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째 이어온 가업/한켤레 제작에 보름 걸리기도/하루 다르게 주문 줄지만 가업 잇겠다는 두 아들이 대견오이씨 모양으로 조붓하고 갸름한 볼. 빨강 파랑색 비단 위에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수놓인 각종 꽃과 문양. 살짝 치켜 올라간 코를 정점으로 느릿느릿 흘러 내리는 선. 명절을 기다리는 아이의 설레임이 왈칵 묻어 날 듯한 우리 전통 꽃신의 얼굴이다.
5대째 가업을 이어 꽃신을 만들고 있는 국내 유일의 화장 황해봉(45·서울 송파구 가락동)씨. 증조부는 조선 왕조 최후의 왕실 갖바치였고 71년 중요 무형문화재 37호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꽃신과 함께 일생을 보냈다.
그는 꽃신 만들기를 할아버지로부터 이어 받았다. 『디자인 계통의 일을 하고 싶어』 68년 홍익공전 공예과에 입학한 그가 가업을 잇기로 결심한 것은 72년 제대 직후. 당시 64세인 아버지가 86세인 할아버지에게서 꽃신 만드는 법을 배우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머릿속이 환해지는 「깨달음」을 얻었다.
『처음으로 숙명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 아버지는 당시 자동차 정비일을 그만두고 갖바치의 아들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이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대학을 다닐 때부터 수시로 할아버지의 일을 거들었던 그는 할아버지의 침실이기도 했던 작업실에서 함께 지내며 하루종일 꽃신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고 고치는 일을 반복한 덕분에 현재의 내가 있게 됐다』고 회고한다.
『시집오고 난 뒤에야 꽃신 한 켤레를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손이 가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18년전 결혼할 때만 해도 바늘귀 하나 제대로 꿰지 못했다는 부인 김미정(38)씨도 이제는 「준화장」이 다 됐다. 황씨는 『꽃신을 만드는데는 내조가 절대적』이라고 강조했다. 풀쑤는 일부터 재봉질, 맞바느질, 완성된 신발을 말리기 위해 불에 쬐는 일 등 모든 공정이 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업실인 3평짜리 작은 방. 낡은 재봉틀과 비단조각,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대나무 방망이, 송곳 등에는 선조들의 땀내음이 배어 있다.
꽃신 한 켤레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2, 3일에서 보름까지 다양하다. 색깔이나 크기가 제각각이라 주문생산을 할 수 밖에 없다. 켤레당 가격은 10만∼50만원. 고객은 재력가나 고위관리 등 상류층 인사들에 한정돼 있다. 전두환 노태우씨의 자녀 결혼식과 손주 돌때도 그에게서 꽃신을 만들어 갔다. 그는 『한달에 10켤레만 만들어도 생활은 가능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주문량이 줄어 든다』고 말했다.
『81년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뜨시면서 화장이 중요 무형문화재에서 해제되고 말았어요. 5년뒤 저를 기능이수자로 인정해 주긴 했지만 화장이 다시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으면 좋겠어요. 정부의 지원을 바라는 욕심 때문만은 아니에요. 가업을 제대로 이어 나가려는 생각에서죠』
이제는 보람도 느끼고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자긍심이 대단하다. 『공정을 기계화해 곡선을 그대로 살린 꽃신을 대량생산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가끔 받지만 아무리 더디고 힘들더라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겠다는 게 그의 다짐이다.
황씨는 어린 나이인데도 서로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 두 아들이 대견스럽다고 말한다. 애초에는 큰아들(19)에게 가업을 물려 줄 생각이었으나 손재주가 더 나은 둘째 아들(17)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적어도 6대까지는 가업이 대물림될 수 있겠지만 그 이후는 알 수가 없습니다』<김성호 기자>김성호>
◎중요 무형문화재 지정과정/전문가 추천·신청통해 심사… 기·예능 보유자 동시 인정
문화재관리국은 관련전문가의 추천이나 시·도지사의 지정 신청, 본인의 요청이 접수되면 중요 무형문화재 지정을 검토한다. 또 전국 민속경연대회, 전승공예대전 등의 수상자도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심사대상에 오른다.
문화재관리국은 우선 문화재위원회가 해당 종목을 조사하기로 결정하면 조사자 2, 3명을 현장에 보내 자료를 모으고 실태를 조사한다. 조사자들은 현장 방문 결과를 조사보고서에 담아 문화재위원회에 보고하고 문화재위원들은 이를 토대로 지정 여부를 심의한다.
보고서에는 무형문화재의 명칭 유래 내용과 후보의 이력 등이 포함된다. 관련사진과 기록물도 첨부된다. 문화재위원은 조사요원이 될 수 없다. 조사요원과 심사요원이 같을 경우 로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종목은 조사에 2년이 걸리기도 한다. 완제품 뿐만 아니라 제조과정 전체를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재 관리국이 새로 지정을 검토하고 있는 염색장의 경우가 좋은 예다. 풀을 재배해 염료를 채취하는 과정을 일일이 관찰하려면 해를 넘기기 십상이다. 또 적절한 시기를 놓쳐도 해를 넘겨야 한다.
문화재관리국은 보고서를 검토, 문화재가 역사·학술·예술적 가치가 있고 향토색이 현저해 보존할 만하다고 판단하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한다. 판단이 어려우면 심의대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거친 뒤 문화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중요무형문화재를 지정할 때는 기·예능 보유자를 동시에 인정한다.
일각에서는 문화재관리국이 적극적으로 무형문화재를 찾아 나서 지정을 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문화재관리국은 오히려 로비 등 각종 의혹을 살 수 있어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조재우 기자>조재우>
◎지정 및 사후관리의 허점/무형문화재 끝없는 구설수/위원들 줄타기식 임명/전공과 다른 종목 심사/전수 실적보고서 형식적/가치 상실해도 해제 불가능
중요 무형문화재 지정과 사후관리에 허점이 많아 이를 보완하거나 개선해야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중요 무형문화재 지정이 공정하게 이뤄지려면 문화재위원회의 조직과 운영이 투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그렇지 못해 중요 무형문화재 지정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중요 무형문화재 사기장(105호) 지정을 위한 조사과정에서 문화재 전문위원들이 후보자에게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사표를 내는 등 물의를 빚은 것이 단적인 예다.
제대로 자격을 갖추지 않은 문화재 위원들이 문화재관리국장의 독단에 의해, 또는 외부 권력층의 연줄을 타고 임명된 예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태 한양대 박물관연구부장은 『각계인사로 자격심사기구를 구성해 문화재 위원과 전문위원 후보를 심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무용이나 국악을 전공하는 사람이 자신의 전공이 아닌 공예기술을 심사하는 것 등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발굴조사사업단 정재훈 단장은 『현재 9명인 무형문화재 분과위원회 위원의 수를 늘려 좀더 많은 전문가들이 심사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에 대한 사후관리, 후보와 조교 등의 지정 과정에도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지적된다. 한번 중요 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로 인정되면 죽는날까지 해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작품 제작을 게을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당국이 실태조사를 통해 기·예능 보유자로서의 가치를 상실했거나 품위를 손상했다고 판단하면 인정을 해제하거나 경고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기·예능 보유자들이 제출한 전수교육 실적보고서가 형식적인 경우도 흔하다. 보유자들이 글눈이 어두워 전수자들이 대신 쓰거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쓰는 경우도 있다. 일년에 한차례씩 중요 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 작품전을 실시하고 있으나 형식에 머무르고 있어 전승공예대전에 출품된 작품보다 못한 것도 있다.
문화재관리국 무형문화재과 류위근 사무관은 『유형문화재는 지정했다가도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쉽사리 해제할 수 있지만 무형문화재 지정을 해제하기는 인간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실토했다.
또 기·예능 보유자들이 다른 생업이 있는 자녀나 일가친척 등을 보유자 후보나 조교·보조자로 선정하거나 아예 다른 사람의 이름만 빌려 지원금을 받아 쓰는 예까지 있어 진정한 전수교육이 어렵다는 점도 거론된다.
이와함께 기·예능 보유자와 보유자단체가 이수증을 교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두고도 시비가 일고 있다. 일부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들은 전승생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이수증을 발급한다는 의혹까지 낳고 있다. 이와 관련, 문화재 관리국이 전문가들과 합동으로 심의한 후 이수증을 교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울대 법대 최종고 교수는 『문화재보호법에 전수교육 보조자의 해제에 관한 조항이 없다』며 『보유자와 후보·조교와의 개인적인 불화 등을 이유로 한 해제 요청이 늘어 나고 있는데도 해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인기·비인기 종목을 가리지 않고 균등한 전승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차등 지급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정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서울대 음대 오용록 교수는 『판소리나 산조 같은 분야의 예능보유자가 자신의 예능을 이용해 경제적 부를 얻을 때는 종목 지정과 보유자 인정은 불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현재 인정된 보유자에 한해 한시적으로 그 상황을 유지하되 보유자가 사망할 경우 후속 보유자 인정은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조재우 기자>조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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