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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선우중호 서울대 총장(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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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선우중호 서울대 총장(아침을 열며)

입력
1997.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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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나는 뜻밖에 한 여고생으로부터 연하장을 받았다. 좋은 종이는 아니었지만 정성껏 그린 카드에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었다.<…아무리 험한 세상을 살아도, 어떤 힘든 세상을 살아도 항상 꿈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이 학생은 그동안 내가 후원자가 되어 있는 서울 시내 어느 복지시설에 있는 여학생으로 이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기가 되어 머지않아 그간 정들었던 곳을 떠나 자립해야 한다고 했다. 이 카드를 받고 그동안 너무 무관심하였던 나 자신을 책망하면서 학교 보직교수들과 함께 어린이 복지시설을 방문하였다.

가는 동안에는 우리 경제가 향상되었다고는 해도 사회의 관심이 아직 이러한 복지시설에까지 충분하게 미치지 못하였으리라는 생각에, 그곳에 대한 다소 불안하고 걱정스런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막상 도착하고 보니 그러한 근심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지원으로 지었다는 자그마한 건물에는 30평형 아파트가 여러 채 있었고, 한 세대마다 8, 9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거실에는 피아노와 TV가 갖추어져 있었고 식당과 주방은 매우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 여느 중류가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휴식공간이나 복도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가득했으며 그늘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오히려 그러한 생각을 가졌던 우리가 쑥스러웠다.

나는 카드를 보내준 여학생이 궁금하여 그 학생의 아파트를 찾았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그 학생을 보면서 여지껏 이렇게 건강하고 밝게 키워준 모든 분들과 우리 사회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졸업 후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떨구고 얼굴이 수심에 잠기는 것을 볼 때, 그때야 비로소 희망을 잃지 않게 해달라는 카드의 문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자기를 어떻게 받아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곳 원장으로부터 『이들의 제일 큰 소원이 어느 가정에라도 입적이 되어 과거를 없애버리는 것』이라고 들었을 때 그들의 절실한 바람이 귀에 찡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왜 우리 사회는 이들과 더불어 사는데 인색할까 하는 의문만이 계속 머리에서 맴돌았다.

우리 경제는 이제 세계 10위권에 진입한다고 하며 작년에는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뜻한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수치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전반적 의식수준이 향상될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의식 중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지혜를 쌓는 일이다. 이웃이라 함은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 될 것이며, 넓게는 인류 전체를 뜻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주변 큰 나라 틈에서도 5,000년 동안 동질성을 유지해 왔지만, 그로 인해 우리 이외의 민족에 대해서는 상당히 배타적이 되었다. 이러한 배타적인 분위기는 우리 민족 사이에서도 적용되어 자신과 다른 점이 있는 사회구성원에 대해서는 경계심과 배타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것같다. 이제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 하루 속히 이러한 분위기나 태도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타민족이나 국가들로부터도 같은 대접을 받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번에 만난 여학생같은 이들이 마음 놓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할 것이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같이 서로 격려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할 때 우리는 진정 선진국 대열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올해는 소의 해이다. 묵묵히 자신과 남을 동시에 위하며 살아가는 소처럼 남을 위해, 또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때 사회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다 같이 새해에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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