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벽두에 한 지우로부터 연하장이 왔다. 연하장은 다음의 글귀가 적힌 휘호였다.막문대산로
파운맥직거
별지에 친절히 뜻까지 새겨놓았다.
<오대산 가는 길을 묻지말라< p>오대산>
노파가 이르기를 똑바로 가라 하더라>
이 글귀는 경봉스님이 통도사의 학승이던 시절 범어사의 고승인 담해스님에게 불도의 수행법을 편지로 물었을 때 답신의 맨 끝에 결어로 적혔던 것이라고 한다. 경봉스님이 주고 받은 서간문집이 곧 출간될 예정인데 그 속에 이 편지도 실리게 된다.
이 문구는 내력이 있다.
중국의 오대산이라면 산시성 북동쪽에 위치한 오대산맥의 주봉 5산으로, 예부터 화엄경에 나오는 문수보살의 청량산이 여기라고 믿어져 중국 3대 불교 성지의 하나다. 산중에는 100여개의 사찰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통도사를 세운 신라의 자장법사 등 많은 승려들이 입산했던 곳이다.
이 산을 찾아가는 스님들은 어귀의 길가에 사는 한 노파에게 길을 묻곤 했다. 그럴때마다 노파는 『똑바로 가시오』했다. 그러고는 스님이 미처 몇걸음도 옮겨놓기 전에 『저 스님이 딴 길로 가시네』하는 것이었다.
스님들이 이 사실을 조주에게 전했다. 조주는 당나라때 120세의 나이로 입적한 고승이다. 그는 자기가 가서 알아보겠다면서 그 노파를 찾아가 똑같이 오대산 가는 길을 물었고 노파로부터 똑같은 대답을 듣고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조주감파라 하여 송대의 혜개스님이 쓴 「무문관」이란 책에 나온다. 담해스님의 글귀는 이것을 들먹인 것이다.
선종의 화두가 되는 이 삽화의 선지는 오묘한 것이겠지만, 불법과는 상관없이 여기서 줍고 싶은 것은 「똑바로 가라」는 「맥직거」 석자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똑바로 갈줄을 모른다. 그저 직진하면 되는 것을 쓸데없이 두리번거린다. 정정당당한 대도를 두고 편법과 모계의 소로를 찾는다. 개개인뿐 아니라 정치도 그렇다. 똑바로 가는 길은 순리의 길이요 정의의 길이다. 바로 가지 않는 길은 사위의 길이요 비도의 길이다. 정도로 가야한다.
오대산의 노파가 길을 가르쳐주고는 『딴 길로 가시네』한 것은 똑바로 가다가도 이 말에 걸려 중심이 흔들리는 수양이 부족한 사람을 시험한 것이다. 정도로 가는 것은 확신과 용기의 행법이다.
산으로 들어갈 때만 똑 바로 가야하는 것이 아니라 산에서 나올 때도 똑바로 가야 한다.
근세철학의 아버지라는 데카르트의 명저 「방법론 서설」에는 길 잃은 사람의 경우가 나온다. 숲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는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해서는 안되고 한 방향으로만 일직선으로 걸으라는 것이다. 우연히 정한 방향이 설령 그가 바라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는 숲 속에서 빠져나오는 곳에 이르게 될 것이고 그것은 숲 속에서 헤매느니보다 나은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 책에서 이렇게도 말한다. 「곧은 길만 따른다면 매우 천천히 걷는 사람이라도 빨리는 달리지만 곧은 길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사람들을 앞지를 수 있다.」
「방법론 서설」은 「양식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라는 첫구절로 시작된다. 사물을 옳게 판단하고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능력이 양식이요 양식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고 인간을 동물로부터 구별하는 유일한 것이다. 데카르트가 말하는 곧은 길은 곧 양식이다.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똑바로 가라는 말은 미망에서도 양식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이 양식이 곧 정도다.
우직한 소의 해를 맞아 「똑바로 가라」는 한마디가 모든 사람의 신춘휘호이었으면 좋겠고 신년의 화두가 되었으면 좋겠다.<본사논설고문>본사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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