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이 되었다. 연초에는 으레 새 각오를 하지만, 그리고 연말이 되면 그 중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실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마련이지만 이번 연초의 각오에는 일종의 초조감이 담겨 있다. 세기가 바뀌고 밀레니엄이 바뀌는 시점이 다가오는 데 대한 세계적인 공통의 흥분감 때문만은 아니다.이제는 변화가 피부로 느껴지고 있는데도 변화에 대한 우리의 움직임은 아직도 굼뜨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언제 문화에 대한 얘기를 변변히 해 보았던가? 최근에 「문화」란 단어만이라도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은 바로 무언가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은 외모로 보여지는 것에 비해 열악하기 짝이 없다. 거의 맹목적이라고 할 교육열이 얼마나 효율적인 문화교육에 이바지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저 가슴이 답답할 따름이다.
적어도 97년말까지 경제가 회복되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나마 입에라도 오르내렸던 「문화」라는 말이 쑥 들어가 버릴까 걱정이다. 오히려 행사적, 구호적 빈껍데기 재래식 선진문화가 여전히 판을 칠지도 모를 일이다. 경제란 바로 밥통(위장)의 해결이라는 직설적 사고방식이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 「정신의 밥」이 마찬가지로 존재한다는 인식이 없는 채로 경제가 어려우면 문화는 일단 뒷전으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이 영양부족이 되면 미쳐버리게 되는 간단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더구나 우리는 미쳐 있다가 회복되고 있지 않은가?
국민들, 시민들이 스스로의 건강을 챙겨야 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행복일진대 우리는 행복하기 위하여 건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건강하기 위해선 배를 채우는 것과 병행해서 정신의 양식을 계속 섭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경제가 어려울 거라고 말들하는 97년에는 정말 문화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조성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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