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다니던 70년대 후반 나는 김수영의 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때까지 나는 시란 그저 아름답고 서정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시는 이런 나의 시관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이었다. 시가 반드시 감상적인 단어의 나열일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시도 산문처럼 강렬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시를 통해 처음으로 배웠다.물론 모더니즘 계열의 다소 난해한 그 시를 모두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비록 전체적인 의미 파악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의 시 중에는 읽는 이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강렬함으로 각인되는 것들이 있다. 그 후 20여년간 어찌 하다보니 그의 시를 읽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내용은 커녕 제목도 제대로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는 시구 하나.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전통은>
두고 두고 외울 수 있는 시구치고는 은근하고 아련한 맛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시구를 좋아한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시인의 외침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미 오래전에 전통을 이 땅의 거대한 뿌리라고 설파했지만 오늘날 전통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다른 분야는 다 그만 두고 우선 음악에 대해 따져 보아도 대답은 그리 신통치 않다. 오늘날 전통음악은 전통의 본질인 역사적 지속성을 잃은지 오래다. 더러운 전통이든 한심한 전통이든 시대착오적인 전통이든 음악에 있어서 모든 전통이 그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는 현대라는 단어에 지나치게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전통음악이 시대에 맞는 음악이 되기 위해선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얼굴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그 결과 전통음악 비슷한, 그러나 본질적으로 전통에 뿌리를 두지 않은 국적불명의 음악이 양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전통을 버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음악을 들을 때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라는 시구가 떠오른다. 역설적인 그의 시구가 나에게 전통음악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자산이 우리 민족정서의 영원한 뿌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전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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