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처럼 삽시다”/꾀부리지말고 순박하고 우직하게…/전국 최고 고등우사육 한평생/6·25때 소년가장… 누렁이와 함께 황무지 개간/한우경진대회서 30여차례 수상·대통령 표창도/“남은 인생도 한우품종개량에 바치겠다”『소는 짐승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충북 청원군 오창면 탑리에는 소가 많다. 전국 최고의 족보를 자랑하는 고등등록우 40마리중 24마리가 있는 이 곳에서 한우의 품종개량을 위해 평생을 바친 홍충의(60)씨는 「소 대통령」으로 통한다. 한우경진대회에서 30여 차례 수상했고 93년에는 축산진흥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표창까지 받은 그는 소처럼 순박하고 우직하게 살고 있다.
홍씨가 태어난 1937년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소의 해 정축년. 환갑을 맞은 그의 유년시절은 송아지처럼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홍씨는 아버지 성천씨가 한국전쟁당시 숨지자 13세 어린 나이로 동생 4명과 홀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소년가장이 됐다. 유산은 일소 한 마리가 전부였다. 그는 먼저 동네땅으로 나와 있는 40마지기의 황무지를 빚 얻어 샀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땅에서 한 자 깊이의 모래를 걷어내고 물을 끌어대 일구기 시작한지 5년만에 황무지는 옥답으로 변했다. 홍씨는 『모래가 풀뿌리에 엉켜 있어 누렁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이때 홍씨의 별명은 「똥도둑」이었다. 거름에 좋다는 인분을 구하려고 새벽 1시에 일어나 30리 떨어진 청주시내까지 달구지를 끌고 갔다. 허락없이 똥을 훔치다가 주인에게 똥바가지를 뒤집어쓰는 수모를 여러번 당했다.
79년 고향마을이 한우개량단지로 지정되자 홍씨는 본격적으로 한우의 품종개량에 나섰다. 처음엔 여느 농가처럼 정부가 지급하는 사료를 썼지만 암소들이 시름시름 앓고 새끼를 배지 못하자 산과 들을 누비며 풀을 뜯어 먹였다. 이후 불임소는 없어졌고 육질도 좋아졌다. 홍씨의 한우가 품평회에 나갈 때마다 우승을 차지하는 것은 축사에 짚이 아닌 톱밥을 깔고 매일 한 번씩 산책을 시키는 사육비결 덕분이지만 그보다는 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기 때문이었다. 홍씨는 『정성껏 키운 소를 팔고 나면 소울음소리가 귓전에 맴돌아 잠을 못 이룬다』고 말했다.
소처럼 우직하게 일한 덕분에 홍씨는 가족을 돌볼 수 있었다. 동생들은 건축업과 교직 등에 종사하고 있다. 2남 진웅(35)씨가 대만에서 유학할 때는 한 달에 1백만원을 대고 중국며느리를 맞을 수 있었던 것도 소덕분이다.
홍씨는 『정부에 아무리 양축가의 현실을 이야기해도 「쇠귀에 경읽기」라면 한우는 혈통보존도 힘들 것』이라면서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 육질에서 세계 최고인 한우, 우리 풍토에 잘 맞아 질병에도 강한 한우의 품종개량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홍씨는 『소가 미련하다지만 알고 보면 우직하고 정직하고 현명하다』고 말했다. 모두가 꾀만 부리지 말고 조금씩만 소처럼 미련해지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청주=박일근 기자>청주=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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