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처음나와 89년 절판된 책/이백·두보 시 추가 수록/전면 가로쓰기 편집 새 단장/세월은 흘렀지만 감동은 여전「둘이서 마시노라니/ 산에는 꽃이 벌고/ 한 잔 한 잔 기울이면/ 끝없는 한잔/ 취했으니 자려네/ 자넨 갔다가/ 내일 아침 맘 내키면/ 거문고 안고 오게나」
이원섭(73)옹은 이백의 칠언절구 「산중여유인대작」을 이렇게 옮겼다. 「양인대작산화개 일배일배부일배 아취욕면경차거 명조유의포금래」라는 원 시어가 무색할 정도의 고아한 우리 말로.
이옹이 65년 이렇게 한 편 한 편을 마치 우리 서정시처럼 역해했던 「당시」(현암사간)의 개정판이 31년만에 나왔다. 95년 이동주 선생의 「우리나라의 옛 그림」(학고재간)의 증보보급판이 20년만에 나온 것을 기억하지만, 「당시」의 개정판 발행은 그야말로 노시인의 퇴색하지 않은 정열을 느끼게 한다.
당초 「당시」가 나온 것은 65년 9월. 이후 89년 3월까지 28쇄를 거듭하던 이 책은 그만 절판되고 말았었다.
개정판으로만 되어있지만 이번 「당시」는 정확히 말하면 개정증보판이다. 증보판인 이유는 이백의 장시 「촉도난」 등 4편, 두보의 「한별」 등 9수가 추가 수록됐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기존 세로쓰기 편집이 전면 가로쓰기 편집으로 바뀐 것이다. 당초 역문에 노출됐던 한자는 모두 한글의 뒤에 괄호 속으로 들어갔다. 초판에서 이옹이 시인별·작품군별로 붙였던 제목도 모두 우리말로 바꾸었다. 이백 편의 제목이 그의 호를 딴 「청련집」이던 것을 「달에 묻노니」로 바꾼 식이다.
그러나 이옹은 이외 원시의 기존 번역과 주해 내용은 전혀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책은 더욱 빛을 발한다. 이옹의 「당시」야말로 우리에게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1,200∼1,300년 전의 한시들을, 그 시간적 간극은 물론 초판이 나온 후의 31년이라는 시간차도 훌쩍 뛰어 넘어 바로 지금의 우리 가슴에 와 닿게 하기 때문이다. 이옹은 그렇게 원시를 축자역 하지 않고 그 운율과 뜻, 향기를 최대한 살리면서 우아하고도 유려한 우리 말로 옮겨 놓았다. 시인별로 덧붙인 해설도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작품처럼 깊이와 맛이 있다.
이옹은 시인이자 불교학자로 시집 「향미사」와 「현대인의 불교」 등 저서를 냈으며 현대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원시의 의역에 치우쳐 창작처럼 된 면도 없지 않은 바, 그 공과 여부는 앞으로도 내가 걸머질 부담으로 남을 것』이라며 『그렇기는 해도 (30년 전 나 자신의) 그 정열만은 부럽다. 저 휘황하고도 찬란한 당시를 우리말로 재현해 보려고 달려들었던 용기, 젊었기에 가질 수 있었는지도 모르는 치기 어린 그 정열만은 부럽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보들레르 이상으로 귀기서린 이하, 하이네같이 달콤한 애정시를 쓴 이상은」을 읽으면, 당시의 장관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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