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운동권·기관원을 통해 본 욕망과 생존의 아수라같은 현실/그 우울한 모습 생생한 문체로소설가 박덕규(39)씨에게 지금의 한국 사회를 사는 인간들의 모습은 「함께 있어도 외로움에 떠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술 취해 「걸레처럼 바닥을 핥으며 아스팔트 길을 기어」가는, 「끝없는 편리와 풍요를 향해 달리는 질주족들」이다.
「날아라…」 연작으로 우리 사회의 천민자본주의를 풍자하고 문화생산자들의 허위의식을 맘껏 조롱했던 그가 최근 독특한 시각에서 남북·분단문제를 다룬 일련의 소설들로 다시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말마따나 「어정쩡한 주인공들이 허우적리며 왔다 갔다 하는, 구멍 뚫리고 허덕이는 소설들」이 횡행하는 요즘 우리 문단에서, 돋보이는 개성의 성취다.
『현재의 한국 소설은 「현실」을 하나도 제대로 짚어주지 못한다. 현실을 파고 들기는 고사하고』라고 비판하는 그가 남북문제라는 현실과 대면하는 무기는 상상력이다. 80년대 식의 분단문학이 아니라 90년대적, 또는 미래적 상상력이랄까. 이를테면 국내 신춘문예에 북한 주민의 작품이 당선되는 것을 가정하는 식이다.
한국소설 가을호에 실린 「노루사냥」(북한 사회안전부의 탈북자 색출작업을 말한다)에는 남한으로 귀순해 귀족 같이 사는 전 북한 당 간부를 독살하는 요리사 출신 탈북자가 등장한다. 「함께 있어도 외로움에 떠는 당신들」(동서문학 겨울호) 에서는 「노루사냥」을 하다 남한으로 탈출한 젊은 여자 염정실과 그의 탈출을 도운 남한 기관원 출신이 주인공이다. 이들과 탈북수기 대필 작가, 기관원 끄나풀 노릇과 운동권 거물 노릇을 함께 했던 출판사 사장이 모여 단란주점에서 한판 욕망의 아수라장에 빠지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약간의 노동력만 있으면 의식주가 다 해결되고, 남파된 무장공비며 각종 폭력범이 날뛰는 중에도 전쟁이나 폭력의 공포를 잊고 있어도 좋은 세상인데도, 불안하고 초조하고 갑갑한 느낌은 웬일일까』 이렇게 느끼는 염정실에게 남한 사회는 「별달리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데도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되는 세상이 있으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그런 세상이다.
박씨의 상상력과 함께 그의 소설을 읽히게 만드는 것은 이처럼 속도감과 안정감을 함께 갖춘 문체다. 숨막히게 읽어 나가다가도, 어느 순간 뒤돌아보고 되새김하게 하는 그런 글이다. 『맹렬한 뜀박질이 돋보이는 그의 문체는 물이 올라 싱싱하다』(김윤식 서울대 교수)
박씨는 80년 「시운동」 동인으로 등단, 시로 글쓰기의 뜀박질을 시작했다. 이후 82년에는 일간지 신춘문예와 「한국문학」 신인상에 각각 문학평론이 당선되면서 평론가 활동도 시작했다. 소설가로 다시 전신한 것은 94년 계간 「상상」 봄호에 「날아라 지섭」을 발표하면서.
지금은 『한 분야를 위해서는 다른 분야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소설 쓰기에만 전념하고 있다. PC통신 하이텔문학관 고문으로도 활동하며 사이버문학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 이제 당분간 분단문제의 소설화작업에 집중할 계획이라는 이 전방위 문인. 『90년대 문학이 언제까지나 성장소설, 신화소설, 80년대의 후일담문학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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