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민요가 없는 20세기 후반의 한국사회를 가정해본다. 정말 숨막힐듯한 어두운 시대요 진저리나는 고뇌의 세월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민초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으면서도 경쾌하기 그지없는 경기민요는 전쟁의 폐허와 정치적 압제와 사회적 갈등에 만신창이가 되어가던 우리의 심신을 따뜻하게 감싸고 보듬어 오던 우리 모두의 정서적 위안처이자 삶의 의욕을 지탱해주던 상큼한 청량제이었음에 분명하다.이처럼 음악이되 음악이상의 막중한 시대적 소임을 감당해오던 경기민요를, 그 모진 풍상속에서도 이제껏 십년을 하루같이 물주고 북돋우며 정성껏 가꾸어온 주인공이 곧 다름아닌 3일 타계한 안비취 선생이시다. 사회적 무관심과 냉대속에서 어느 한 분야의 예술을 꽃피워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게 아닌데, 안선생은 능히 그것을 해내셨다. 소리도 소리려니와 그분 특유의 뚝심과 집념과 폭넓은 인간관계가 아니었다면 어림 없는 일이었다. 확실히 안선생은 소리꾼이되 소리꾼 이상의 탁월한 문화안목과 예술가적 소신을 가지셨던 분이다. 바로 그같은 남다른 저력과 비전이야말로 경기민요를 오늘과 같은 괄목할만한 발전의 전기까지 끌어올린 모태이자 원동력이었음이 분명하다.
우울한 시대에 남을 즐겁게 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보람된 일이며, 좌절과 절망의 계절에 흥겹고 멋스런 가락들로 착한 이웃들에게 밝은 희망을 일깨웠다는 일 또한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이제 고인이 되신 안선생은 평생을 이처럼 고운 음색 정스런 가락들로 우리의 슬픔을 대변하고 우리의 아픔을 공유하며 봉사의 한평생을 살아오셨다.
그러기에 이승에서의 그분의 일생이란 그 누구보다도 보람되고 행복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후하고 인자한 안선생의 인품과 아취있는 노래를 다시 접할 수 없음은 만인의 슬픔이겠으나, 생자의 숙명을 반추하면서 아쉽고 쓰린 마음은 이제 그분의 유음으로나마 달랠 수 밖에 없겠다. 안비취 선생의 유계에서의 명복을 축수한다.<한명희 서울시립대 음악과 교수>한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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