계각층에서 해법을 내놓고 있다. 8년간의 서강대총장 임기를 마치고 평교수로 돌아온 박홍(55) 신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미묘한 상황에서 소신있는 발언을 해온 그는 13일 기자와 만나 『잘못된 것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며, 목표는 공동선 추구밖에 없다』는 시국평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70년대초의 「민주투사」행동과 90년대초의 「극우발언」도 정권연장의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정부, 자기주장만 강요하는 극좌운동권에 공동선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편집자 주>

□대담:정병진 사회부 차장

―노동법 날치기 통과, 노동계의 총파업, 정부의 강경대응 등 일련의 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칫 명동성당에 또 다시 공권력이 투입될 상황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여권이 대화와 토론을 제의하고 야권도 해법을 제시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날치기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잘못된 것은 사실입니다. 또 공권력은 결코 오용되거나 남용되어서는 안됩니다. 국가의 공권력은 공동선을 추구하고 생명가치를 지키기 위해 현명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주판을 놓다가 잘못 놓았을 때는 탁 털고 처음부터 다시 놓듯이 공동선을 위해 정계 관계 노사등 각계각층이 지금부터라도 대화를 나누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여권이 「대안」들을 내놓고 있는데, 개정 노동법안을 그렇게 처리하기 전에 진작 했어야 할 것들입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입법부와 행정부, 노와 사 모두가 함께 토론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8년만에 평교수로 돌아왔습니다. 총장으로서 느꼈던 보람이나 아쉬웠던 일, 당시의 소감등을 말씀해 주십시오.

『민주화의 격동기였던 8년간의 총장직을 마치고 나니 시원합니다. 800m 계주에서 바통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준 기분입니다. 총장으로 있을 때 대학은 커다란 진통기였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주체사상을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풀려는 학생들이 스스로의 오류를 고쳐 나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갈등과 진통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의 세계인 대학 군대 노동계 중에서 대학은 이 시대의 희망과 갈등을 가장 예리하게 드러내는 곳입니다. 그것은 대학의 존재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민주화를 부르짖으면서 비민주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인간존엄성을 주장하면서 반생명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모순적인 인간조건」을 임상실험하듯 경험했고 거기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요즘의 학생운동은 어떻습니까. 또한 전체적으로 볼 때 요즘 대학생들은 어느 정도 「건강 혹은 건전」한지요.

『우려되는 것과 희망적인 것 양면이 모두 있습니다. 우려되는 것은 남을 생각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속으로 함몰되어 갇힌 인간이 되고 그래서 집단이기주의를 낳는 것입니다. 희망적인 것은 대다수 학생들이 이 시대를 걱정하면서 잘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질가치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으며 갈등 속에서 방황하면서도 목마르게 답을 찾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학생, 대부분의 젊은 세대가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음에도 사회의 갈등이 거듭 증폭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리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사회를 한꺼번에 개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극단적인 젊은이들이 리더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해 연세대 한총련사태에서 보듯이 일부 학생리더들이 얼마나 잘못된 사상에 취해 있는지 국민들은 모릅니다. 따르는 학생들은 물론 옆에 있는 교수들도 모릅니다. 알고 있다는 일부 교수들도 「점거·항의·대자보」 등이 무서워 모르는 척 해버립니다. 그동안의 학생운동이 양적인 도전이었다면 앞으로는 질적인 도전이 될 것입니다. 이미 그것은 시작되었습니다. 질적인 도전에는 질적인 해답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질적인 리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학교 뿐만 아니라 정치 종교 교육 언론계 어디에 질적인 리더가 있습니까』

―질적인 리더, 혹은 리더십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질적인 리더는 4가지 요소를 갖춰야 합니다. 첫째는 생명가치 실천입니다. 생명을 거스르는 것은 모두 나쁜 것입니다. 폭력은 반생명적이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이 왜 나쁜가. 생명가치를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공동선의 가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개인주의 집단이기주의와 같은 이익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선을 감지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 없이 야 없고 야 없이 여 없으며, 자본 없이 노동 없고 노동 없이 자본 없는 것입니다. 여야 노사에 공동으로 선이 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셋째는 창의성입니다. 우리의 답은 우리 스스로가 찾아야 합니다. 공산주의 몰락 원인 중의 하나는 창의성을 없앤 데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의와 사랑의 가치를 동등하게 지녀야 합니다. 정의 없는 사랑은 말장난밖에 안되고 사랑 없는 정의는 폭군밖에 되지 못합니다』

―주사파 등 극단적인 학생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자생했다고 보십니까, 외부세력에 의해 사주받은 것으로 보십니까.

『자생적인 것도 있고 사주받은 것도 있습니다. 빵과 자유라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양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채 인간을 하향평준화시키는 퇴물사상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뿌리는 있었으나 열매가 없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선을 가장한 악, 꿀을 바른 독을 경계해야 합니다. 민족주의를 부르짖으며 계급투쟁을 유도하는 것, 남북화해를 위한 창구 다양화를 요구하면서 한국정부를 배제하려는 것, 문화사회주의 혹은 문화공산주의라는 예술적 표현양식을 빌려 우리식의 공산주의를 조장하는 것 등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념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혼미한 상태」라고 평소 말해왔습니다. 도덕성의 개념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혼미해진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물질의 풍요 속에서 생명가치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인간성이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닙니다. 사회풍토가 「졸부들의 집단」 비슷하게 돼 가고 있습니다. 쉴새없이 터지는 대형사고는 겉으로는 사고로 보이지만 우리 마음의 무질서한 애착, 잘못된 욕망, 즉 도덕성의 상실이 그 뿌리입니다. 이 때문에 한 손으로 만들고 다른 손으로 부수는 괴물적인 모습으로 인간이 변해 가고 있습니다. 물질가치와 기술가치를 생명존중가치에 접합시킬 때 도덕성 회복이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 마음 속에 돈과 자신만 아는 저질 자본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주사파와 같은 저질공산주의가 만나서 괴물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 병을 차단하고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은 도덕성회복이고 이는 생명가치 존중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평교수로서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를 말씀해 주시죠.

『총장은 어디까지나 보직입니다. 본직은 교수이고 교수는 배우고 가르치는 직업입니다. 인간의 본질인 정신, 정신의 뿌리인 영혼을 싱싱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싶습니다. 선과 악을 식별하고 썩음과 삭음을 식별하는 인성교육을 위한 저서를 준비 중이며 관련 세미나도 가질 생각입니다.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정리=윤순환 기자>

□약력

▲41년 2월 대구 출생 ▲67년 대건신학대 졸 ▲70년 대한가톨릭대학생 지도부 전국지도신부 ▲72년 교황청 그레고리안대학 신학박사 ▲76년 세계 가톨릭학생운동 지도위원 ▲80년 서강대 일반과정부장 ▲84년 서강대 사목실장 ▲89년 1월∼97년 1월8일 서강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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