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 강추위가 며칠 매섭더니, 내리는 눈발에 쫓겨 한풀 꺾일 모양이다. 풀리는듯 얼고 질척거리는듯 미끄러운 새해 세상살이는 그러나 여전히 스산하고 위태롭다.파업선언―중지―파업재개―보류―전면확산의 굴곡을 거쳐가는 노동계의 개정 노동법 반대투쟁은 공공부문 등 「넥타이 맨 노조원」들의 가세가 늘어나면서 사태가 격화하는 양상이다. 검찰은 파업주도세력을 잡아들일 태세이고, 재계 역시 강경 일변도의 대응을 선언하고 나선다. 「정―사」와 「노」의 전면 충돌모습이 마치 꽁꽁 얼어붙은 얼음덩어리다. 어디 한군데라도 틈이 있어 보이질 않는다. 총파업은 바야흐로 장기화의 조짐마저 보이는 중이다.
사실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가 총파업의 장기화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파업의 장기화 국면은 피해가야 한다. 우리 경제가 더 이상 파국적 재난에 휩쓸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경제가 살지 못하면 국민도 나라도 존립할 수 없다.
김영삼 대통령이 7일 연두회견을 통해 남은 임기중 국정의 최우선을 경제 되살리기에 두겠다고 「정면돌파」의지를 밝힌 것은 그런 뜻에서 이해할만 하다. 추락한 국가경쟁력을 일으켜 세우지 않고서는 경제를 회복할 수가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의 환경개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현안인 총파업사태에 대해서는 『작년말 40여년만에 단행된 노동관계법의 개정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의미있는 출발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여, 개정 노동법의 엄정집행의지를 재확인하고 있다. 혹시라도 동파지경의 총파업사태를 녹여줄 훈풍은 일지 않았고, 그럴만한 여유도 보여주지 않았다. 남은 것은 법의 집행이고, 강공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법으로 밀어붙이면 아마도 파업사태는 종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파업의 수습 뒤에 남는 새로운 문제가 있게 된다. 노사 사이의 가시지않는 불신이 그것이다. 불신이 남아있는 한 진정한 수습은 없다. 파업사태로 이미 치명타를 입은 경제는 불신을 털어내지 못한 상태로는 회복의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파업의 종결이 급한 것이 아니라 신뢰의 회복을 먼저 이루는 것이 더 긴요하며, 기업우선의 정책이 급한 것이 아니라 노사간의 신뢰회복을 위한 여건이 한발 앞서 중요한 상황이다.
아쉬운 것은 국민을 설득하려는 성의있는 한마디, 노동자들을 끌어 안으려는 여유와 유연성이다. 유연성이야말로 정치지도자 제1의 덕목이 되어야 한다. 노사불안은 사회불안으로 이어지고 민심은 기댈 곳이 없어 방황하는데, 그 많은 정치인들은 그 누구도 반성의 빛이 없다. 「정치」가 없다. 대통령 스스로 정치를 복원해서 문제를 풀어갈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미증유의 총파업사태에 직면해서 이 위국을 풀어갈 가장 유효한 수단은 대화이고 설득이며 주고받기이다. 그런데도 개정 노동법은 『잘된 것』이고 『선진적인 것』이며 『후유증 정도는 각오했던 것』일 뿐이지, 절충하거나 합의를 이루어갈 필요가 있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야당 당수들과 만날 필요가 없다』고 대화를 명백하게 거부한다. 노동법에 관한 한 「정치」는 발붙일 여지가 없다. 『소수가 다수를 이기는 법은 지구상 어느 나라에도 없다』는 큰 목소리만이 쩌렁쩌렁 울리고 있다. 정말 그럴까.
노동법 개정의 근원은 오늘의 경제문제다. 기록적인 외채누증과 경상적자는 확실히 위기적 상황이다. 임기를 1년 앞둔 김 대통령에게 있어서 경제 실정은 악몽이다. 그러나 경제 회생이 대통령의 책무라고 해서 전적인 책임을 혼자서 져야 할 일은 아니다. 국민이 짐을 나눠 지고 노동자도 물론 함께 진다.
지금, 지도자가 정말로 무서워 해야 할 일은 경제난이 아니다. 독선이다. 독선은 리더십에 상처를 낸다. 경제살리기에도 독이 된다.<상무이사 겸 심의실장>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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