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8월생이므로 오는 7월1일 홍콩이 중국에 정식으로 반환될 때 덩샤오핑(등소평)의 나이는 만 93세가 다 된다. 그가 지금 외신이 전하듯이 식물인간 상태인지 어떤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공식행사를 견딜만큼의 체력이 안되는 것 만은 분명한 것 같다. 연초에는 그의 사망 추측보도가 전해지기도 했다.홍콩반환 기념식에 반드시 참석하겠다는 그의 공언은 그럼 어떻게 될 것인가.
그가 4인방을 축출하고 중국 최고지도자로 복귀한 것은 꼭 20년 전인 77년이다. 문화혁명으로 생산기반이 여지없이 파괴되고, 수천만의 유민이 먹을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경제회생이 그의 지상명제였다.
그때 그의 눈에 띈 것이 신흥공업국가군(NICS)으로 불리며 고도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네 마리 용,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눈부신 성공이었다. 중국 안에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격리된 경제도시를 만들 수 없을까. 다행히 성공한다면 그것을 발판으로 차츰 범위를 넓혀 중국 전체에 파급시켜 나가면 될 것이라는 게 새 지도부의 착상이었다. 선천(심천)에서 시작된 경제특구 개발정책은 그렇게 탄생했고 오늘의 중국경제를 만들어 냈다.
그가 집권했을 때 영국의 홍콩 조차기간은 20년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홍콩의 중국귀속은 기다리기만 하면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에 중국경제가 발전하지 못하면 부자들이 빠져나간뒤 중국에 돌아오는 홍콩은 빈껍데기 고층건물과 거리를 헤매는 중국인 빈민만 남은 쓰레기더미에 불과할 것이었다. 그것은 중국인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일 것이었다.
홍콩 반환이 상징하는 서구 식민주의 축출은 중국이 번영한 홍콩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중국인은 생각한 것이다. 홍콩은 등과 중국인에게 이처럼 각별한 의미가 있다. 중국인은 그가 7월까지 산다면 휠체어에 태워서라도, 그 전에 죽는다면 관을 메고서라도 그를 반환식에 참석시키고 싶을지 모른다. 경제회생을 위해 몸부림치는 북한에 등의 혜안을 갖춘 인물은 없을까.<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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