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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들 “나는 안보는데…”

입력
1997.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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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이 “본적없다” 부인불구 측근들이 점집 드나든다 소문/예언서 출판·언론 보도땐 선거에 영향 무시못해/점술인들 ‘믿거나 말거나’ 예언/같은 지역 출신에 후한 점수선거는 승패의 변수가 너무 많아 체계적인 여론조사 등 과학적인 방법만으로는 정확한 예측이 어려울 때가 많다. 특히 올 연말 대선의 경우 야당 후보는 확실한 편이지만 여당은 대선주자 후보가 난립,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여당내에서는 여러가지 동기에서 은근히 점술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인사들이 많고 은밀히 측근을 점집에 보낸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그러나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의 측근에게 취재팀이 확인해 본 결과 『점을 봤다』고 밝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유명 점술인들도 대선주자 후보들의 측근이 생년월일시를 들고 와 앞일을 물어왔다고 밝히면서도 누구누구냐는 물음에는 꿀먹은 벙어리였다. 대선후보군의 측근들이 전하는 말은 한결 같았다. 자기 진영에서는 점을 쳐 본 일이 없지만 남들이 하는 얘기를 듣기는 했다는 식이었다.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와 최형우·김덕룡 의원, 자민련 김종필 총재 등은 모두 『점을 보지도 않았고 점술인들의 말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신한국당 이회창 고문은 『가톨릭 교도라 관심이 없다』는 대답이었고 박찬종 고문은 『운명주의자가 아닌 개척주의자라 점에 신경쓰지 않는다』며 『그러나 올해 운세가 좋다는 말은 들었다』고 밝혔다. 이한동 의원은 『점을 아주 싫어한다』며 『누군가 사주를 본다고 생년월일을 알려 달라고 했으나 알려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생년월일시를 문의하는 점쟁이들이 많지만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면서 『국운을 책임질 사람들이 점에 의존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측근들은 이들이 점이야기에 무심할 수만은 없다고 털어 놓았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이다」라는 점술인의 예언이 책으로 출판되거나 언론에 보도되면 실제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경쟁상대로 지목한 사람이 당선될 것이라는 등의 얘기가 나오면 심기가 몹시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대선후보들에 대한 점괘들 가운데 재미있는 것들도 많았다. 화투점을 치는 J씨는 『대통령은 구룡중에서 나온다』며 『여당의 후보는 구자와 용자 이름을 가진 사람의 대결로 압축된다』고 말했다.

P씨는 『후보들의 태어난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조상의 묘터와 관상 등을 종합해 보면 이씨성을 가진 사람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Y씨는 『격변기나 과도기라면 싸움형인 맹호지상이 당선되겠지만 이번에는 덕상이 당선된다』고 말했다. B씨는 『여당 후보는 이씨가 유력하다』며 『그러나 친여권후보 1명이 돌출해 여권의 표를 잠식, 야당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점쳤다.

역술인 박영창씨는 『흥미로운 것은 역술인 각자가 애향심이 강해 자기 지역 출신의 대권주자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고 웃었다.<조재우 기자>

◎보통 점은 무속인의 신점 뜻해/주역바탕 점복술은 통칭 ‘역술’

점과 복의 기원은 수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중국에서는 거북껍질을 불에 구워 갈라진 모양을 보고 길흉화복을 예측했는데 이를 복이라 했고 음양오행과 괘효로 미래를 살피는 것을 점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용어의 혼용이 심하고 대개 점이라고 부를 때는 「신이 내린」 경험이 있거나 「신을 부를 수 있는」 점쟁이의 신점을 뜻하는 것으로 변했다. 대신 주역을 바탕으로 음양오행과 괘효를 따지는 전통 점복술은 통틀어 역술이라고 불러도 큰 무리가 없다.

속칭 귀신점이라고도 불리는 신점은 원래 무당과 박수 등 정통무속인의 영역이다. 그러나 불교와 접목한 보살과 법사, 죽은 아이의 영을 불러 들여 점을 보는 「명두」(동자·선녀) 등 방계 무속인들의 점도 늘고 있다. 점술인들은 의뢰인의 생년월일시, 거주지 등을 물은 다음 다양한 방법으로 신령을 불러 그 뜻을 물어 본다고 한다. 신령이 의뢰인을 살펴 보고 점술가의 입을 빌려 뜻을 전한다는 것이다. 역술도 갈래가 다양하다. 보통 동양철학 역학 역술 등 여러가지로 불리는데 전문가들도 정확한 개념 정립에 애를 먹고 있다. 주역의 음양오행과 괘효 이론에 따른 주역점이 대표적인 것으로 여기에서 사주와 이름풀이 등이 가지쳐 나왔다. 사주란 태어난 해와 달, 날과 시 등 네 기둥이며 팔자는 이 사주가 모두 천간과 지지를 합한 두 글자로 돼 있다는 데서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등 10간과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등 12지가 결합돼 나온 8자의 한자에 각각 음양과 오행의 상생상극이 들어 있어 그를 살피면 성격과 도량 재능 재복 적성 인간관계의 길흉 등을 모두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생 당시의 하늘과 땅, 사람의 기운이 그 사람의 평생을 따라 다닌다는 운명론적 구조를 갖고 있으며 서양의 점성술과 궤를 같이 한다. 요즘 유행하는 컴퓨터점도 서양식 사주풀이다. 현재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는 역술의 90%가 사주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한때 유명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을 고정단골로 확보해 이름을 날렸던 「김OO」 「백OO」씨는 이름으로 운세를 따지는 성명학의 명인들이었다. 성명학은 성명의 한자와 획수가 지닌 음양오행을 따지는 것으로 역시 뿌리는 주역이다. 사주와 성명학 외에도 손금을 보는 수상학, 얼굴생김을 보는 관상학 등이 있는데 자세히 볼 때는 발 허리 가슴 배 등의 모양과 피부색, 점의 배치 등을 살피기도 한다.<조재우 기자>

◎“점보는 사회는 불안한 사회”

점술이 판치고 있다. 모든 중대사를 점술로 알아 보려는 사람들이 줄지 않고 있다. 「용하다」는 역술인이나 점술인을 만나려면 오래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21세기를 코앞에 둔 이때 우리 사회에 이처럼 점술이 만연하는 이유는 뭘까. 백상창 한국사회병리연구소장은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는 샤머니즘이 자리잡고 있다. 더이상 기댈 곳이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 되거나 엄청난 충격을 받으면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술에 의존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점술이 벼랑에 선 사람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엄청난 부작용을 낳는다고 강조했다. 잘 풀리지 않는 현재의 상황을 운명 탓으로 돌리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지도자들이 역술인의 말을 듣고 선거일을 택하거나 조상의 묘를 옮긴 예까지 있다고 개탄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이훈구 교수도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돼, 복은 타고나는 거야」하는 식의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점술은 더욱 만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점술에 심취하는 사람은 대부분 성격이 불안하고 운명론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며 『사주나 점으로 인간의 미래를 모두 알 수 있다면 어떻게 실패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34년동안 전국의 무속인 3,000여명을 만나 「무당의 대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서정범 경희대 명예교수는 『점술은 필요에 의해 생겨나 융성하고 쇠퇴하기 마련』이라며 『점술이 유행하는 것은 소외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와 사회적 불안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사회의 특수상황도 식지 않는 점술열기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이 아직 요원한 반면 개발열기에 편승한 부동산투기 등으로 떼돈을 버는 사람이 드물지 않은 것 등이 운세에 대한 관심을 증폭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역술인은 최근의 점술 열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 죽을 때를 모르는 게 점쟁이인데 모든 것을 그들에게 의지해 결정하려는 사람을 볼 때 가끔씩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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