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명꼴 세상을 떠나지만/지원 등 적어 전승자 ‘가물에 콩나듯’/후손에 전통단절 책임 어떻게 지려나중요 무형문화재의 명맥이 흔들리고 있다. 기·예능 보유자 1세대들이 고령으로 해마다 10여명씩 세상을 뜨고 있지만 대를 이을 후계자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예가 많다.
중요 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 가운데 94년에 10명, 95년에 11명, 96년에 12명이 타계했다. 지난해 타계한 인간문화재는 30호 가곡 보유자 김덕순씨를 비롯해 종묘제례악의 김성진, 석전대제 강정희, 나전장(끊음질 부문) 심부길, 궁시장(활 부문) 장진섭, 판소리 강맹근,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창희, 북청사자놀음 변영호, 목제품에 놋쇠장식을 다는 두석장 김덕룡, 구례향제줄풍류 조계순, 진도다시래기 조담환, 수영야류 조복준씨 등이다. 올 들어서도 지난 3일 57호 경기민요 보유자인 안비취씨가 타계했다.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 185명 가운데 50%가 넘는 93명이 70세 이상으로 70대가 57명, 80대가 34명, 90대가 2명이다. 또 40대가 8명, 50대가 33명, 60대가 51명 등으로 평균연령은 68.8세에 달한다.
후계자가 있는 종목은 그런대로 전승·보존이 가능하나 후보나 조교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경우는 해당 종목이나 유파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가죽 꽃신을 만드는 37호 화장, 52호 시나위, 94호 벼루장 등은 보유자 사망후 종목자체가 지정에서 해제됐다.
문화재 관리국 관계자는 『후계자들이 없거나 있더라도 아직 기량이 완숙하지 못해 보유자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보유자가 생존해 있으나 뒤를 잇겠다는 제자가 없는 경우도 있다. 기와를 만드는 91호 제와장, 화살통을 만드는 93호 전통장, 60호 장도장의 낙죽장도 등이 그런 예다. 58호 줄타기의 경우 보유자가 88년 사망했으나 조교 김대균씨가 67년생으로 30세에 불과해 아직 보유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전승 단절위기는 전통문화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 부족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현재 수준의 정부 지원금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도 주요한 원인의 하나이다. 특히 보유자 후보나 조교·보조자들은 다른 생업을 갖지 않고는 견뎌내기 어렵다.
문화재 관리국의 한 관계자는 『비인기 종목의 경우 대책이 시급하다』며 『후보나 조교 양성을 위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15호 북청사자놀음, 18호 동래야류, 39호 처용무 등의 핵심 장비인 사자나 탈을 제작하는 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들도 고령인데다 후보나 조교를 두지 못한 상태라 명맥이 끊길 위기를 맞고 있다. 서낭신에게 풍요를 비는 마을축제인 98호 경기 도당굿 악사기능은 보유자가 95년 사망한 이후 맥이 끊겼다. 연습하고 발표할 공간이 부족한데다 명인들의 기예를 후대에 전할 기록작업도 미흡한 실정이다. 전국 31곳에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이 있으나 100여개 종목을 소화해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인간문화재의 몸짓과 기술, 비법을 담은 종합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업도 부진하다. 벼루장 이창호(90년 타계), 줄타기 김영철(88년 타계), 궁시장 (화살부문) 조명제(80년 타계), 경기 도당굿 악사 조한춘(95년 타계)씨 등의 몸놀림과 기예는 영상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다시는 그 모습을 대할 수 없게 됐다.<조재우 기자>조재우>
◎인간문화재 연혁과 종류/64년 종묘제례악 첫 지정/기·예능보유 전국 185명/개인·단체 포함 154종목/전승자 총 1,944명 불구 비인기분야 단절위기
무형문화재는 크게 국가가 지정하는 중요 무형문화재와 시도에서 지정하는 무형문화재로 나뉜다. 이 가운데 국가지정 중요 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를 흔히 인간문화재라고 부른다.
62년에 문화재 보호법이 제정되고 64년에 중요 무형문화재 1호로 종묘제례악이 지정된 이후 현재까지 개인 103종목과 단체 51개 종목이 지정됐고 보유자는 185명이다. 또 보유자 후보를 비롯한 조교와 보조자 292명, 이수자 1,404명, 전수장학생 63명 등 보유자를 포함한 전승자가 1,944명에 이른다.
중요 무형문화재는 예능종목과 기능종목으로 나뉜다. 예능종목은 음악, 무용, 연극, 놀이와 의식, 무예 등이며 기능종목은 공예와 음식 분야로 나뉜다.
중요 무형문화재 가운데 공예 분야 지정종목이 39개로 가장 많고 놀이와 의식 23개, 음악 17개, 연극 14개 등의 순이다. 보유자 수가 가장 많은 것 역시 공예 분야로 51명이다. 음악이 44명, 놀이와 의식 39명, 연극이 36명 등이다. 그러나 종목의 인기도를 반영하는 이수자 숫자는 음악이 542명으로 가장 많고 연극이 284명으로 두번째다. 하지만 지정 종목과 보유자 숫자가 가장 많은 공예부문은 겨우 129명에 머무르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무형문화재도 많다. 중요 무형문화재 83호로 지정된 향제줄풍류는 그 지방에서 독특하게 전승돼 온 현악기 중심의 실내 연주로 구례향제줄풍류와 이리향제줄풍류 등이 있다.
40호 학연화대합설무는 두사람이 전신에 학탈을 쓰고 추는 춤으로 흔히 학춤이라고 불린다. 18호 동래야류와 43호 수영야류는 정월 대보름날 행하는 들놀이로 부산 동래와 수영지역에 전승돼 온 놀이형식이다. 81호 진도다시래기는 연극성이 짙은 장례 풍속의 일종으로 마을에 초상이 나면 상여꾼들이 상제를 위로하기 위해 벌이는 상여놀이. 28호 나주 샛골나이는 무명짜기, 32호 곡성 돌실나이는 삼베짜기를 말한다. 31호 낙죽장은 인두로 대나무 껍질을 지져 무늬를 새기는 기능보유자, 88호 바디장은 베틀 부품의 하나인 바디 제작 기능보유자이다.
공예분야의 중요 무형문화재는 날이 갈수록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으로 뚜렷이 갈리고 있다. 상품화나 대량생산이 어려운 것은 비인기 종목으로 전락해 전승 지원자들이 별로 없다. 무명 삼베 명주 등을 짜거나 망건 탕건 갓 등을 만드는 데는 많은 품과 재료비가 들지만 대량생산이 어렵고 판로도 막혀 있다. 반면 사기그릇이나 나전칠기 등은 날로 인기를 얻고 있고 장식용 가구와 놋그릇, 단청 등은 아직도 수요가 있다. 일부 공예품은 싸구려 중국산에 밀려 판로가 거의 막혀 버렸다. 수십명이 동원되는 농악 등 단체종목 역시 전승이 어려운 실정이다. 문화재 관리국의 한 관계자는 『지원금을 몇푼 받아 봤자 연습할 때 밥값도 안된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판소리와 춤 경기민요 승무 등은 지원자가 많은 편이다. 판소리나 민요, 가야금산조·병창 등의 분야에서는 많은 「인기인」이 배출됐다. 이들은 방송이나 밤무대 출연 등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가야금·거문고 산조와 승무, 살풀이 등은 대학에 교과목이 개설돼 있어 앞으로도 꾸준한 인기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조재우 기자>조재우>
◎전 무형문화재과장 홍순영씨/“나이제한 관행이 고령화 초래”
『문화예술의 발전은 전통이라는 뿌리가 없으면 곧 한계에 부닥치게 마련입니다. 전통문화는 이 시대의 문화를 풍요롭게 해주는 밑거름이죠』
홍순영(57)씨. 문화재관리국 무형문화재 과장으로 재직하다 지난해 말 정년 퇴직, 「서울예술단」 상임이사가 된 그는 『전통과 동떨어진 새로운 문화예술의 창작은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68년 부산대 법대를 졸업한 뒤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32년간 문화관련 부처에서 일했다. 그중에서도 문화재관리국 근무 기간이 가장 길었다.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무형문화재 과장 때 그의 사무실 캐비닛 속에는 늘 검은 양복과 넥타이가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인간문화재의 부음을 받으면 곧장 달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기·예능보유자의 평균 연령이 68세를 넘을 정도로 고령자가 많습니다.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눈앞이 캄캄하죠. 영원히 사라져 버릴 가능성이 크거든요』
공직생활 마지막 해이던 지난 한해 동안 그는 특히 마음고생이 심했다. 가짜총통 국보지정 사건의 파문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중요 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지정을 둘러싸고 심의위원들이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는 등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무형문화재 지정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오해 소지가 많고 뒷말이 나게 마련』이라며 『그럴수록 심의과정이 투명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요 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 인정때 관행상 적용해 온 「나이 커트라인」도 끌어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정 심의를 맡은 문화재위원회 내부의 나이 기준은 50세 이상. 그러나 태껸 등 전통무예나 무용 수공예 등은 젊어서 보다 나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어 이런 관행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나이 규정으로 인간문화재의 고령화를 초래할 경우 원형보존은 가능할 지 모르나 전승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따라서 이러한 종목에서는 「유일한 기능보유자이면서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40대라도 과감히 보유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김성호 기자>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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