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나는 미국 땅 피츠버그라는 곳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오랜만에 옛스승 장 발 선생을 만났다. 올해 96세라고는 하나 건장한 모습에 놀랐고 방안 가득 걸려 있는 그림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악수를 하는데 그 손의 무게가 내 친구들과 별로 다를게 없었다.거실에는 소파가 있고 그 뒤에 구곡병풍이 있는데 노수현 허백련 장우성 김충현 등 당대 명장과 명필이 고루 다 있었다. 그리로 안내하면서 『손재형, 이 글씨 특별히 좋은 것이에요』라고 말했다. 그 확고함이 옛날과 하나도 다름이 없었다. 그러면서 소정(손재형)의 한문 글씨를 줄줄이 읽어 내려가는데, 그 뒷모습이 한 편의 서사시를 연상케 했다.
1901년에 태어나 20세기를 100년 가까이 산 분이다. 화가요, 교육자요, 신심 깊은 종교인이요, 고급 지성인인 그가 뜻하지 않게 5·16정변을 만나 하루 아침에 모든 뜻을 잃고 말았다. 그리하여 고국을 떠나 망명이나 다를 바 없는 40년 세월을 거치는 동안 큰 고독이 온 몸에 배어있는 듯 싶었다.
말씀드릴 것도 많았고 듣고 싶은 말씀도 많았지만 그 분의 귀가 어두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가끔 장수노인들을 보긴 했지만 백수노경을 접하는 것은 특별한 느낌이었다.
선생이 평생을 걸고 해온 일이 무엇인가 새삼스럽게 분명히 보였다. 그는 그림에의 열정과 신앙이 한 덩어리가 되어 오직 그일에만 흐트러짐 없이 정진하는 것 같았다. 방안 가득한 그림들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모든 그림들은 조선의 순교자상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순교자 골롬바와 아네스 자매상이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선생이 젊었을 적 한번 그린 바 있다. 지금은 절두산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생을 마감하는 노경에 또한번 그린 것이다. 두 자매는 나란히 꽃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작은 십자가를 들고서, 멀리 안개 속으로 누각이 아슴프레 그려져 있었다. 옥색과 분홍색의 치마저고리는 더 없이 청순해 보였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서울에 온지 여러날이 되었지만 왠지 그 그림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순교자상은 어쩌면 장 발선생 자신의 초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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