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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서 승무속으로/인간문화재가 된 이애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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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서 승무속으로/인간문화재가 된 이애주 교수

입력
1997.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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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와 시위,장례의 거리서 온몸으로 한과 분노를 토하던 그/하지만 그의 본령은 한영숙류 승무/이젠 문화재 지정으로 맥이 끊겼던 아픔도 풀렸고…/함께타고 건널 ‘만인의 배’인 승무가 아닌 승무를 더 희고 눈부시게 춘다서울대 체육학과 이애주(50) 교수의 연구실은 교수 연구실의 통념을 뒤엎는다. 의자가 없다. 비닐장판 바닥 위에 커다란 앉은뱅이 책상이 셋, 컴퓨터까지 거기 얹혀 있다. 손님에게는 녹차를 대접한다. 아름드리 나무 밑 널따란 평상의 풍경을 닮았다.

대형 책장을 메우고 있는 「이조실록」, 「한국미술 50년」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 치자.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역사비평」이나 「창작과 비평」 등 가까운 과거, 지성과 양심의 숨통을 틔어주었던 책들이 꽂혀 있다. 책상 위에 쌓인 학생들의 리포트 뭉치에서 그가 한국무용 교수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좀체 보기 힘든 별스런 풍경이지만, 그가 보여 온 삶의 궤적과는 아귀가 들어 맞는다. 격렬했던 역사, 그것도 「현장」의 중심에서 우리는 언제나 그의 섬뜩한 몸짓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애주 교수가 지난해 12월31일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집회와 시위, 장례의 거리에서 거친 옷을 걸치고 온몸이 부서져라 한과 분노를 뭉텅뭉텅 토해내던 그를 불러 낸 것은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보유자」(한영숙류의 승무). 바로 그의 본령이다. 69년 이수자, 71년 전수자로 지정된 후 20여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스승 한씨는 같은 부문 문화재로 지정되고 89년 세상을 떴다. 이후 8년동안, 정통의 맥은 공백이었다.

오랜 세월 맥이 끊겨있었던 일은 그의 아픔이었다.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그는 아직도 송구스러워 한다. 이제는 「한영숙류 승무」의 맥을 본류인 자신을 통해 이을 수 있게 됐다.

격렬했던 시대의 와류에서, 우리는 그의 예술적 정통성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하지 않았다. 아니, 미처 생각해 볼 겨를조차 없지 않았을까? 그와 그의 춤에 관한 한 우리는 「시국」과 한묶음으로 보는 타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춤사위 하나하나, 동선 마다마다에는 수백년 축적된 시간들이 서려 있다. 하얀 고깔, 하얀 장삼, 붉은 가사, 남색 치마. 북채 쥔 손으로는 문득 장삼 속을 휘젓는다. 정밀. 정지해 있는 듯 민첩하다. 꼭 다문 입, 그러나 시선은 매서워 속세의 무수한 번민을 꿰뚫어본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덩기덩 카르릉』 장고 장단과, 『사그락』 옷깃 스치는 소리 뿐. 적요의 순간 속에서, 그 소리는 찰나보다 예리하다.

승무. 흔히들 생각하듯 「승무」가 아니라, 「승무」라고 그는 말한다. 대승도 소승도 아닌, 불가와는 무관한 민중의 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추는 승무는 마침내 이 풍진 사바를 함께 타고(승) 건널 「만인의 배(선)」다.

그렇다면 그의 삶에는 어떤 강들이 있었던가?

어린 시절, 그를 에워쌌던 것은 「양산도」요, 「노들강변」이었다. 딸이 그 장단에 맞춰 즐겨 춤추는 것을 눈여겨 본 어머니는 그를 국립국악원(당시 「이왕직 아악부」)에 넣어 주었다. 어머니의 배려가 없었더라면 우리 소리, 우리 몸짓과의 반백 평생 또한 가능하지 못했을 거라고 그는 고마워한다.

거기서 초립동, 민요춤, 소고춤, 검무, 춘앵전, 그리고 승무를 몸으로 익혔다. 그 힘으로 초중고 시절 전통 무용 대회를 휩쓸었다. 중학교 때 이화여대 주최 전국무용대회 3년 연속 우승, 고3 때 문공부 신인무용경연대회 특상 등.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 시절, 승무로 제7회 신인 예술상을 수상해 한영숙씨의 눈에 들었다. 한씨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자마자 그를 첫 제자로 삼게 된다.

통행금지의 시절, 그러나 그는 하루도 안 빠지고 자정까지 연습했다. 『몸에서 몸의로의 전수』라고 그는 기억한다. 철저한 한국적 도제주의의 전통을 관통해 낸 몸이다.

『우리 것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 정신의 얼개는?』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었던 내면의 질문, 그 질문을 풀기 위해 같은 학교 국문과에 편입했다. 기본적인 공부부터 하기 위한 학사 편입이었다. 체육과 대학원 시절 석사 논문 주제를 「처용가」로 잡아 파고 들었는데, 세계가 너무나 달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춤을 연구하려면, 이론적 기초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오랜 세월의 경험을 깔고 있다. 당시 집에는 교수로 학교에 나가는 척 행세했는데, 스스로 사서 학생이 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자 집이 발칵 뒤집혔다며 웃음과 함께 돌이켜 본다.

인터뷰는 몇 번이나 끊겨야 했다. 곳곳에서 인간문화재 지정 축하 전화가 걸려 왔고, 더러는 멀리서 화환을 직접들고 왔다. 그의 웃음꽃이 관악골에 쌓인 눈꽃보다 더 희고 눈부셨다.

◎어둠의 시대를 사른 ‘시국춤’/6·29 서울대 출정식 이한열군 장례식…/그것은 이애주 춤의 연장선/“사회가 함께 춤추게 해야 한다”

「바람맞이」 춤이라고도 했고, 때로는 직설법을 써서 「시국춤」이라고도 했다.

어둠과 격변의 시대, 한국 사회는 혼돈의 와류를 관통하면서 갖가지 극복의 형식들이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쳤고, 더러는 비명에 가야 했다. 그의 몸짓은 그 시대 지친 영혼들을 뜨겁게 지펴 올렸다.

온갖 고락을 함께 한 동료들의 부릅뜬 눈과 꽉 다문 입, 처절한 곡성은 그의 춤사위에 실려 그제야 망각의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대우조선소 근로자 이석규씨 장례식의 운구 현장과 사북탄광 노동자 성완희씨 장례식…. 현장에서 그의 「바람맞이」는 꼭 확인됐다.

『춤꾼이 사회에 대해 직접적인 의식을 갖고 춘 것은 내가 처음일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그 시대 자신의 춤이 갖는 의미에 대해 그는 이렇게 스스로 규정한다.

「여교수, 학생집회에서 반정부 춤을 추다」.

87년 「6·29 평화 대행진 서울대 출정식」과 7월9일 이한열군 장례식에서 그의 춤은 외신 기자의 펜에 의해 밖에서 먼저 알려졌다. 우리춤이 가진 무서운 힘의 본질을 그들은 강렬한 충격으로 조우했다. 모두들 쉬쉬해야 했던 시절, 온몸으로 사르는 불꽃은 사람들의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애주춤의 연장선이었다. 『비약하는 역동성, 그것은 곧 우리춤의 본질』이라고 그는 말한다.

88년 8월3일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지점에서의 위령제에서도 그는 「바람맞이」 춤을 췄다. 주최측의 요청이었다. 그 얼마 뒤 고려대에서의 「8·15세계범민족대회」에서도 마당춤 형식의 「바람맞이」 춤을 췄다.

『통일되는 날이 다 함께 춤추는 때다』 곱게 빗어 넘긴 단아한 머릿단을 닮아, 그의 말은 한치도 흐트러짐이 없다.

『도대체 우리춤은 뭔가?』

한국 현대사의 시련을 모두 현재진행형으로 경험한 그에게 이 질문은 70년대 이후부터 떨칠 수 없는 거대한 화두였다. 70년대 이후 그는 중요한 인물들과 만날 수 있었다. 김지하, 임선우, 김영동, 황석영, 채희완, 임진택 등 우리시대 진보적 문화운동의 전위들과 깊이 교류했다.

『그 좋은 친구들과 만나 춤, 마당극, 탈춤은 뭐냐를 놓고 밤새워 토론했다. 그것은 「저쪽」에서 흔히 몰아부치듯 불온도 반역도 아니었다. 올바른 문화를 찾기 위한 진솔한 만남의 현장이었다』

뜨겁던 87년, 한 후배가 했던 말을 그는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사회가 춤추게 해야 한다』<장병욱 기자>

□약력

47년 황해도 사리원 출생

53∼82년 교동초등, 창덕여중고, 서울대 사대 체육교육과(65학번), 같은 과 대학원 졸업, 서울대 국어국문과·뉴욕대 대학원 등에서 공부

54∼63년 김보남 사사

70∼89년 한영숙 사사

71년 서울대 체육학과 전통무용 강사

82년 전임교수

95년 정교수

96년 무형문화재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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