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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사라져가는 불꽃(브랜드 사회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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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사라져가는 불꽃(브랜드 사회학:1)

입력
1997.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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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기린표… 팔각… 통성냥/어려웠던 시절 생필품/라이터 등에 밀려 이젠 판촉물로 만족「소비의 사회」에서 상품은 그 상품이 등장한 사회문화적 상황을 반영하는 문화적 상징이기도 하다. 상품을 통해 우리는 삶의 흐름과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품은 「시대의 화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룡뼈를 통해 선사시대 인류의 생활을 짐작하듯 20세기를 이해하기 위해 미래의 인류는 비틀즈의 앨범이나 맥도널드 햄버거를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브랜드는 「사회학」이다.

유엔 팔각 성냥, 기린표 통성냥, 비사표 갑성냥, 아리랑 성냥을 기억합니까.

성냥 보기가 힘들어졌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팔각 성냥이나 통성냥은 필수품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농촌 고향집, 성냥은 등잔 밑에, 촛대 곁에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부뚜막 머리맡에도 마찬가지였다. 물에 젖을까봐 신주처럼 잘 모셨고 한 개비라도 아껴서 불을 당겼다.

논두렁에서 쥐불을 놓을 때 행여나 바람에 꺼질세라 조심스럽게 손바닥으로 감싸 불을 당기던 모습을 당신은 기억하는지. 추운 겨울날 성냥을 한 개비씩 지피며 언 손을 녹이다 스러진 우리의 가여운 「성냥팔이 소녀」동화를 지금 당신의 아이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성냥은 이제 본래의 사명을 잃어가고 있다. 복고풍 카페의 인테리어 소품으로서, 식당 전화번호를 기억하기 위한 광고물로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1907년 인천에 일본인이 「조선인촌」이라는 성냥공장을 설립하면서 우리나라의 성냥산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조업이 활발하지 못했던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300여개의 제조업체가 난립할 정도로 성냥산업은 호황을 누렸다. 제조시설이 간단하고 정밀한 기술이 필요치 않아 소규모업체도 비교적 쉽게 진출할 수 있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성냥은 중동, 미국, 유럽 지역 등으로 수출돼 외화획득에도 한몫을 했다. 한해 200만∼30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당시의 신문을 보면 성냥에 관한 기사가 비중있게 실린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예쁜 광고 성냥 모으기는 괜찮은 취미였다.

세계적인 수요 감소 추세와 라이터, 가스레인지같은 자동점화장치가 보편화하면서 성냥산업은 75년을 고비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한때 수출용 바베큐 성냥(보통 성냥보다 길이가 긴 벽난로용 성냥) 등 신제품 개발과 제품 고급화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88년 이후 그나마 남아있던 시장도 값싼 중국산 가스라이터에 자리를 내주었고, 중국산 반제품이나 완제품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는 유엔화학, 경남산업, 조일산업, 영화인촌 등 전국적으로 6개 정도의 업체가 남아있다. 대부분 접객업소를 대상으로 광고 성냥과 케익 성냥을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성냥은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가치가 부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회용 가스라이터의 연간 소비가 2,000만개에 이릅니다. 가스라이터 공해입니다. 스위스같은 나라는 일회용 가스라이터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지요』 경남산업 영업부장 이승인씨의 말이다. 쓰레기 종량제시대에 성냥은 환경친화적인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성냥은 사람들의 「복고 심리」를 자극하는 「향수 상품」이 되기도 한다. 독특한 실내 디자인과 분위기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서울 강남과 대학로의 몇몇 카페에 가면 팔각 성냥이나 통성냥이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을 볼 수 있다.

성냥을 이제 생활필수품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편리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성냥은 번거롭고 아이들에게 위험한 물건이다. 그러나 사라져 가는 불꽃에는 어려웠던 시절의 향수와 우리 산업이 걸어온 길이 남아있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성냥 한 개비를 아끼던 마음. 그래서 성냥은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김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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