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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짜가… 판치는 위조상품/국내 불법 유통실태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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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짜가… 판치는 위조상품/국내 불법 유통실태 르포

입력
1997.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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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테이프 1,000원 유명청바지가 3만원/잘도 팔리고 있는데 뿌리뽑기는 ‘별따기’/외국에 하청도 주고 해외수출까지 갈수록 지능화/대학가·재래시장 등선 ‘가짜’쇼핑 노하우 등장지난 5일 서울 지하철 신촌역 인근 옷가게 앞. 셔터가 내려진 가게 앞 보도에 비닐장판을 깔고 한 청년이 카세트 테이프를 팔고 있었다. 4,500원선인 진품과 같은 노래가 들어 있는 테이프지만 값은 1,000원. 그 옆에서는 다른 청년이 연신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수십명의 손님이 몰려 드는 바람에 어떤 테이프는 1시간도 안돼 동이 날 지경이었다.

같은 날 동대문시장 앞 노점에서는 12만원을 호가하는 유명 브랜드의 청바지가 3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어린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청바지를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런 가짜 상품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 끊임없이 유통시키는 것일까.

가짜 노래 테이프의 제작·유통조직은 은밀한 점조직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만큼 뿌리뽑기가 어렵다. 대규모 가짜 음반 제작업자는 전국에 10여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제 단속에는 어려움이 많다.

검찰은 이들이 의정부나 수원, 성남 등 수도권에 공장을 차려 놓고 가짜 음반을 제작하다가 최근 단속이 심해지자 경상·전라 지역으로 공장을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복제기기로 제작한 노래 테이프를 개당 600원 정도에 도매상에 넘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큰 상자에 2,000개 정도의 음반을 가득 담아 전국 각지의 도매상에 소포로 보낸다.

도매상은 이를 노점상에게 개당 700원 정도에 판다. 도매상은 물건이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팔리는지 훤히 꿰고 있지만 노점상은 도매상의 호출기 번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물건을 받을 때도 정해진 장소에서 은밀히 만난다. 또 암호를 정해 놓고 단속이 시작되거나 검찰의 수사망이 죄어들면 서로 달아 나라는 신호를 보낸다.

노점상은 개당 2,000∼3,000원에 노래테이프를 판매한다. 같은 가짜라도 상표와 등급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다르다. 제작업자마다 상표를 정해 놓고 있기 때문에 노점상 사이에는 「어떤 상표가 음질이 좋다」는 평가가 나 있다. 또 조잡하게 곡목만 적혀 있는 테이프는 속칭 「녹각」으로 불리며 1,000원 안팎에 팔린다. 질좋은 가짜를 뜻하는 「녹용」보다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신촌의 청년처럼 「녹용」을 개당 1,000원에 파는 것은 「시장교란 행위」에 해당한다.

의류의 경우에는 가짜 외국브랜드로 수출되기까지 한다. 국내 브랜드 모방도 이제는 심각한 상황이어서 업체들이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D브랜드는 국내 하청업체들이 가짜를 만들어 국내외에 유통시켜 피해를 본 경우다. 미국에서 생산량 만큼의 원단을 들여 오지만 이를 요령있게 재단해 여벌의 제품을 만들어 낸 후 중간도매상(속칭 나카마)에게 넘기면 일은 끝난다. 도매상은 각공장에서 나온 가짜를 한데 섞어 익명성을 보장한 후 일본이나 홍콩에 수출한다. 이것들은 현지의 매장에서 제값에 팔리기도 한다.

유명 브랜드의 스포츠웨어 가운데 가장 위조가 심한 것은 모자다. 전문 수출업자가 여러 공장에 하청을 줘 위조 브랜드를 대량 생산한 후 일부 제품만 국내 시장에 내놓고 나머지는 남미나 동남아, 중동 지역에 수출한다. 검찰은 모자 위조단이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제조공장은 이미 중국 등지로 이전됐고 중동이나 남미에 지사를 두고 수출물량을 조절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국내 업체의 상표권 침해도 만만찮다. 지난해 국내에서 선풍을 일으켰던 청바지 N브랜드는 지난 1년간 가짜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단속반을 조직해 전국을 누비지만 가짜는 아직도 유통되고 있다. 회사관계자는 『최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전문업자 몇명이 국내는 물론 홍콩에 있는 공장에까지 하청을 줘 청바지를 양산해 유통시키고 있다』면서 『일주일에 15∼20건씩 가짜 청바지 판매상을 적발해 내지만 근본적인 단속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가짜 상품의 조직적 유통은 음반이나 의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가방 시계 액세서리 등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신발류는 부산에서, 양말류는 대구에서 주로 위조되고 있다. 도매업자나 대형유통업자가 3, 4명의 제조업자에게 원단 부품 라벨 등 필요한 일체의 재료를 공급해 생산을 맡기고 이를 몰래 회수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가짜 상품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엄청난 수익성에서 찾는다. 가짜 음반의 경우 원가가 개당 100원도 안되지만 600원에 판매할 수 있는 통로가 확보돼 있어 발빼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만도 5명의 대규모 제작업자가 적발됐지만 이들이 잡혀간 후에도 가족이나 친·인척이 공장을 옮겨 「장사」를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류는 외국 유명사의 하청업체였다가 주문을 중국 등지의 업체에 빼앗긴 업체가 가짜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또 최근에는 전문 가짜상품 수출업자 등이 개입해 한결 조직화하고 있다. 품질은 진짜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가짜이기는 마찬가지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는 동대문시장 등 재래시장이나 대학가 등지에서 「질좋은 가짜」를 고르는 노하우가 널리 알려져 있다.

압수된 위조상품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모두 소각된다. 지적재산권 침해사범 전담수사반이 있는 서울지검은 지난해 수백억원어치의 음반 의류 가죽제품을 압수해 소각했다. 서울지검 김창희 검사는 『이미 우리 상표도 국내외 위조상품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 면서 『국내 상표는 물론 외국상표까지 철저히 보호해야 우리 상표도 외국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상연 기자>

◎유사품 천국 이태원/일부상점 아직도 취급/진열장속 핸드백이 1분만에 ‘샤넬’ 둔갑

가짜 상품의 천국이었던 서울 이태원 상가가 당국의 단속으로 「철퇴」를 맞고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상인들은 가짜 상품보다는 질좋은 자체 브랜드로 손님을 끌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최근에는 가짜 상품의 유통이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상점은 한결 교묘한 방법으로 유명상품을 위조해 팔고 있음을 취재팀은 확인할 수 있었다.

C가방상점. 쇼윈도나 실내 진열장에는 유명상표의 상품은 보이지 않았다. 「샤넬」핸드백이 있느냐는 질문에 젊은 여주인이 순간 경계의 눈길을 보냈다. 시치미를 떼고 있었더니 잠시후 『어떤 모양의 핸드백을 찾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진열장에는 없는데 어디서 갖고 오느냐』고 되묻자 『여기서 1분이면 만들어 준다』고 장담했다.

진열장에서 둥근 금속제 장식이 달린 평범한 핸드백 하나를 고르는 사이 여주인이 가게 밖에 세워둔 승용차 트렁크에서 비닐가방 하나를 꺼내왔다. 비닐가방 안에는 크고 작은 금속제 샤넬 장식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는 드라이버로 핸드백의 원래 장식을 떼내고 그자리에 샤넬장식을 간단하게 달았다. 문밖의 기척을 살피면서 작업을 하던 주인은 『170만원 하는 핸드백을 5만5,000원에 사면 거저』라며 『원제품도 최고품질의 양가죽 핸드백인데 유명상표가 안붙으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인은 장식달기가 끝나자 원래 장식에 눌렸던 부분을 라이터 불로 펴가며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여자 10명 가운데 1명은 샤넬 핸드백을 들고 다니지만 거의 대부분이 가짜예요』

취재팀의 확인결과 이곳의 가짜 상품 취급 상점은 한동안 내국인에게는 좀처럼 물건을 팔지 않았다. 손님을 가장한 단속반에 적발될 경우 200만∼5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불경기 한파로 상점운영이 어려워 지고 가짜 상품을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끊이지 않자 「모험」을 감행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유명 브랜드의 금속장식을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고객이 원할 경우 즉석에서 진짜와 똑같이 바꿔 주는 곳도 있다. H상점의 진열대에는 유명상표와 비슷한 금속장식이 달린 핸드백이 가득 놓여 있었다. 『장식이 진짜와 똑같은 것은 없느냐』고 묻자 여주인이 『이게 진짜』라고 말했다. 의아해 하는 취재팀에 그는 『금속 장식의 일부를 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 부분만 떼어내면 감쪽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납부분을 떼어내자 아무런 자국이 남지 않은 진짜 장식으로 변했다. 이 상점에는 「돌체 & 가바나」 등 일부 유명브랜드의 상품도 진품과 같은 상표를 단채 버젓이 진열돼 있었다. 이유를 묻자 『아직 단속이 심하지 않은 상품은 그냥 내놓고 팔아도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가짜 핸드백 가운데 가장 인기가 좋은 「샤넬」상표를 위조해 팔다 적발된 건수는 지난해만 100여건. 피해액은 50억원으로 추정된다. 샤넬(주) 관계자는 『가짜 상품이 양적으로 줄기는 했지만 질적으로는 고급화해 전국 각지에서 팔리고 있다』면서 『새 제품이 나오면 며칠 지나지 않아 위조품이 유통될 정도로 위조 주기가 짧아지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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