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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찮은 정자에 서린 뜻은/유홍준 영남대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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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찮은 정자에 서린 뜻은/유홍준 영남대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7.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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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서는 올해를 문화유산의 해로 정하고 그 참뜻을 알리기 위한 여러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미술사를 전공으로 삼으면서 그동안 내가 해온 일이라는 것이 문화유산의 의미를 밝히는 일 이상의 것이 아니었으니 전공자로서 새해를 맞는 마음이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문화유산이란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낸 세련된 삶의 형식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노력과 희망이 서려 있고, 동시에 역사적 진실과 인간적 고뇌가 배어 있다. 그래서 영국의 미술사가 존 러스킨은 일찍이 말하기를 『위대한 민족들은 모두 세가지를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으니, 하나는 민족 고유의 언어요, 둘째는 그 언어로 기술한 역사이며, 셋째는 그 역사 속에서 창출한 문화유산이다』라고 했다.

사람들은 문화유산의 이러한 깊은 뜻과 중요한 가치를 대개는 인식하고 있다.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작 문화유산에 관계되는 무엇을 말하거나 행하려고 하면 그것을 한가하고 부차적이며 미미한 일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다. 그것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지만 우리의 현실이 그러함을 숨길 수 없다. 특히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큰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언필칭 지도급 인사 중에서 문화유산에 대해 별 상식도 관심도 없는 경우를 보게 되면 안타까움을 넘어 슬픔조차 느끼게 된다.

그러나 예로부터 훌륭한 경륜가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그 분들은 하잘 것 없는 문화유산에 관계되는 저 미미한 사항도 절대로 소홀하게 대하지 않는 자상함을 지님으로써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었다. 나는 그 좋은 예를 그 옛날의 정자문화 속에서 본다.

정자는 하나의 휴식공간일 따름이다. 그러나 선조들은 정자를 감성의 과소비나 단순한 놀이공간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성을 높이고 마음을 기르는 곳으로 삼았다. 그래서 조선 초기의 뛰어난 경륜가였던 하륜은 청풍군수가 한벽루를 수리하고 그 중수기를 써주십사 부탁하자 흔쾌히 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 고을의 정자를 고친다는 것은 수령된 자의 공무중 맨 마지막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고을의 정자가 어떤 모습인가를 보면 오히려 민생의 편안함과 어려움, 도덕의 고양과 쇠퇴를 읽을 수 있으니 어찌 그것이 하찮은 일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가 하면 조선 초기의 또 다른 경륜가였던 서거정은 공주현감이 새 정자를 짓고서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니 취원루라 명명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정자를 취원루라 이름지음은 멀리 있는 모든 경치가 다 여기에 모인다는 뜻이다. 이 정자에 올라와 바라보면 앞뒤 좌우로 산과 강이 있고 저 광활한 들판과 즐비한 여염집, 나루터와 다리, 밭가는 농부, 오가는 나그네가 모두 보인다. 그러나 정자를 세운다는 것은 다만 놀고 구경하라는 뜻만이 아니다. 이 정자에 오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들판을 보면서 농사의 수고로움을 생각케 하고, 민가를 보면서 삶의 고단함을 알게 하며, 나루터와 다리를 보면서 어찌하면 저들이 내를 잘 건널 수 있을까를 생각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할 때 이 정자를 취원루라고 이름지은 참 뜻에 다가설 것이며 그것은 목민관의 책임과도 멀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정자는 이처럼 몸과 마음을 편히 쉬는 휴식처이자 사물을 응시하는 관조의 장이었으며 서정을 발현하는 낭만의 무대였고 인화의 마당이기도 했던 것이다.

오늘날 과연 그런 정자문화가 우리네 삶 속에 되살아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 하찮은 정자 하나에도 이처럼 깊은 사상이 서려 있다는 문화유산의 참 뜻을 누구보다도 위정자들과 함께 되새겨 보고싶은 아침이다.<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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