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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오명을 벗어라(우리 방송 건강한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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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오명을 벗어라(우리 방송 건강한가:1)

입력
1997.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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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첫 전파이후 케이블·위성방송 개막까지/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로 반세기 넘게 함께한 TV·라디오/그러나 시청률의 노예가 되어 폭력·선정성에 모방프로까지…/21세기를 앞둔 우리의 방송 진정한 갈 길은 어디에올해는 이 땅에 첫 공중파가 발사된 지 70년, 우리 손으로 방송을 만들고 내보낸 지 50년이 되는 해. 역사의 굴곡에 시달리고 때로는 휘청거리면서 면면히 발전해 온 우리 방송이 이제 고희를 맞았다.

컬러시대를 건너고 케이블TV 시대를 거쳐 위성방송 시대까지 숨가쁘게 달려 온 방송. 권력의 위협에 때론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어느날 「시녀」가 되기도 했던 방송. 방송은 이제 원하든 원치 않든 국민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방송계는 「빅 이벤트」를 맞아 10대 기획물을 마련하는 등 분주하다. 그러나 우리 방송은 몸과 마음은 병든 채 공룡처럼 몸집만 거대해진 것은 아닐까. 「방송 70년, KBS 50년」을 맞아 우리 방송의 자화상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 주>

방송 없이 살 수 없는 시대. 가구당 평균 1.2대가 넘는 TV를 보유하고 있는 TV천국. 주부들은 설거지를 하면서도 TV를 흘깃거리고, 젊은이들은 자동차 시동을 걸면서 라디오를 켠다. 휴일이면 종일 손에서 리모컨을 놓지 않는 샐러리맨들. 방송은 이처럼 우리 생활 속에 깊고 넓게 자리 잡았다. 아니 생활 자체가 돼 버렸다. 인기 드라마 주인공의 패션을 따라가고, 광고를 보고 물건을 선택하며, 진행자들이 주장하는 가치를 여과없이 수용한다.

방송이 건강하면 사회가 건강하다. 반대로 방송이 병들고 아프면 사회 역시 어둡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요한 방송이 건강한가? 자신있게 『그렇다』고 누구도 말하지 못한다. 그만큼 우리 방송은 곳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몇 십년째 이어지는 고질병도 많다. 그것이 병인 줄도 모른다.

김우룡(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세계에서 한국의 TV가 가장 재미있다』고 역설적으로 말한다. 우리TV는 오직 재미만을 위해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면서 시청자들과 무관한, 오히려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끝없는 시청률 경쟁을 벌인다.

95년 방송 3사는 『방송발전에 도움이 안되는 무모한 시청률 경쟁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시청률 조사기관인 미디어 서비스 코리아가 내놓는 자료도 받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여전히 간부들은 시청률 순위표로 PD들을 위협했고, 그 「도원의 결의」는 반년도 못 돼 공염불이 돼버렸다.

프로그램의 질보다 시청률이 제작자들의 능력평가의 척도가 되는 방송사의 잘못된 가치관. 아직 방송의 질적 평가를 할 만한 기준조차 제대로 없는 현실. 방송위원회가 그나마 애써 폭력 및 선정지수를 발표해도 콧방귀를 뀌는 방송. 지난해 9월 미니시리즈 「애인」(MBC)은 선정지수에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KBS)는 폭력지수에서 각각 최고를 기록했지만 시청률이 높아 「효자」로 대접받았다.

방송위원회의 규제도 여전히 「솜방망이」. 94년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포함해 방송위원회가 내린 제재는 328건. 그러나 방송은 반성할 줄 몰랐다. 이듬해인 95년 두배 가까이 늘어난 624건, 지난해 728건(11월까지)이 이를 증명한다. 95년에는 KBS가 200건으로 최다를 기록했다. 방송위원회는 2월에 국회에서 통과될 통합방송법에서조차 일개 심의기관으로 머물고 말 전망이다.

「공영방송」을 외치는 KBS가 간접 광고, 대기업 협찬에 의존한 프로그램 제작에 앞장서고 높은 시청률에 안주하는 모습에서 방송의 건강함을 찾기란 어려운 현실이다. 미래지향적이기보다 과거 향수나 자극하는 복고풍을 두고 『홍두표사장식 공영성』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권력의 시녀」에서 어느정도 벗어나자 「시청률의 시녀」가 돼버린 방송. 인기를 위해서는 연기자들의 몸값 올리기, 겹치기 출연도 마다 않는다. 한 탤런트는 하루 같은 시간대 3개 채널에 모두 나오기도 했고, 유명 MC는 저녁에 이방송에서 연예인과 결혼얘기를 하고, 아침에는 저 방송에서 같은 연예인과 사랑타령을 늘어 놓는다. PD는 연출보다는 작가의 비위를 맞추는 데 급급하고 외국 프로를 모방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TV는 드라마 천국이고 라디오는 개그와 수다로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에서 어린이 프로는 실종돼 KBS까지 일본만화영화 수입에 열을 올리고, 음악은 양념으로 전락했다. 대중매체이면서 10대만을 겨냥, 노년과 중년층을 외면하고 있는 쇼프로. 주부들이 좋아한다며 아침부터 불륜과 탈선 드라마 아니면 연예인 잡담이나 내보낸다.

시청자 참여는 시청자 우롱으로 변질되고, 시청자 의견은 잘 반영되지 않는다. 마치 해결사처럼 개인의 민원까지 해결하려 드는 TV. 다채널 시대를 열었다고 자랑하면서 특색 없이 공중파를 닮아가는 케이블 TV. 인기를 위한 정당과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차지하기 위한 대기업 등이 마구 뒤흔드는 방송법. 이 모든 것들이 21세기를 앞둔 우리 방송을 병들게 하고 있다.<이대현 기자>

◎‘방송 건강지수는 37점’/채널·프로그램 차별화 30점으로 가장 저조/국제경쟁력 낙후도 문제

방송관계자들이 생각하는 우리 방송의 건강도는 50점도 안된다. 방송의 역사는 벌써 70년이나 흘러왔지만,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방송학자, 방송 관련 단체 근무자, 시민단체의 모니터회 회원, 현업 PD, 방송작가 등 방송 관계자 28명을 대상으로 한국일보 네오클래식팀이 우편과 전화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우리나라 방송의 건강지수는 37점(100점 만점)이었다.

설문항목은 5가지였다. 이중 「선정성·폭력성 탈피」가 평균 40점, 「채널·프로그램별 차별화」가 30점, 「국제경쟁력」이 34점, 「프로그램으로 감동을 받거나 정보를 얻은 체험」이 46점, 「정부·광고주로부터의 자율성」이 37점을 얻었다. 모두 50점을 넘지 못했다. (「매우 그렇다」 100점, 「대체로 그렇다」 70점, 「보통이다」 50점, 「대체로 아니다」 30점, 「전혀 아니다」 0점 기준). 중복이나 대응편성, 프로그램 모방, 시청층·장르 편중 등의 문제를 포함하는 채널·프로그램별 차별화 노력이 가장 미흡한 것으로 지적됐다.<박천호 기자>

◎‘당신도 TV중독자 아니세요’/TV로 시작해서 TV로 끝나는 하루/브라운관을 통해 울고 웃으며 ‘TV를 본다,따라서 존재한다’

『TV를 본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

만약 TV가 사라진다면? 그날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공황이 아닐까. 오늘날 TV는 TV중독증 환자를 만들어낸다.

『남편 없이는 살아도, TV 없이는 못산다』는 주부 이모(34·경기 고양시)씨. 남편으로부터 「테순이」라고 놀림받는 그에게 TV 없는 생활은 「존재의 이유」를 한가지 상실하는 것과 다름없다. TV는 그의 일상을 규율한 지 오래다. 그의 고백.

『내가 TV를 처음으로 본 것은 6세 때. 시골에 살았던 나는 가끔 이장집 안방의 TV를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황금박쥐」 「여로」 등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중학생일 때 우리집도 마침내 TV를 장만했다. 그후 「캔디」 「딱다구리」같은 만화영화와 「젊음의 행진」 「웃으면 복이와요」 「주말의 명화」 등을 보며 자랐다. 부모님이 주무시는 안방 한 구석에서 불을 꺼놓고 보는 「명화극장」은 언제나 소녀시절의 내가슴을 설레게 했다.

대학졸업후 직장에 다니고,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기까지 한동안 나는 TV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 후 또다시 TV는 둘도 없는 내 친구가 됐다. 남편이 출근해 버린 후 공허한 내 마음 속으로는 어느새 「아침 마당」의 이상벽과 「미망」의 태임이가 들어와 버렸다.

저녁시간대에는 「사랑할때까지」 때문에 약속도 할 수 없다. 이 시간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제방으로 쫓아내고 TV에 눈을 박아야 마음이 놓인다. 일요일 밤 같은 시간대에 방영하는 「임꺽정」과 「용의 눈물」을 다 보기 위해 VTR이 내장된 TV로 바꿔 하나를 보면서 하나는 녹화한다.

아이도 「뽀뽀뽀」로 시작, 비디오 만화영화 「드래곤볼」, 「은하철도 999」 등 TV를 끼고 살기는 마찬가지다. 오늘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마자 TV를 켰다. 소음은 단잠에 빠진 남편과 아이를 귀찮게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게 해준다. 한바탕 출근과 등교 전쟁이 끝나고 나는 다시 TV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

인기드라마 방영시간에 수돗물 사용량이 줄어들고, 길거리조차 한산한 우리나라. TV는 때로는 종교처럼, 때로는 권력처럼 군림하며 비판은 없고, 수용만 있는 TV중독증 환자들을 만들어 낸다.<박천호 기자>

□방송 70년 역사

1927.2.16. 경성방송국, 호출부호 JODK로 본방송 개시(방송 70년 기준일)

1945.9. 제1방송(일어) 폐지, 우리말 방송 개시

1947.10.2. 서울중앙방송국, 호출부호 HLKA로 방송(KBS 50년 기준일)

1954.12. 최초의 민간방송 CBS 개국

1957.9. AFKN 방송 개시

1961.12. MBC 라디오 개국

1961.12. KBS TV 개국

1964.1. 정부, 방송법 공포

1965.6. 서울FM방송국 개국

1966.8. KBS TV 전국 TV방송 개시

1969.8. MBC TV 개국

1980.12. 동아, 동양 등 5개 민간방송과 기독교 방송 일부 등 통폐합, 컬러방송 시대 개막

1985.11. 한국기독교협의회 등 시청료 거부운동 결의

1987.11. 언론기본법 폐지, 방송법 제정

1991.12. SBS TV 개국

1995.3.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 개시

1996.7. KBS 위성시험방송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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