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골동품가게·고서점서 밥집·찻집·카페·포장마차까지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새로움만 좇는 세태와는 다른 고졸함에서 오는 독특함/도시생활에 지친 모든 사람들을 껴안는 그런 넉넉함이 흐른다파리의 샹젤리제, 뉴욕의 소호, 모스크바의 아르바트와 북경의 류리창(유리창). 각각 그 나라와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 거리」의 이름들이다.
그렇다면 서울에는?
『서울에는 인사동이 있다』고 「학고재」화랑 우찬규 사장은 말한다.
『인사동은 세계 유일의 「복합미술문화공간」이다. 화랑, 골동품가게서부터 화방, 지업사, 표구상에 이르기까지 인사동에는 고대·현대 미술을 아우르는 모든 것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그 뿐인가? 전통음식점, 찻집 등 여타 생활문화환경까지 이 정도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곳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누군가 일부러 공을 들여도 만들기 어려운 공간이다』
인사동에는 인사동 분위기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남다름이 있다. 이 남다름은 새로움을 좇는 최근 세태를 거스르는 「고졸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카페 「볼가」에서 만난 시인 이원괴씨는 『인사동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며 웃었다.
「거리의 박물관」이니 「문화의 섬」이니 하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 인사동을 지배하는 것은 새롭고, 세련되고, 튀는 것들이 아니다. 낡고, 오래되고, 변하지 않는 것들이다. 문을 연 지 「30년밖에」 안되는 가게 주인과, 또 그만큼의 이력을 가진 단골 손님들을 드물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어깨를 잔뜩 웅크린 낡은 건물들이며, 그곳들마다에 가득 들어찬 크고 작은 골동들, 그 하나 하나에 얽힌 일화와 사연들은 인사동을 마치 과거를 재현해 놓은 거대한 세트장처럼 보이게 한다.
그래서 인사동에는 숨가쁘게 치닫는 서울살이에 지친 사람들, 번쩍이는 「현재」보다는 남루한 「과거」가 여전히 친숙한 사람들, 한번쯤 과거의 향수에 젖어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주로 모여든다. 인사동은 이들이 먹고, 보고, 쉴 수 있는 곳들을 곳곳에 숨기고 있다. 「통문관」 「승문각」 「문고당」 등은 이제는 찾는 이 드물고, 물건 구하기도 힘들어졌지만 고집스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서점들. 「학고재」 「이십일세기」 「동산방화랑」 등은 저마다 참신하고 특색있는 기획으로 「한국 미술문화의 메카」 인사동의 맥을 이어가는 대표적인 화랑들이다.
최근 들어서는 인사동의 「낯선」 분위기를 또 하나의 「새로움」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려는 젊은 세대들도 적잖이 몰려든다. 외국 골동품 전문점인 「토인」과 「토토의 오래된 물건」, 커피전문점 「모짜르트」, 컨셉트 카페 「학교종이 땡땡땡」 등은 이들 젊은 세대들의 지지에 힘입은 가게들이다.
인사동의 밤 또한 다른 곳들과는 또다른 분위기를 낸다. 눈을 어지럽히는 네온사인의 화려한 불빛 대신 인사동의 밤을 지키는 것은 찻집들의 노란 백열전등과, 종로쪽 입구편에 늘어선 포장마차들이다.
『50대만 해도 젊은 축에 속한다』는 「사루비아다방」에서부터 30대의 포장마차, 20대가 주고객인 각종 이색 공간들에 이르기까지, 이렇듯 인사동에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넉넉함이 있다. 그리고 이 넉넉함이야말로 인사동을 옹색하기 짝이 없는 전통주의의 마지막 유물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두루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기능하게 하는 힘이다.
그러나 인사동의 내일이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다. 피할 수 없는 「퇴락」의 조짐과, 「현대화」를 앞세운 도심 재개발 논리 사이에서, 인사동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보듬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있다.
「관훈·인사 전통문화보존회」 손용두 회장은 『지역 상인, 주민들 사이에서도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있고, 인사동 거리축제 등 인사동에 문화적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각종 행사들도 자체적으로 벌여나가고 있다. 그러나 인사동을 세계적인 문화거리로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가게가 낡아 당장 증개축을 해야 할 판인데도 법때문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동 일대를 「관광특구」 내지는 「문화특구」로 지정해 좀더 체계적인 발전 방안을 마련해보자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관훈동에 위치한 월간 「가나아트」 편집주간 김진송씨는 『인사동 일대는 개발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세계적 명소가 될 만한 풍부한 문화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워져야 하지만 옛것을 다쳐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무조건 현존 상태로의 보존을 고집해서도 안되는 데 인사동의 고민이 있고 「문화특구」 지정의 객관적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말 그대로 구상 수준에 머물 뿐, 몇 해째 실행으로 옮겨지지는 못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1차적 주무 부처인 종로구청측은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용역을 줄 예정』이라는 말만을 하고있다. 어느 곳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문화체육부는 가칭 「지역문화시설건립촉진법」제정을 추진중이지만 아직은 「문화특구」의 기본 개념 검토라는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으면 우리 후대는 인사동 일대에서 아무런 쓸모도, 문화적 가치도 없어져버린 거대한 과거의 유물더미를 보게될 지도 모른다.<황동일 기자>황동일>
◎인사동 뒷골목엔 정겨움이 있다
인사동 뒷골목에는 100여곳이 넘는 밥집들이 있다. 거기에는 손끝으로 맛을 내는 주방 마님들의 정갈한 한정식과 예술인과 정객들의 얘기가 있다.
인사동 밥집의 원조는 학고재 옆골목의 「선천」. 주인마님은 평북 선천이 고향인 박영규씨. 69년 「혜원」이라는 요리집으로 출발, 71년 「선천」으로 이름이 바뀐 뒤 변한 건 가격뿐이다. 당시 250원하던 된장찌개, 우거지국 점심 정식이 지금은 7,700원. 펜클럽과 예술원 회원 등 문인들이 단골고객이었다. 운보 김기창, 이당 김은호, 전숙희, 모윤숙, 김광균, 김동리씨 등이 이곳의 장맛에 반해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인사동의 밥집은 단골 손님들이 유명해선지 주인 마님들도 유명했다. 「선천」과 26년동안 담을 사이에 두고 있는 「사천」은 작곡가 고 이봉조씨의 누님이 운영하고 있고, 지금은 없어진 「경향」은 국악인 성창순씨가 주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사동 밥집들의 음식맛은 변치 않았다. 학고재 옆골목으로 더 들어가면 「청기와」 「누님 손국수」 「사원」이 있다. 흙담과 석탑이 풍치를 더해주는 「사원」의 7∼8가지 요리가 나오는 한정식 코스는 2만 5,000∼3만원 정도다. 수도약국의 왼쪽길로 접어들어 골목으로 빠지면 갈비찜, 곰탕이 유명한 「사동집」, 올갱이국이 별미인 「풍류사랑」, 모녀가 정갈하게 나물상 차림을 내놓는 「산골」이 있다. 『엉터리 음식은 만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뚝심있는 주인 아저씨가 있는 「부산식당」도 빼놓을 수 없는 곳.
인사동의 정취는 밥집말고도 전통찻집과 카페에도 있다. 거친 흙벽과 창호지 바른 문살, 은은한 향냄새에서 배어오는 운치는 편안하다. 고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씨가 하는 「귀천」과 「옛찻집」 「다경향실」 등이 유명한 찻집.
「오, 자네 왔는가」 「나에 남편은 나무꾼」 「꽃을 던지고 싶다」 「학교종이 땡땡땡」 「평화만들기」 「모깃불에 달 끄스릴라」 등 인사동에는 특이한 이름의 카페들이 많은데 모두 색다른 공간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산타페」와 「볼가」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카페.
문인들이 자주 모이는 「평화만들기」, 톡 쏘는 솔잎주를 맛볼 수 있는 「지대방」, 모과차 향기와 가야금 연주가 어우러지는 「솟대」 등은 숨막히는 도심 속에 만나는 청량한 숲과 같다.<김미경 기자>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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