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연휴 TV는 요란했다. 프로그램마다 특집이나 특선, 특별기획이라는 이름을 달고 1∼2시간씩 방송됐다. 하지만 올해 신년특집들 역시 특집답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한 두 번 본 영화, 그 얼굴이 그 얼굴인데다 출연자만 즐거운 쇼, 무성의하게 제작된 드라마로 이어졌다. 시간 때우기식 나열보다 「하나를 만들어도, 제대로 만드는」 성실한 제작풍토가 아쉬운 한 해의 시작이다.○무성의한 제작의 가벼움
▷드라마◁
변화없는 반복은 지루하다. 더구나 그 반복이 불성실함에서 나온 것이라면, 지루함은 불쾌함으로 이어진다. 반면 작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노력에서 믿음은 시작된다.
KBS와 SBS가 선보인 신년특집극 「댁의 딸 우리 아들」(극본 양근승·연출 최길규, 김영진)과 「불타는 노을」(극본 서복숙·연출 허웅)은 이처럼 평범한 사실을 각각 새삼스럽게 확인해주었다.
「댁의 딸…」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바람은 불어도」 「사랑할때까지」 등을 옮겨놓은 듯한 인물설정과 상황전개가 그렇다. 소재로 삼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좌충우돌식 갈등도 흔히 다루어온 에피소드.
신년초부터 시작된 「재탕드라마」는 신드라마 왕국 KBS의 턱없는 자신감에서 나온 불성실함 때문이 아닐까. KBS는 구랍 24일에야 캐스팅을 확정하고, 편집기간을 빼놓고 단 4∼5일 만에 50분짜리 2부작을 촬영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반면 「불타는 노을」은 가족이야말로 험난한 세상의 강을 함께 건너는 든든한 동반자임을 잔잔하게 되새겨 주었다.
못배우고, 못나고 자식들에게 해준 것도 없어 괜히 미안한 부모,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서로를 돌아볼 여유도 없는 자식들. 임종을 앞둔 아버지 앞에서 이들은 고단한 삶 때문에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고, 서운해 한다. 자식들은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부랴부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지만, 결국 미움을 한꺼풀 벗겨내자 사랑이 숨어있음을 발견한다. 무겁고 진부한 주제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성실함 밖에 없다는 것을 SBS 제작진은 알았다.<박천호 기자>박천호>
○이미 본 작품들 재탕
▷영화◁
신년 영화 편성의 주제어는 「반복」이었다.
시청률 경쟁을 의식한 듯 각 방송국에선 신년 영화 선정에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이미 흥행작으로 소문난 영화를 방영하거나 아예 이전에 특별 편성된 영화들을 다시 한번 틀어주는 식의 실망스런 결과였다. 게다가 케이블 프로그램과 겹치는 것까지 있어 연휴 중 영화보는 재미에 빠져 들려고 작정했던 시청자들을 실망시켰다.
「최후의 탈옥 샹떼」(1일, MBC) 「빅」(1일, SBS) 「미세스 다웃 파이어」(2일, MBC)는 이미 한번 이상 방영됐던 영화들. 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2일, KBS)은 구랍 31일 영화전문 케이블채널인 DCN에서 이미 방영했던 것. DCN 역시 성의 없는 편성이기는 마찬가지여서 1, 2일 이틀간 「모래시계」를 다시 재방영하는 「용기있는 결정」을 내렸다. 세번째 방영이다.
양념처럼 빠지지 않는 홍콩영화의 경우 「청사」 「동성서취」 「강시 가족」 등 전형적 스타일의 영화들이 편성됐다. 아쉬운 점은 괴기, 무협이 아닌 요즘 감독들의 새로운 경향의 작품들은 만나기 어려웠다는 사실.
예전 「명화극장」이나 「주말의 명화」처럼 극장에서 개봉되지는 않았으나 작품성있는 명작들, 미국 홍콩 뿐 아닌 다양한 나라의 수준작들을 기대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지나친 욕심일까.<박은주 기자>박은주>
○또 그 얼굴… 늘하는 농담
▷쇼◁
텔레비전을 즐겨보는 시청자들에게 연휴는 재미없다. 특별 편성이라고 선전은 요란한데, 특별히 「재미없는」 프로그램들만 오히려 더 늘어났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쇼편성도 그렇다. 홍서범-조갑경, 나한일-유혜영 부부가 출연한 「잉꼬부부 재치부부」(1일, SBS), 전유성-진미령, 김동현-혜은이 부부 등이 출연한 「97 돈이 보인다」(2일, MBC) 등은 부부 동반 예능 프로그램의 전형적 포맷. 그 얼굴이 그 얼굴인데다 뭔가 진솔한 얘기보다는 늘 하는 농담이 뻔하다.
외국인 장기 대회도 단골 메뉴. 외국인이 우리나라 대중 가요나 창을 부르는 것 자체를 보여주는 「학예회」식의 이런 포맷은 70, 80년대 식이다. 차라리 한국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가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의미있다는 지적이다.
가족들이 함께 볼만한 격조높은 쇼 프로그램이 전무하다는 점도 신년특집 편성의 한 흠이다. 기존의 인기가요를 어설프게 코믹화해 부르는 「폭소 가요제」는 차라리 애교스럽다. 「퀴즈 텔레파시」(2일, KBS2)에서는 복서나 안내원 아가씨들을 상대로 「토사구팽」같은 어려운 한자 성어를 묻고는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을 보고 즐기는 일종의 지적 횡포까지 부렸다.
그나마 「품위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편성한 프로그램들, 「신년 수퍼 콘서트」(1일, KBS) 「빈 필하모닉 음악회」(2일, KBS) 「스팅 내한공연」(2일, SBS) 등은 자정 이후에나 편성돼 있어 형식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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