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호 대장 등 탐험대 6명/폭풍설 헤치며 한발한발 ‘사투’/3월1일 ‘세계 최초 횡단’ 꿈 부풀어『남극점이 눈 앞에 있다』
아무도 이루어내지 못했던 미증유의 「무보급 남극대륙 횡단」에 나선 한국 남극대륙횡단탐험대(대장 허영호·43)는 대장정 46일만인 12월31일 남극점을 약 400㎞ 앞에 두고 있다. 현재위치 남위 86도 2분 44초.
한국일보사와 일간스포츠가 공동주최하고 한국이동통신 일동제약 LG-Caltex가스 후원, 대한항공 한국마사회가 협찬한 남극탐험대는 허영호씨를 대장으로 이상호(38) 김승환(37) 박쾌돈(35) 이근배(35) 최기순(34)씨 등 6명의 철인으로 이뤄져 있다. 남극대륙의 대서양쪽 버크너 아일랜드에서 11월15일 2,800㎞의 장도에 나선 탐험대는 중간목표인 남극점 정복의 힘찬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탐험대는 태평양 연안의 맥머드기지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장장 4개월동안 도중에 식량 및 장비 지원없이 황량한 만년설에 외줄기 족적을 남긴다.
개인당 100㎏의 식량과 장비가 실린 썰매를 끌며 탐험대는 영하 30도의 혹한속에서 하루 10시간의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당초 계획보다 보름이상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마음이 조급하지만 남극의 자연은 야속할 정도로 사납다.
탐험대는 출발 이틀만인 11월17일 시속 120㎞의 폭풍설과 마주쳐야 했고 11월25일부터 8일간 또 폭풍설 속에 갇혀야 했다. 남극에 다가갈수록 기온은 더욱 떨어지고 바람은 훨씬 거세지고 있다. 폭풍설이 몰아치면 방향을 가늠하기조차 힘들어 며칠동안 텐트 속에서 숨죽이고 있어야만 했다.
12월7일엔 크레바스 때문에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를 겪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26일과 27일엔 사스트루기(눈언덕)로 하루 10㎞도 전진하지 못했다. 탐험대는 평탄한 설원에 곧잘 숨어 있는 크레바스 등 위험지역을 알 수 있는 위성지도를 갖고 있지만 한 발 한 발에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자연의 시련은 탐험대의 인내를 실험하고 있다.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남극대륙에서 탐험대는 아침 6시 눈을 뜨면 텐트를 걷고 얼음을 녹여 물을 만든다. 10여시간의 행군후 다시 잠자리를 만들고 무선안테나를 설치하는 일까지 대원들은 매일 각자 맡은 일을 톱니바퀴처럼 반복해야 한다.
하루행군이 끝나는 저녁 7시, 파김치가 된 몸을 추스려 전동톱으로 얼음을 잘라내 벽돌을 만들고 텐트울타리를 치는 일은 고역이라는 말만으로 표현할 수 없다. 탐험대는 이같은 극한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강철같은 체력과 최신 첨단장비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팀워크이고 대원 서로간의 이해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남극횡단은 개썰매와 비행기 등으로 식량지원을 받아가며 성공한 적은 있으나 무보급 횡단은 세계에서 그동안 5개 팀이 도전, 모두 실패했다. 탐험대는 성공의 관건이 물량감축에 있다고 보고 서울 출발전 7마리분의 쇠고기 330㎏을 동결건조시켜 식량으로 만들었다. 또 동결건조된 김치 마늘 과일 등 110일분의 식량을 준비했다.
도전은 자연으로부터만 오고 있지 않다. 한국 탐험대와 거의 같은 시기에 쟁쟁한 유럽 3개국 탐험대가 남극대륙 무보급 횡단에 나선 것이다. 영국의 랜 피네스(52), 노르웨이의 뵈르그 아우슬랜드(33), 폴란드의 마렉 카민스키(32)와 한국팀 등 세계적 탐험가들이 금세기 최고의 철인대결을 펼치고 있다.
남극탐험대는 당초 계획보다 보름가량 늦은 15일께 남극점을 통과, 3월1일 목표지점인 맥머드기지에 도착 할 예정이다.<윤순환 기자>윤순환>
◎다시 쓰는 세계탐험사/한국팀 6개월전부터 인간한계 훈련/위성장비·동결건조식량 등 준비 만전
「남극대륙 무보급 도보횡단」은 200여년의 남극탐험사는 물론 세계탐험사를 새로 쓰는 거대한 도전이다. 1911년 로알 아문센이 이끄는 노르웨이원정대가 인류 최초로 개썰매를 이용, 남극점을 정복한 뒤 각국의 모험가들이 개썰매나 스노모빌을 이용하거나, 도보로 가더라도 중간에 항공 등 외부로부터 필수품과 장비를 보급 받아가며 남극점에 다달았다. 우리나라 탐험대(대장 허영호·43)도 93년 12월부터 94년 1월 사이에 44일간 스키로 걸어서 극점을 정복했다.
북극 에베레스트와 함께 세계 3대 극지인 남극점을 잇따라 정복한 탐험가들은 몇년 전부터 남극대륙 무보급 횡단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남극대륙 대서양쪽 웨들해에서 태평양쪽 로스해까지 2,800㎞를 장비와 식량을 짊어지고 끌어가며 걸어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기록에 도전한 세계 각국 5개 팀 모두 체력저하 동상 등 남극특유의 추위와 바람 앞에서 중도포기했다.
한국 남극대륙횡단탐험대는 전무후무한 장정을 위해 출발 6개월 전부터 허대장을 포함, 6명의 대원이 가혹한 체력단련과 팀워크훈련을 했다. 폭풍설 속에서도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위성장비 GPS도 2대 휴대, 계획된 행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식량문제는 쇠고기 김치 마늘 국 과일 등을 최신 동결건조법으로 조리, 영양분 유지와 최대한 감량이라는 2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
또 추위를 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의류는 모두 스포츠용품으로 개발된 화학섬유 제품이다. 장갑은 보온소재인 인슐레이트로 특수제작된 것이다. 텐트 매트리스 침낭 역시 4개월간의 대장정을 위해 최신소재로 만들었다.
폭풍설이 몰아치는 혹한의 대설원을 뒤돌아 보지 않고 7,000리나 밟아나가는 일은 인간한계에 대한 세기말의 시험이 될 것이다.<윤순환 기자>윤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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