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사는 1월1일자부터 주 1회 새 기획 「한국의 30대그들은 어디에 서있나」를 연재합니다. 30대는 80년대 대학시절 권위주의체제에 맞서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던 모래시계세대입니다. 그들은 지금 사회 각 분야에서 성장과 진보의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군사문화와 민주주의를 모두 체험한 30대는 추진력과 창의성을 갖춘 독특한 세대이면서도 40대이후의 기성세대와 X세대로 대표되는 20대의 틈바구니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새 기획은 30대의 어제와 오늘을 집중조명함으로써 그들의 참 모습을 그려보일 것입니다. 「30대…」는 한국일보가 88년부터 91년까지 연재한 「신세대―그들은 누구인가」, 「신중년세대―그들의 빛과 그림자」에 이어지는 세대탐구시리즈입니다.◎자화상·타화상/패기·권위틈새 흔들리는 ‘낀세대’/부패 모르는 ‘사회중추’ 평가불구/“탈출구없는 세대” 좌절감도 팽배
30대가 그리고 있는 자화상과 다른 세대의 눈에 비친 30대의 모습은 닮은 꼴이 아니다. 밖에서 바라보는 30대가 화사함이라면 30대가 느끼는 그들의 모습은 초라함에 더 가깝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30대는 20대와 40대를 잇는 가교세대로 불린다. 20대의 젊음과 40대의 질서를 연결한다는 의미다. 사실 오늘의 30대만큼 이같은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내는 세대도 없다. 튀는 X세대(20대)와 권위주의에 익숙한 기성세대의 틈새에서 조화역을 무리없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30대가 70·80년대 권위주의시대에 성장했으면서도 민주화의 치열한 현장을 최일선에서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이같은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들은 탈출구가 없는 세대라고 생각하고 있다. 좋은 의미의 가교세대보다는 자유분방한 20대와 권위와 지시에 익숙한 40·50대의 사이에 낀 「틈새세대」 「낀 세대」라고 푸념하기 일쑤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X세대를 이해하기 힘든 만큼 적당히 비겁한 기성세대의 모습을 닮기에도 어색하다고 말한다.
중견의류업체인 (주)대현 기조실 조은경(34·여) 과장은 『학창시절에는 숨막히는 경쟁과 이데올로기의 좌절을 경험했고 직장에서는 위아래에 치이며 지쳐가고 있다』고 말한다. 모백화점 홍보실의 김모(38)과장은 『40대 상사가 내린 무리한 지시를 20대 부하직원에게 전달하지도 못한채 고민하다 내가 하고 마는 적이 있다』며 틈새세대라는 말에 동의했다. 그는 『상사로부터 「부하직원 관리도 제대로 못하느냐」는 말을 들을 때나, 「윗사람 눈치만 본다」는 후배의 눈초리를 느낄 때, 「당신은 일 밖에 모르느냐」는 아내의 불만을 들을 때는 정말 괴롭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흥국생명의 박동식(35) 영업소장도 『부하직원과는 잔도 없이 밀러맥주를 마시며 아는 체 하고 상사와의 술자리에서는 「역시 소주가 최곱니다」며 비위를 맞추기에 바쁜 것이 내 모습』이라며 『어디에서건 내 목소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25평 남짓한 아파트 한 칸, 소형차, 대리·과장, 휴가철의 해외여행, 한 달에 두세번의 외식…. 얼핏 살펴본 30대의 주변은 40대의 10년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넉넉해진 것같다. 하지만 한풀만 벗겨보면 주름살 투성이다. 20대가 풍요 속에 자라 풍요를 만끽하고 40대가 경제성장의 기득권에 탐닉한다면 30대는 상대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30대 남성의 평균저축액은 1,640여만원. 이들이 지고 있는 빚은 2,817만여원. 적자인생에다 1년치 수입 역시 1,800만원이 채 못된다. 소형아파트에 불과한 주택보유율도 48%로 절반을 밑돈다.
일한 만큼 벌지 못하면서 스트레스는 많다. 지난 해 한 주간지의 설문조사에서 30대 샐러리맨은 36%나 「직장생활 때문에 부부의 성생활에 지장이 있다」고 답변했다. 20대(29%)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40대(34.7%)보다도 높다. 이혼하는 두 쌍의 부부중 한 쌍이 30대일 정도로 가정생활도 다른 세대에 비해 불안정하다.
30대는 이렇듯 자신들에게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매긴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는 『초등학교의 3부제수업, 입시경쟁, 졸업정원제, 3공에서 5공에 이르는 독재정권 하에서 학창시절을 겪은 30대는 치열한 경쟁과 민주화투쟁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한 세대』라고 성장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베이비 붐의 마지막 세대인 30대는 이같은 배경 덕분에 우리 사회의 튼튼한 「주역」이기에 모자람이 없는 연령층』이라고 강조했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미디어리서치의 안부근(53) 전무도 『이미지에 좌우되는 20대의 즉흥성과 선입견에 매이기 쉬운 40, 50대에 비해 오늘의 30대는 가치관과 행동양식에서 매우 건전하다』고 말했다. 30대와 호흡하는 기성세대의 평가도 이를 뒷받침한다. 삼성데이터시스템 남궁석(58) 사장은 『30대는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크고 성취욕도 강한 기업현장의 허리』라며 『만약 20대 30대 40대의 부하직원중 회사의 주요업무를 맡긴다면 주저없이 30대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도 30대인 아리수미디어 이건범(33) 대표는 『뭐니뭐니 해도 30대는 부패, 방종, 맹목으로부터 자유로운 가장 건강한 세대』라며 『창의력과 기업경영능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컴퓨터업계에서 조직관리능력이 부족한 20대와 창의력이 없는 40, 50대가 사라지고 30대가 활개를 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이동국 기자>이동국>
◎통계로 본 30대/총인구의 18.8% 최대/전문대졸 이상이 1/3/이혼율 25% 최고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30대는 95년말 기준으로 846만여명. 총인구의 18.77%로 연령대별로 볼 때 가장 규모가 큰 집단이다. 이들중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숫자는 총경제활동인구의 29.77%인 619만명이다. 실업자는 불과 8만여명. 610만여명이 일자리를 갖고 있다. 남자는 절대다수(97%)가 돈을 벌고 있고 여자의 경우 전업주부(182만명)와 취업자(209만명)의 비율이 비슷하다.
30대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105만1,640원, 30대 가장의 도시가구 평균소득은 341만원으로 집계됐다.
학력은 전문대졸 이상이 233만여명(27.88%)으로 3분의 1가량이 고등교육을 받았다. 전문대나 대학 대학원에 재학중인 경우도 4만6,000여명이나 된다. 30대 남성의 만학바람은 직장에서 학력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반수이상이 종교활동을 하고 있다. 이중 46%가 불교, 33%가 기독교, 13%가 천주교를 믿는다. 여자(59%)가 남자(46%)보다 종교활동이 왕성하다. 이혼율은 30대가 25%로 가장 높다. 30대의 69.4%가 월 1회이상 술을 마시는데 거의 매일 마시는 사람도 7.1%나 된다.<김정곤 기자>김정곤>
◎그들이 살아온 사회/35세 장용규씨 ‘뺑뺑이’로 중고교에/유신과 5·18거쳐 대학선 책보다 시위로
62년생인 회사원 장용규(35)씨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69년 중학교 입학시험제도가 폐지됐다. 그 해 7월엔 암스트롱과 올드윈을 태운 아폴로 11호가 사상 처음 달에 착륙,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70년 7월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은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묶었고 74년 8월 서울지하철 1호선 개통으로 지하철시대가 개막됐다. 그러나 70년 11월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씨의 분신과 10월유신(72년)은 장씨의 성장사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장씨는 중·고교시절 형들의 유신반대 시위를 보았다. 박정희정권은 74년 긴급조치 1∼3호를, 75년 5월 시위가담자를 영장없이 체포·구금 할 수 있도록하는 긴급조치 9호를 발동했다. 박정권의 민주화운동 탄압은 75년 4월 서울대 김상진군의 할복자살과 79년 8월 YH사건, 10월 부마사태로 이어졌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겪고 대학에 들어간 장씨의 학창생활은 공부보다시위로 점철됐다. 감옥에 가거나 강제징집되는 동료들을 지켜봐야 했다. 막걸리와 화염병이 책보다 가까웠던 시절이었다.
장씨가 취업준비중이던 87년에는 6·10민주화항쟁이 일어났다. 첫 직장을 구한 88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유배됐다. 두 전직대통령은 결국 96년 법정단죄를 받았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88년 국제적으로는 베를린장벽의 붕괴로 동구사회주의가 몰락하는 계기가 됐다.<홍덕기 기자>홍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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