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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퍼플의 ‘Machine Head’(나에게 이 음반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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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퍼플의 ‘Machine Head’(나에게 이 음반은:2)

입력
1997.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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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도 없던 시절/내돈 내고 처음 구입한 LP의 싱싱한 냄새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매일 음반 더미 속에서 살게 된다. 며칠만 음악 듣는 걸 게을리하면 책상 위에 음반들이 수북이 쌓이는데 그걸 볼 때마다 내가 과연 이래도 되는건가 하고 심각하게 반성한다. 이유는 바로 이 한장의 음반 때문이다.

딥 퍼플이 72년에 발표한 「Machine Head」.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Highway Star」 「Smoke On The Water」같은 록의 고전이 수록돼 있는, 록 마니아라면 누구나 한장씩은 소장하고 있을만한 음반이다. 하지만 희귀음반도 아니고 팝 음악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반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음반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돈을 주고 산 음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전까지 팝 음악과 담을 쌓고 지낸 것은 아니다. 이전까지는 거의 걸인처럼 팝 음악이 있는 곳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구걸해가며 들었다. 친구네 집, 음악다방, 음악감상실, FM 라디오, AFKN 등등.

처음으로 내 돈으로 구입한 「Machine Head」에서는 싱싱하고 짜릿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가수 생활을 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지금의 DJ 활동을 하면서 내가 나태해지려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풍겨와 나를 채찍질해준다.

그렇다면 이 다음 얘기는 대충 이렇게 흘러가겠구나라고 짐작할 지 모른다. 「배철수는 처음으로 구입한 딥 퍼플의 「Machine Head」를 밤낮으로 듣고 또 들어서 훌륭한 음악인이 되었고 지금도 배철수네 집 음반장에는 이 음반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라고.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음반을 구입할 당시엔 결정적으로 우리 집에 오디오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들을 수도 없는데 음반을 구입했다는 것이 정말 어처구니 없고 비현실적이었다. 결국 「Machine Head」는 음반으로서의 역할은 단 두 번으로 그치고(그것도 친구네 집 전축 위에서) 골동품이 되었다. 그나마 몇년 뒤 군에 다녀오고 나니 그 사이에 몇번의 이사로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음반은 없어졌어도 그 향기는 젊은 시절 내내 나의 주위를 맴돌았다.

물론 지금 내 음반장에도 딥 퍼플의 「Machine Head」 CD는 중요한 자리에 꽂혀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의 이 음반에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나는 중요한 것을 또 하나 깨달았다. CD에는 향기가 없다는 것을.<배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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