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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의 전환(한국의 30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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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의 전환(한국의 30대:2)

입력
1997.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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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접고 건전비판세력 선두에/‘민주·민족·민중’ 내걸고 반미·반독재 앞장/동구권 붕괴·세계화 바람속 갈등 겪지만/진취적 개혁성향바탕 시민운동 주축으로한국의 30대는 이념의 시대를 살았다.

그들은 70년대 후반 유신말기에서 90년대 초 6공때까지의 10여년간을 치열한 반독재투쟁의 전면에 섰던 「현장세대」들이다. 40, 50대가 한강의 기적을 일군 「번영의 주역들」이라면 30대는 군부독재와 산업화의 그늘을 누볐던 「깃발의 주인공들」이다. 그들의 이념적 바탕은 당시 지식 사회를 풍미했던 반외세 민족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가 양대축을 이룬다. 사르트르류의 현실참여적 실존주의와 중남미를 중심으로 보급된 제3세계 종속이론도 주요한 사상적 토양이다. 「80년 광주」가 우리사회에 반미를 주요한 사회적 갈등으로 부각시킨 계기였다면 그들은 분명 반외세운동의 제1세대이기도 하다.

홍성태(32·서울대 대학원)씨는 『과거 정치일변도였던 학생운동에 사회·경제적 상황을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 70년대 학생운동이라면 80년대 학생운동은 여기에 더해 반미·반일운동에 과학적, 이론적 토대를 구축했다』고 자평했다.

그의 말처럼 8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낸 30대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부한 서적과 지적 자유의 분위기 속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를 흡수할 수 있었다. 30대 후반이 문학서적 등을 통해 교양수준의 비판의식을 습득하거나 극소수가 어렵게 구한 일어판 원전을 비밀스럽게 학습한 세대였다면 이들은 합법적으로 출판된 한글판 맑스-레닌주의를 탐닉했던 세대들이다.

서울대 지역종합연구소 한도현(36) 박사는 『당시 대학을 다녔던 학생들에게 맑스-레닌이즘은 거부할 수 없는 사상적 유혹이었다』며 『특히 사회대 학부생들은 학과별, 전공별 특성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회주의에 경도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 토양위에서 그들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구조와 군부독재에 맞서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89년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그들이 지향했던 이념의 실험도 끝났다. 그들이 20대 때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그 이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 최영미는 30대를 「잔치가 끝난 세대」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30대는 이념과 현실의 괴리를 가장 첨예하게 느끼는 세대인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사상과 열정」에 대한 미련과 회한 때문일까. 30대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건전한 사회비판세력으로서 위치를 굳혔다. 그들이 한 때 심취했던 이념에의 열정은 건전한 사회비판세력으로서의 거듭남에 모자람없는 밑거름이 됐다. 그들의 비판의식과 현실참여 열의,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은 그같은 토양위에서 비로소 가능하지 않았을까. 전문직 진출의 급격한 증가와 시민사회운동의 활성화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있다.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다 지난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늦깎이 법조인 최모(36)씨는 『4·19나 6·3세대, 긴급조치세대와는 달리 모래시계세대는 민주화운동의 대중화시대를 열고 6·29를 쟁취한 세대』라며 『그들이 가졌던 당시의 열정과 활력은 긴 생명력을 가지며 새로운 민주화 시대의 중심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들은 80년대 후반부터 한국사회에 봇물처럼 일기 시작한 시민운동의 주축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환경개발센터 서왕진(33) 국장은 『시민운동은 다양한 연령, 직업, 계층의 참여를 지향하지만 실무작업을 추진·기획하는 업무는 대체로 30대가 중심』이라면서 『30대는 인간적으로 선진화한 사회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역량과 의지를 갖춘 세대』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념을 상실한 세대로서의 상흔과 갈등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상주의적 이념에 심취했던 20대를 거친 이들은 사회 각층으로 진출, 광범위한 화이트칼라 계층을 형성했지만 생활은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불기 시작한 개방의 파고는 그들에게 전방위 경쟁이데올로기로의 무장을 요구했다. 그들이 상실한 이념의 자리에는 어느덧 「세계화」라는 생존철학이 비집고 들었다. 외국기업 계열회사인 J광고사에 다니는 박모(34)씨는 『연일 이어지는 국제회의와 외국인과의 전화, 팩스통신를 접하며 세계화를 절감하게 된다』며 『영어회화를 못하면 직장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6개월전부터 외국어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는 덮어두고 살지만 옛날 생각을 하면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최윤필 기자>

◎30대가 겪은 학생운동사/서울역 시위로 80년 문열어/NL­PD간 노선다툼속/87년 6·10대항쟁 주도

긴급조치 9호로 상징되는 유신독재에 항거, 처음으로 벌인 대학가 가두시위는 79년 5월8일 서울대시위였다. 그때까지 학원 안에 머물러온 시위대는 교문을 벗어나 시민을 향해 다가섰다. 이때 시위대 뒤를 좇던 신입생이 지금 서른일곱살이다.

79년 10월26일 「궁정동의 총소리」로 갑자기 찾아온 「서울의 봄」, 그 절정은 80년 5월 서울역 대학생연합시위였다. 10만여명의 대학생이 모인 이 시위는 폭력투쟁을 계속하자는 「직접투쟁론(학림)」과 이를 반대하는 「투쟁지양론(무림)」이 격돌한 끝에 「투쟁지양론」이 승리, 이른바 「서울역 회군」이 단행된다. 신군부에 쿠데타 빌미를 줄 수 있으니 학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으나 결과는 5월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권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경험한 80년대 학생운동은 70년대 학생운동과 본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띠었다. 70년대 학생운동이 「반정부적」이었다면 80년대 학생운동은 「반체제적」으로 이념성이 짙어졌다.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82년), 본격적인 야학운동(83년), 총학생회 부활(84년), 서울미문화원농성(85년), 김세진·이재호군 분신, 건국대사태(86년), 이한열군 사망, 6·10항쟁(87년)은 모두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념성의 강화와 함께 본격적인 사상투쟁도 일어났다. 대중에 대한 지도와 대중의 자발성을 각각 강조하는 MT(민주화추진위원회의 약칭·복학생그룹이 주도)와 MC(Main Current·당시 서울대 학생운동 주류)의 논쟁이 84년 치열하게 전개됐다. 이어 반미의식을 강조하는 반제투쟁론이 제기되면서 자민투-민민투로 조직분화가 일어났고 학생운동은 자민투를 승계한 NL(National Liberalization, 민족해방·민족모순 강조)과 민민투를 승계한 PD(People Democracy, 민중민주주의·계급모순 강조)로 양분된다. 하지만 이들의 사상적 기반은 80년대말 구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함께 급격히 와해됐고 참여속의 개혁을 주장하는 90년대의 시민운동론 등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서사봉 기자>

◎30대의 필독서/40만권 팔린 ‘해방전후사의 인식’ 첫손

30대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으로는 강만길 송건호씨 등이 쓰고 한길사가 79년 펴낸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들 수 있다. 「해전사」라는 약칭으로 통한 이 책은 당시로선 거의 불모지대였던 한국현대사를 역사인식의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0여만권이 팔린 해전사는 사회과학도서로는 전무후무한 초베스트셀러로 기록됐다.

맑스주의 철학입문서인 「철학에세이」(동녘)도 대학신입생들의 필독서였다. 82년 출판돼 약 100만부가 판매된 이 책은 지금도 청소년 교양도서로 꾸준히 읽히고 있다.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 이영희의 「우상과 이성」, 프란츠 파농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교양서들이다.

열악한 노동현실을 고발하며 70년 분신한 청계피복노동자 전태일을 소재로 한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도 30만부가 나갔다. 고 조영래 변호사는 출판당시 이름을 숨겼다가 91년 「전태일평전」으로 개정판을 내면서 저자임을 밝혀 화제가 됐다. 교육현실을 고발한 「페다고지」, 지식인의 사명을 밝힌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도 많이 읽힌 책이다.

이념의 부침과 함께 사회과학 전문출판사들도 운명을 함께 해 「청사」 등 많은 출판사들이 문을 닫거나 휴업했다. 그나마 남은 출판사들도 교양·인문도서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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