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하나 짓는데 평균 925일 걸려/정부 시장개입 중국보다 심해/기업 자유경쟁시켜야 경쟁력 커져『규제완화에는 실업과 도산이 뒤따른다』 일본의 저명한 논객 오마에 겐이치(대전연일)가 저서 「헤이세이(평성)관료론」에서 지적한 「규제가 안 풀리는 이유」다. 규제완화는 자유경쟁의 결과인 도산과 실업을 낳기때문에 이를 감수할 수 있어야만 규제를 깨뜨릴 수 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최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려다 후퇴한 의무고용제 개선과정이 이를 입증한다. 자동차부품을 제조하는 A사의 종업원은 337명. 이중 16.3%인 55명은 법상 반드시 고용해야 하는 인원이다. 식품제조업종의 B사는 2,263명중 231명(10.2%)이, 수소·질소 제조업체인 C사는 150명중 24명(16%)이 의무고용자다. 정부는 의무고용제도가 기업들의 인건비부담을 가중시킨다고 판단, 경쟁력높이기 차원에서 의무고용인원을 대폭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직 등을 우려한 영양사 조리사들이 집단반발하자 『여성의 취업난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표와 직결될 수 있는 실업을 용인할 자신이 없었던 셈이다.
통상산업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공장하나 짓는데 평균 925일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492일, 대만 245일, 미국 175일, 싱가포르 50일, 말레이시아 35일에 비해 최대 26배나 더 소요되는 셈이다. 공장설립에 필요한 인허가서류도 평균 44.2건으로, 동남아 국가들의 25.6건, 중국의 9.6건, 선진국의 6.5건에 비해 많다. 택지 또는 공장용지로 쓸 수 있는 토지는 전국토의 4.7% 수준에 불과한데도 토지거래허가 및 신고지역이 전국토의 70%에 달한다. 비록 94년 조사결과이지만 재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풀린게 없다』고 지적한다. 오죽하면 전경련 등 경제5단체로 구성된 국가경쟁력강화민간위원회는 최근 우리나라 시장개입정도가 세계 1위로, 사회주의국가인 중국보다 심하다는 보고서를 냈을까. 규제는 고금리 고임금 고지가 고물류비 등으로 이어져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다.
새정부는 출범이후 규제완화를 강도높게 외쳤다. 현재 사전규제심사를 위해 총무처의 행정규제합동심의회, 재경원의 경제행정규제위원회, 통산부의 기업활동규제심의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쟁을 제한하는 법령의 사전협의제 등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총무처 심의회가 발족이후 1년여간 단 한건을 심의할 정도로 유명무실한 상태다.
규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완화시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작용하지만 정책과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데도 책임이 있다. 재벌의 여신규제와 토지취득제한, 진입제한 업종전문화제도 등은 경제력집중완화문제로, 수도권 공장증설은 부동산투기 우려때문에 쉽게 풀 수가 없다. 각종 정책은 중복규제를 낳는다. 기업이 비업무용 부동산을 취득할 경우 토지공개념도입으로 지방세법상 중과세할 뿐 아니라 법인세법상 취득부대비용 등은 손금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게다가 10대 재벌은 여신관리규정상 취득이 제한된다. 기업들은 물론 중복 부담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규제가 반드시 정책목표를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업종전문화제도는 기존 기업의 이윤을 보장, 경제력집중을 가중시킬 수 있다. 또 재벌의 금융지배를 막기 위해 금융자율화 등을 주저하지만 금융에 대한 정부의 지배보다는 재벌간 경쟁적 지배가 더 나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흔히 규제완화는 「과수원주인의 가지치기」에 비유된다. 보다 많은 결실을 위해서는 수확뒤에 가지를 과감히 쳐주어야 하는데도 애정때문에 자르지를 못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과수원주인은 남에게 이를 맡기곤 한다. 오마에 겐이치도 후기에서 『가장 서글픈 결론은 관료기구라는 것은 자기개혁형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외압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자기증식을 계속할 것이라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정희경 기자>정희경>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