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집안 벽을 새롭게 장식하는 달력(Calendar)은 흘러가는 세월에 인간이 생활의 편의를 위해 「일 주 월 년」이란 구획을 한 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인간의 생활 속의 지혜가 총동원됐다. 그 속엔 천문 민속 신화 종교 등에 얽힌 조상들의 생활이 응축돼 살아 움직이고 있다. 세월에 선을 긋는 기준이 된 것은 바로 달과 태양이었다. 처음엔 달이 태양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Calendar」의 원어라고 할 「Calendae」(Calends)가 고대 로마력에서 달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초하루를 뜻한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살펴볼 수 있다.지금은 상황이 역전돼 대부분 태양력을 사용하고 있지만 5,000∼6,000년간에 걸친 인류조상들의 과학생활의 결정체라고 할 달력의 합리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첨단과학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이와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 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까닭이 있다.
이처럼 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생활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온 달력이 올해는 구경하기조차 힘들어졌다. 신문사는 하는 일의 성격상 해마다 연말이면 각 기업이 저마다 아이디어를 동원해 제작한 각양각색의 달력이 앞다투어 모여 들었다. 하도 많아 처치하기 곤란한 정도였는데 올해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주범은 바로 불경기다. 경영이 어려워지다 보니 각 기업이 홍보차원에서 만들어 배포하던 달력마저 제작을 중지했다. Calendae가 또 하나 고대 로마의 금전출납부를 뜻하는 「Calendarium」과 그 줄기를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각 기업의 이같은 허리띠 졸라매기 작전은 바람직한 일이다.
올해는 국민들도 생활을 같이하는 달력이 지니고 있는 이같은 뜻을 곰곰이 되씹어 과소비를 억제해야 한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금전출납부에 빨간줄이 가는 생활은 개인은 물론 나라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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