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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원죄성도 죄가 됩니까…”/오늘 검찰 소환 장정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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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원죄성도 죄가 됩니까…”/오늘 검찰 소환 장정일 인터뷰

입력
1997.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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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창작단계상 나올 수 밖에 없는 소설/‘포르노’라는 비난은 내용만 읽고 형식은 안읽은데서 비롯장편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격렬한 음란 시비를 불러일으킨 작가 장정일(35)씨가 6일 상오 10시 서울지검에 소환돼 이 작품의 음란성 여부에 대한 조사를 받게 된다. 그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는 문단은 물론 문화계 전반에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장씨는 구랍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귀국했다. 그는 유학 간 부인과 함께 95년말 이후 프랑스에서 지냈다. 귀국후 대구 집에서 머물고 있는 장씨에게서 「내게…」가 일으킨 파문과 사법적 제재에 대한 그의 입장, 스스로의 소설에 대한 생각 등을 들어보았다.

■귀국한 후 어떻게 지냈나

파리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비행기가 연착해 도착이 다소 늦어졌다. 모 방송국이 내가 도착하는 모습을 거의 생중계하듯이 하는 통에 당황했다. 서울에서는 출판사 주간 하는 친구를 만난 뒤 2일 상오 대구로 왔다. 집에는 어머니(59)와 형 두 분이 계신다. 책을 읽고 지내고 있다.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데 느낌이 어떤가

오라 그러면 가야 되는 것 아니냐. 가서 내가 할 말과 할 바를 하겠다. 변호사나 증인은 신청하지 않을 생각이다. 할 말이란 내 소설이 음란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 자신 이상으로 자신을 잘 변호하고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아닌가. 검찰 조사를 받는다니, 내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나 생각해보게 됐다. 중세도 아니고…. 내가 알기로는 이런 시비는 이제 회교권에서만 남아있다. 세계적 작가로 공인받는 샐먼 루시디에게 호메이니가 사형 선고를 내려 쫓기는 신세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에는 파키스탄에서 한 여작가가 근본적 페미니즘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내게…」는 당신의 작가적 역량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에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포르노라는 비난이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라. 간행물윤리위원회의 교수님이나, 문학을 전혀 모르는 내 평범한 회사원 친구도 『이건 포르노』라고 단정했다. 고급한 독자나 평범한 독자나 하는 말이 똑 같다. 『뭘 말하려는 지는 알겠는데 왜 이렇게 쓰느냐』는 것이다. 내 생각에 이들은 소설의 내용만 읽고 형식은 안 읽은 것이다. 소설에서 제일 맛있는 부분은 형식이다. 소설에는 47가지로 분류되는 형식이 있다는데 이를 무시한다면 소설가들은 소설을 쓸 필요가 없다. 내 소설의 형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는 데 작가로서 절망했다. 아직 우리는 그 정도밖에 안되는 것이다.

「내게…」는 당초부터 작정하고 썼던 작품은 아니다. 진시황이 장남에 의한 권력 찬탈을 두려워해 아들을 변방으로 유폐시켜 버린 고사에서 모티브를 따 쓰려고 하는 소설 「중국에서 온 편지」(가제)라는 작품의 전 단계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소설이다. 아버지라는 권위에 대한 부정, 이 주제를 내 소설의 창작단계상 반드시 다룰 수 밖에 없었다.

■평자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내게…」는 포르노라는 많은 독자들의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형식에 대한 욕망 즉 내 씨를 뿌리겠다는 욕망과 돈 벌어 차도 사고 하겠다는 노동에 대한 욕망, 이 두가지 욕망으로 들끓는게 나는 너무 싫다.

아무 것도 안하고 살고 싶어하는 욕망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내게…」에 등장하는 매저키스트는 그 꿈이 낙착되는 인물을 그린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아버지 신드롬이 일고 있다는데 그 신드롬과 내 소설의 주제는 양 극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꼭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가부장제도와 자본주의에서 시달려 어느 날 직장과 가정을 버리고 사라져버리는 「지피족」이 되어버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한편 「내게…」의 주인공처럼 매저키스트로나 살겠다는 양 극단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문학작품의 사법적 제재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한마디로 너무 유치하다. 문학이라는 것이 사회적 통념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문학의 원죄성이다. 국민교육헌장도 아니고 법전도 아닌데 사회적 통념과 어떻게 꼭 들어맞을 수가 있는가. 「내게…」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도 하는데 한 나라의 문화라는 것이 성인의 세계로 표현되는 것이 성숙한 모습이지, 어린이 키에 맞추어서 재단하는 것이 온당한 것이냐.

그것은 문화적 자폭이다. 내가 청소년작가가 아닌 다음에야 그걸 나한테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청소년은 청소년이 읽어야 할 소설이 따로 있다. 그렇지 않다면 술 담배도 청소년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폐기될 수 있겠는가. 또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과연 그럴만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가. 성인들이 자식들에 대한 권위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은 청소년 과보호사회가 되는 것이다. 언행이 어긋나고 권위가 없으니 말이다. 해외 섹스관광이니 뭐니 해서 별 짓 다하면서.

■일부 독자들은 「내게…」가 일본 포르노 소설을 표절한 것이라는 주장도 하던데

나는 일본만화나 포르노 소설은 보지 못했다. 다만 90년대 초에 참고로 모아놓은 관련소설 등 서적이 10여권 있다. 이런 소설들에도 「내게…」처럼 여고생이 등장한다. 이 소설들의 일관된 내용은 남자가 여자를 성적으로 공격한다는 점이다. 군사용어를 써 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 소설은 다르다.

■외설 시비를 겪는 작가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실세계에서는 모형과 질서가 있다. 이것을 잘 따라가기만 하면 성공한다. 그러나 예술세계에서는 모범이라는 것이 없다. 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나 카프카가 모범이 될 수도 있지만, 예술가는 자기 모범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예술이 어려운 것이다. 예술가는 간이 크지 못하면 자기 세계 구축을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은 일에도 쉽게 무너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부 독자들에게는 내 소설이 이해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물론 했다. 출판금지 정도도 예상했다. 그러나 출판사 관계자와 작가의 인신구속은 생각지 못했었다.<하종오 기자>

□사건일지

96.10 「내게 거짓말을 해봐」 출간(김영사간)

10.29 김영사, 논란 일자 작품 회수·파기

10.31 간행물윤리위원회, 전체심의위 회의 열어 문체부에 제재 건의. 김영사, 광고 통해 음란성 인정하고 판매된 책 환불의사 표명

11.2 검찰, 작가 사법처리방침 표명

11.3 젊은 소설가들, 장씨 사법처리를 반대하는 「장정일 사태에 대한 우리의 견해」 채택

11.13 검찰, 김영사 김영범 상무 음란문서 제조 및 판매 혐의로 구속영장 청구. 문체부, 간행물윤리위 결정 따라 관할 서울 종로구청에 제재 건의

11.19 문인들 205명 사법처리 반대 집단 성명 발표

12.30 김영범 상무 벌금 750만원 선고

12.31 장씨 귀국

97.1.6 장씨 검찰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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